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응급의료, 중증환자 전원 안 될 만큼 무너져
지역 응급실 전문의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전국 응급실 상황 같아"
복지부 "일부 병원만 진료 차질"…해결책은 경증 환자 본인부담률 인상
이형민 회장 "책임 국민과 의료계에 전가…응급실에서 싸움만 늘어날 것"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면서 응급의료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면서 응급의료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

[메디칼업저버 이주민 기자] 수개월 전부터 지역 응급의료기관은 중증응급환자를 전원할 수 없을 정도로 응급의료 붕괴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경증 환자 응급실 진료 본인부담률을 높여 응급실 과부화를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대책으로 응급의료 체계가 정상화 될 수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26일 기준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양산부산대병원은 중증응급질환인 △뇌경색 재관류중재술 △안과적 응급 수술 △비외상 복부응급수술 △대동백응급 △담낭담관질환 등이 의료진 부재로 수술이 불가하다.

26일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양산부산대병원과 세종충남대병원은 일부 중증응급질환 수술이 불가능하다.
26일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양산부산대병원과 세종충남대병원은 일부 중증응급질환 수술이 불가능하다.

세종충남대병원도 상황은 비슷하다. △영유아 위장관 △담낭담관질환 △영유아 장충첩·폐색 등의 수술을 할 수 없고 신경외과는 평일 18시 이후 야간과 주말 응급실 내 진료가 어렵다.

"전원 받아 줄 병원 찾다 시간이 지체 돼 사망하는 분들도..."

지역 응급의료기관에서 근무 중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인근에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와 대학병원이 위치해 중증응급환자를 전원했는데, 최근 수개월 전부터는 전원이 거의 불가능하다"라며 "무서운 말이지만 전원을 받아 줄 병원을 몇 시간째 찾다 시간이 지체돼 상태가 나빠져 사망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지역 응급의학과 의료진에게 물어보면 이런 일들은 전국 응급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분노가 치밀고 너무 큰 무력감에 빠져 진료에 임하는게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A씨가 근무하는 응급실은 평일 환자가 60~70명, 일요일에는 100~120명 정도 내원해 응급실이 항상 붐빈다. 또 병원이 농촌 지역에 있어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 환자가 많아 중증도도 높다.

그럼에도 매년 시행하는 응급의료기관 평가에서 전국 234개 지역응급의료기관 중 상위 10위 안에 들 정도로 수준 높게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수개월째 전원이 잘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응급의료가 붕괴되고 있지만 정부는 일부 병원에서만 발생한 진료 차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3일 "최근 일부 병원들이 부분적인 진료 차질을 빚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이들 병원 중 상당수는 적극적 전담 인력확보 노력과 대체인력 투입으로 진료제한 상태에서 벗어났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A씨는 "전국에 응급실이 408개가 있는데 다 같은 응급실이 아니다"라며 "120여개는 중증응급환자를 담당하는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고, 270여개는 중등증, 경증 환자를 담당하는 지역 응급의료기관인데, 최근 응급실 차질이 발생한 곳은 중증응급환자를 치료하는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라고 전했다.

이어 "중증응급환자 치료가 대학병원에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국민께서 알면 정권이 날아갈 정도의 분노할 것이기에 기를 쓰고 막고 있는 것"이라며 "전국의 응급실이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살릴 수 있는 사람도 많이 사망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응급실 과부화 해결책 본인부담률 인상, 실효성 있나

이형민 회장 "의사와 국민에게 책임 전가한 정책일 뿐"

의료계는 경증환자의 본인부담률을 인상하는 것의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의료계는 경증환자의 본인부담률을 인상하는 것의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응급실 과부화의 원인을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으로 분석하고, 그들의 본인분담률을 높여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지난 23일 경증 환자의 응급실 진료에 대해 본인부담률을 90%로 상향하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주요 내용은 한국응급환자중증도분류기준(KTAS)에 따른 비응급환자 및 경증응급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전문응급의료센터 등을 내원한 경우 응급실 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을 90%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너진 응급의료를 정상화하기에는 효과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본인부담률을 높여도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보험 청구로 일부 보전받을 수 있어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실손보험 가입률은 72.6%로, 국민 10명 중 7명은 실손보험에 가입한 상태다. 특히 실손보험은 표준약관을 사용하고 있어 실손보험에 가입만하면 진료비를 보장받을 수 있다.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정부의 이번 발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책임을 국민과 의료계에 떠넘긴 것"이라며 "돈이 아까워 응급실을 찾지 않을 환자는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경증 환자의 이용률이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응급의료 현장에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KTAS를 이용해 경·중증 환자를 구분해 경증 환자를 분별하겠다고 밝혔지만, 경·중증 판단은 의료진이 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중요한 쟁점은 경증과 중증의 구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명확히해야 한다"면서 "만약 의료진이 경증이라고 판단했다가 중증환자면 그 책임은 또 누가 지게되는 것이냐"고 말했다.

또 "경·중증 판단을 의사에게 떠넘긴다면 응급실에서는 결국 매일 싸움만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경제 수준에 따른 의료격차를 정부가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회장은 "경증 환자의 이용률을 낮추겠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이번 대책은 최종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채 대책만 발표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경증이어도 돈 많은 사람이 돈을 내고 진료를 받겠다고 하면 어떻게 제한할 것이냐"라고 반문하면서 "결국 이는 돈 있는 사람만 편하게 응급의료를 이용하게 된다는 우려를 낳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필요성 목소리 나와

복지부 "부족한 부분은 실천할 수 있는 정책과 대안 마련해 나갈 것"

그렇다 보니, 응급의료 정상화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회장은 "경증 환자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 자체가 틀렸다는 게 아니다"라며 "의료계는 수가 인상과 같은 부분을 예전부터 주장해왔는데, 지금 상황에서 비용을 더 준다고해서 하던 일을 2배로 늘릴 수 있는 입장이 전혀 아니다. 이번 대책은 의료대란과 무관하게 원래 시행됐어야 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비용을 올려주는 것은 작은 부분을 일부 해결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대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A씨도 "응급실 진료는 3D 업무이다 보니, 의사들 사이에도 아무도 하려고 안 한다"라며 "사명감 하나로 응급의학과를 전공해 일하는데 의료소송은 높고, 수가는 낮아 응급실 이탈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근거없이 밀어붙인 악법과 조항들을 파기해 의사들의 소송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줘야 한다"며 "진료비가 2만 원인데 의료소송으로 17억원을 배상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응급실에 경증 환자가 많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나왔던 지적사항이기에 최소한 불필요한 응급실 이용은 줄여야한다"면서 "물론 이번 입법예고로 완벽하게 경증 환자가 줄어들진 않겠지만, 할 수 있는 부분은 추진하고 부족한 부분은 실천할 수 있는 정책과 대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응급실을 어떻게 운영해야 사회적으로 적절한 것인가의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생각해달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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