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까지 미뤘으나 협의 안 해...복지위 내에서 의협에 불만 목소리
의협 "국회가 의개특위 원안 그대로 통과시킨 셈" SNS로 날 세워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법제화를 둘러싸고 국회와 대한의사협회 간의 서먹한 기류가 감지됐다.
추계위 심의 전후 의협 박단 부회장(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국회가 의료계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야당 간사인 강선우 의원은 "의료계 수용성을 높이려 정부와 국회가 노력했음에도 의협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의정갈등 상황에서 국회와 의협의 사이가 멀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기대선이 치러질 수도 있는 만큼 정치권과 멀어져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7일 국회 복지위는 제1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복지위 의원들이 발의한 6개의 추계위 법안 내용을 기반으로 한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을 원포인트 심의·상정했다.
주요내용으로는 △추계위는 보건복지부 장관 직속 기구로 편재 △15명 중 8명 공급자 추천 △위원장은 전문가 위원 중 호선 △의대정원 규모 결정은 현행대로 하되, 추계위 심의 반영 등이다. 여기에 2026년도 의대정원 미추계 시 대학총장이 자율 결정한다는 부칙이 추가됐다.
이는 정부가 17일 제출한 수정안 내용으로, 의료계 입장 반영 면에서 보면 25일 정부가 제출한 수정안보다 더 후퇴한 것이다.
심의 직후 소위원장인 강선우 의원은 "한 단계 더 의협 안을 수용한 대안을 정부가 제시했으나, 의협은 그 안도 반대했다"며 "의협의 의견을 모두 받아들이면 추계위 본래 기능을 위한 법적 근거가 위협받을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표했다. 25일 제시한 정부의 수정안을 의협이 거절한 것을 두고 비판한 것이다.
국회 관계자에 따르면 애당초 복지위는 24일 추가의견 청취 후 25일 상임위에서 원포인트 심사해 27일 본회의에 상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상임위는 전날 돌연 취소됐다. 의견 청취 과정에서 의협 김택우 회장과 박단 부회장이 강력한 반대 의견을 전달한 것이다. 복지위는 일부 의원들의 반대에도 일정을 연기해 가며 정부에 새 수정안을 요청했다.
이에 정부는 25일 수정안을 제출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사회적 합의기구 의료인력양성위원회(인력위) 산하에 추계위 설치 △추계위원 16명 중 9명 의사단체 추천 △4월 15일까지 내년도 정원을 추계하지 못할 경우 현행 고등교육법에 따라 정원 조정 등이다.
그러나 해당 수정안도 의협은 반대했다.
심의 전날 박 부회장은 자신의 SNS에 "새롭게 등장한 인력위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구조와 별 차이가 없으며 이 같은 어용기구는 추계위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며 "추계위 구성과 2026년 의대 정원 논의는 구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계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일정을 미루며 마련한 최종 수정안마저 반대에 부딪히자 복지위가 의협의 반발을 예상하고서도 17일 정부 수정안을 통과시켰다는 후문이다.
의협 거센 불만에 의료계 일각 "조기대선 고려해 국회와 멀어지지 말아야"
의협은 즉시 반발했다. 같은 날 발표한 성명에서 의협은 "국회가 지난해 9월 말 정부가 발표한 추계위 추진 방안을 그대로 법제화했다"며 "추계위의 독립성·자율성·전문성 등을 보장하지 않아 의협이 강하게 반대해 왔음에도 그대로 가결한 국회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특히 박단 부회장은 자신의 SNS에 "복지위는 결국 윤석열 정부 안을 채택했다. 2000명의 의대증원이 어떤 절차로 이뤄졌는지 잊었는가"라며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독재 방식을 지지하나 보다"며 비난했다.
이어 "이런 추계위를 만들어 봤자 전공의, 의대생은 아무도 돌아가지 않는다"며 "이 나라에 전문가가 필요하긴 한가"라고 분노했다.
의협과 국회의 날 선 대치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의정갈등이 길어지는 가운데, 의협과 국회의 관계가 멀어지는 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의협 관계자는 "의협 의견 추가 청취 등을 주도하며 2월 회기 끝까지 시간을 끌었던 박주민 복지위원장을 비롯해 복지위 의원들 여럿이 의협에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안다"며 "의료정책에 의료계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국회와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한데, 이번 일로 부정적인 영향이 올까 걱정이다"고 우려했다.
다른 의료계 인사도 "조기대선 가능성이 남아있는 상황이라 차기 정부와 협상을 고려해 현 국회의 정당들과 관계를 세심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와 대치 상황에서 아군은 많을수록 좋다"고 의견을 냈다.
의협은 국회와의 갈등을 부인했다. 의협 김성근 대변인은 "서로 아쉬움을 느낄 수는 있겠으나, 갈등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니다"며 "의정갈등 해소와 올바른 의료정책 마련을 위해 앞으로도 의협과 국회는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회 복지위는 추계위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못한 채 이달 5일 2월 임시회기를 마쳤다. 다만, 연이어 3월 회기를 시작하고 추계위 법안 처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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