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기존 만관제에 원격모니터링 얹은 형태...극렬 반대하던 의료계, 왜 돌아섰나

새 모형이라지만, 기시감이 있다. 정부가 내놓은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에 관한 얘기다.

정부는 17일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 세부모형을 공개했다. 환자등록 절차를 거쳐, 관리계획 수립과 지속관찰, 전화상담, 평가 및 계획수립을 반복하며 환자를 지속관리하도록 한다는게 핵심 골자다. 

환자등록 후 지속관리 '만관제'-비대면상담 '원격모니터링' 유사

정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시범사업의 모형도와 함께 각 단계별로 의료기관이 해야 할 역할 등을 비교적 자세히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의원들은 일단 병원을 찾은 환자를 대상으로 문진을 진행, 환자가 시범사업 참여에 적합한지를 판단한 후, 적합하다고 판단된 경우 환자의 기본정보와 문진표·질병정보·생활습관 등을 담아 '환자 등록'을 실시한다.

환자등록이 끝나면 본격적인 관리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첫 단계는 관리계획의 수립. 의사는 환자 상태를 평가한 뒤 질환관리 목표치를 설정하고, 그에 맞춰 환자에게 혈압·혈당 체크 주기, 전화상담 계획, 다음 진료일 등을 안내하고, 이를 문서화 해 환자에게 설명한다.

그 다음부터는 문자와 전화상담을 통한 비대면 관리가 이뤄진다. 환자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혈압·혈당수치 등을 의사에게 전송하면, 의사는 그 결과를 확인하고 환자에게 추가로 복약격려나 생활습관 개선 등 필요한 조언을 문자메시지를 통해 환자에게 전달한다. 

이에 더불어 의사는 '선택적'으로 환자에게 전화상담을 실시할 수 있다. 전화상담을 통해 주는 정보는 문자메시지와 유사한 복약격려나 생활습관 개선 등에 관한 조언이다. 전화상담 수가는 월 최대 2회까지 산정이 가능하며 전화 상담 후에는 상담 소요시간(시작~종료)과 상담내용 등을 기록해야 한다.

비대면 시스템을 통해 환자를 관리하되, 월 1회 대면진료를 실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 환자의 상태를 대면으로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관리계획을 수정해 나가면서 해당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를 실시하도록 했다.

의료계 "국민건강 위협-선택권 침해"...만관제-원격모니터링 수년간 반대

이는 기존 만성질환관리제 모형에 원격모니터링을 사실상 합한 형태다.

환자 등록 후 특정 의사가 해당 환자를 전담해 관리하는 방식은 기존의 만관제, 환자가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생체정보를 전송하면 의사가 이를 확인한 후 비대면 건강상담을 제공하는 것은 원격모니터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교롭게도 만관제와 원격모니터링은 의료계가 수년째 극렬 반대해왔던 사안이다. 

실제 정부는 2011년 '선택의원제'를 시작으로 동네의원이 만성질환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최초의 모델은 환자가 의료기관을 선택하고, 의료기관이 이 환자를 등록한 후 지속 관리하면 의사와 환자 등에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었다.

의료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의사선택과 환자등록 절차가 국민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이유. 내부적으로는 참여 기관에 보건소가 포함돼 의료기관과의 경쟁이 예상되는데다 의사선택과 환자등록 절차로 의사-환자를 1:1로 매칭하는 모양새가 사실상 주치의제와 동일하다는 부정적인 판단이 컸다. 

의사와 환자를 이렇게 묶어 놓을 경우, 신규 개원의들의 진입장벽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정해진 환자 풀을 기성 의사들이 선점, 후발 주자들의 먹거리가 부족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선택의원제를 놓고 반발이 거세자, 정부는 이 중 보건소 연계, 의료기관 선택과 환자 등록 절차를 뺀 '만성질환관리제'를 새 모형으로 제시하며 의료계를 설득했으나, 사업은 의료계의 외면 속에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원격모니터링도 마찬가지. 앞서 정부는 만성질환관리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원격모니터링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의료계는 원격진료는 물론 원격모니터링 또한 안전성과 효과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불수용 입장을 분명히 했다. 

▲만성질환관리제 도입 논란이 거셌던 2012년 의사협회가 제작해 의료기관들에 배포했던 '만관제 반대 포스터'. 

'절대 안된다'던 의료계 왜 돌아섰나..."철학·방향성 없다" 비판도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시범사업 참여 전향적 검토를 선언했던 의사협회는 사실상 정부와 이번 시범사업을 함께 하기로 최근 내부방침을 정했다.

의사가 특정환자를 등록해 전담 관리하고, 생체정보를 스마트폰 등을 활용해 전송-확인하며 환자를 관리한다, 시범사업 모형은 기존과 크게 달라진게 없어보이는데,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걸까? 

일각에서는 결국 수가 문제로 의료계가 손을 뒤짚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존 만관제 사업에서는 평가를 거쳐 일종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형태로 의료기관 보상이 주어졌으나, 이번 시범사업에서는 각각의 행위별로 수가가 주어진다. 정부는 그간 시범사업 참여시 의원에 월 150~200만원의 추가 수입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혀온 바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국민건강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런 이유라면 만성질환관리사업 추진을 5년이나 지연시킬 이유가 없다"며 "원격의료가 절실한 정부와 금전적인 보상이 필요한 의료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야당 관계자는 "의협을 신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는 비대면 만관제 시범사업이 원격의료와 무관하다지만, 사업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면 원격모니터링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며 "의협이 기존 입장을 뒤짚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원격의료 허용은 절대 안된다는 것이 야당의 입장"이라며 "원격의료 반대는 애초에 의협을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시작한 일이다. 의협의 태도가 변했다하더라도 원격의료는 불가하다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의협 "원격의료 반대 기조 변함없다...복지부도 입장 확인"

의협 또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원격의료 반대 등 의협의 기조에는 변화가 없으며, 이번 시범사업 참여를 통해 문제점을 확인하겠다는 입장이다.

의협 관계자는 "기존 만관제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던 보건소 연계 부분이 제외돼 우려점이 상당부분 사라졌다"며 "이번 시범사업은 의료계가 사업을 이끌어 나간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업과는 다르다"고 밝혔다.

원격모니터링 사업과의 유사성에 대해서도 "그런(사실상 원격모니러팅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며 "의협은 안전성과 유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원격모니터링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해왔고, 이 같은 입장은 변함이 없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원격의료 현장방문부터 비대면 만관제 시범사업 추진까지,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원격의료 반대 등 의협의 기존 입장은 변함이 없으며, 정부도 이번 시범사업은 원격의료 무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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