추가 연장없다는 정부에 의협 "구제 대책 마련해야"
수련병원 인턴·공보의·군의관 등 의료인력 수급 차질 우려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 첫날인 8일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 첫날인 8일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메디칼업저버 김나현 기자] 올해 의사 국가시험 실기 접수가 끝났지만 의대생의 86%가 시험 거부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약 3000명의 신규 의사가 배출되지 못해 당장 내년부터 응급실 인턴 등 의료 인력 수급에 빨간불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7일 정부에 따르면 총 국시 응시대상 3172명 중 약 14%인 446명만 실기 시험에 응시할 예정이다. 

정부는 앞서 의대생 가운데 약 90%가 국시 거부 의사를 밝히자 시험 시작 일자를 지난 1일에서 8일로 늦추고 시험 재접수 기한을 7일 0시로 연장한 바 있다.

그러나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재접수 마감 전날 전국 40개 의과대학 응시자대표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의사 국시 거부 유지 안건을 의결했다.

의대협 비대위는 "의협과 당정의 졸속 합의 이후에 이어진 보건복지부와 여당의 표리부동한 정치 행보에 많은 회원이 분노했다"며 "협회는 회원들의 의견에 따라 단체행동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정부 "의사 국시 추가 연기 없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올해 의사 국시 실기시험 일정의 변경이나 시험 접수 기한의 추가 연장이 없다고 못박았다.

보건복지부 손영래 대변인

복지부 손영래 대변인은 "재신청을 다시 연장하거나 추가 접수를 받는 경우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그 이상은 법과 원칙에 대한 문제이며, 국가시험은 의사 국시뿐만 아니라 수많은 직종과 자격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에 따르면 2021년도 국시 실기시험은 이날 8일부터 11월 20일까지 74일간 치러진다.

의대 본과 4학년 학생들이 올해 실기를 치르지 못하면 1년을 더 기다려 시험을 봐야 한다.

정부가 강경한 태도로 나선 만큼 향후 재접수 등 기회는 불분명한 상태다.

국시원 관계자는 "추가시험이나 접수와 관련해서는 전혀 논의된 바가 없다"며 "국시원은 시험만 시행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복지부에서 지침이 내려오는 것에 따라 진행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가 접수기회를 부여하지 않겠다고 나서자 의료계는 이들을 위한 구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대생의 국가시험 응시거부는 일방적인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정당한 항의"라며 "마땅히 구제 대책이 마련돼야 하며 의협은 이들이 정상적으로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어 지난 4일 당정과의 합의와 관련해선 "의대생과 전공의 등 학생과 의사 회원에 대한 완벽한 보호와 구제를 전제로 합의문이 성립된 것이라는 점을 여당과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며 "이와 같은 전제가 훼손될 때에는 합의 역시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약분업 이후 20년만의 국시거부 사태

의대생들의 국시거부는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도 있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당시 2만여명의 의대생은 '교과서적 진료환경 조성과 올바른 의약분업 실현'을 내걸고 의료계 파업에 동참했고 투쟁 주도세력으로 부상했다.

의대생의 대부분이 2000년 10월 4일 자퇴서를 제출해 파장을 일으킨데 이어, 2학기 수업 등 학사일정을 전면 거부했다.

또한 의대 본과 4학년 3081명 중 62명을 제외한 3019명이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했다.

당시 국시원은 2001년 1월 9~10일로 예정됐던 국시 일정을 2월 17~18일로 변경하며 국시 문제를 해결했다.

의약분업 당시 의사 국시는 실기시험 없이 필기시험만 치러졌기 때문에 큰 혼란은 면했다.

실기시험은 통상 몇 달에 걸쳐 진행된다는 점에서 이번 국시 거부 사태가 우려되는 이유다.

통상 신규 의사가 매년 3000여명 배출되지만 이번 사태가 현실화된다면 내년에는 약 2700명의 신규 의사가 나오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당장 의료계 현장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는 공공보건 인력 확충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부분의 의대생들이 자격증을 취득한 후 인턴과 전공의, 전임의 수순을 밟는 만큼 수련병원 등 의료계도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또한 군 복무 대신 지역보건소나 오지 등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를 충원하지 못할 경우 지역 의료 공백도 발생할 수 있고, 몇 년 후에는 전공의를 마친 후 군의관으로 복무할 인력도 부족해진다.

 

인력 수급 우려에 정부 "큰 차질 없을 것"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우려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공보의, 군의관 같은 경우에는 필수 배치분야를 중심으로 조정하면 큰 차질이 없다고 설명했다.

손 대변인은 "원래도 의대 졸업자들이 바로 병역을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1년의 인턴과정 후에 신청하거나 4년의 전공의 수련과정 이후에 병역을 신청하는 경우가 다수였다"며 "1년 의대 졸업생들이 늦춰진다고 이런 병역자원들이 일시적으로 크게 차질을 빚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시뮬레이션을 통해 필수분야 중심으로 배치를 조정하고 필요하다면 정규의사 인력을 고용해 농어촌 취약지 보건의료에 피해가 없도록 철저히 준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큰 변수가 없는 이상 오는 8일로 예정된 국시 실기시험은 차질 없이 진행될 예정이다.

또 다른 국시원 관계자는 "올해 응시 예정자들이 언젠가는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시험이 시행되길 주말 내내 바랐다"며 "지금 사태를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오늘 복지부에서 말했던 국가시험 형평성 문제는 중요하다고 본다"며 "국시가 볼모나 타협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일각에서 코로나19(COVID-19) 전파 우려로 국시를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던 것에 대해서는 철저한 방역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 감염에 대비해 시험에 문제가 없도록 철저하게 대비했다"며 "공간이 협소하기는 하지만 모든 대기실에 비말 칸막이를 설치하고 마스크, 세정제를 구비하는 등 방역을 철저히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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