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당 월 200만원 추가수입 기대...사실상 원격모니터링, 사업효과 검증 의료계 몫으로

 

정부와 의료계가 만성질환 관리수가 시범사업 실시를 전향적으로 검토키로 합의하면서, 2012년부터 부침을 겪어왔던 '만성질환관리 사업'이 새 전기를 맞게 됐다. 

동네의원 입장에서는 시범사업 참여 시 월 150~200만원의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 다만 시범사업 모형이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던 원격모니터링 사업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원격의료 반대 명분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2차 의정협의체 회의를 열어 이른바 '만성질환 관리수가 시범사업' 실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시범사업 참여를 두고 의료계 내부에서 논란이 있었지만, 의협이 정부에 "이번 시범사업이 원격의료와 무관하다는 확답을 준다면 사업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고, 정부가 이에 화답하면서 극적으로 합의의 틀이 마련됐다.

만성질환 관리수가 시범사업, 어떻게 진행되나

©메디칼업저버 

앞서 정부는 지난 6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새로운 만성질환 관리수가 시범사업 추진계획을 보고했다.

국내 의료실태를 파악한 결과, 고혈압과 당뇨병 등 만성질환에 대한 관리 미비로 인해 해당 환자들이 중증질환으로 이환되는 비율이 높았으며, 치료 외 예방서비스 제공도 미흡해 만성질환자 중 상당수가 대형병원을 이용하는 문제점이 발견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

이에 환자의 상태를 잘 아는 동네의원 의사가 만성질환자를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관련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시범사업은 일차의료기관의 의사가, 고혈압과 당뇨병을 가진 만성질환 재진환자에 대면과 비대면 전화상담을 실시한 경우, 별도의 수가를 지급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기존 사업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비대면 관리절차의 신설이다. 1차로 대면진료를 통해 만성질환 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교육을 실시한 뒤, 전화상담 등 비대면 관리를 통해 환자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모니터링 결과에 따라 다시 대면진료를 실시해 관리 계획을 재점검하면서 환자 관리에 연속성을 부여한다는 계획이다.

수가는 환자당 월 평균 2만 7000원, 최대 3만 4800원 정도. 복지부는 100명의 환자를 관리한다고 가정할 때 기관당 월 평균 150~200만원 정도의 추가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의원이 △월 1회 점검-계획수립·교육(수가 월 1회 인정, 9270원) △주 1회 지속적 관찰(주 1회 이상, 월 1만 520원) △월 1회 전화상담(최대 월 2회 인정, 회당 7510원) 등 '통상적인' 서비스를 제공했을 때를 가정한 수치다. 

‘전화상담’ 비대면 관리단계 두고 논란
“원격의료 허용 빌미 될까” 우려…정부는 “관련 없다” 공식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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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사업 계획 발표 후 의료계 내부에서는 전화상담을 통한 비대면 관리단계의 신설을 두고 격론이 일었다. 

환자를 대면하지 않고 건강측정 정보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관리하도록 한 점을 두고, 정부가 원격의료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만성질환 관리수가'라는 미끼를 던진 것이 아니냐는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반대로 원격의료라는 큰 산에 가로막혀 산적한 의료계 현안에 대한 논의가 계속해 미뤄지고 있는 데다, 전화상담료라는 새로운 수가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만큼 현실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달 20일 의협이 산하 의사회 의견수렴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가 ‘이번 시범사업이 원격의료와 무관하다는 점’을 확언한다면 사업 참여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냈다. 

추무진 의협 회장은 브리핑을 통해 "회원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원격의료와의 연계성"이라며 "의정협의체 합의를 통해 회원들의 우려와 반대의견이 불식된다면 시범사업이 진전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원내과의사회도 힘을 보탰다.

내과의사회는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만성질환관리 사업에 대해 의협의 공식 입장에 전적으로 동참키로 했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추진하는 사업이 △원격의료와 연관성이 없음을 확실히 담보하고 △시범사업을 의협이 주도하도록 하며 △사업에 참여하는 주체를 일차의료기관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3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된다면 사업 참여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정부는 의협과 내과의사회의 의견을 수용해, 만관제 시범사업이 원격의료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복지부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이날 의정협의 후 가진 브리핑을 통해 "이번 시범사업은 원격의료와 연관성이 전혀 없으며, 순수하게 의원급 의료기관만으로 고혈압·당뇨병 환자의 만성질환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면진료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기본원칙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확인한다"고 강조했다.

"개원가 단비 될 것" vs "돈 든 성배 들었다"
사실상 원격모니터링 사업...안정성·유효성 검증 의료계 몫으로

일련의 흐름을 바라보는 의료계 내부의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만관제 관리수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원가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가 추산대로라면 1년의 시범사업 기간 동안 동네의원 한 곳당 1800~2400만원의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의정관계 신뢰회복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도 또 다른 성과로 꼽힌다. 실제 정부는 2012년부터 모형을 달리하며 동네의원 중심의 만성질환 관리제 사업을 추진해왔으나, 의료계의 협조를 구하지 못해 번번히 추진과 중단을 반복해왔다. 의료계가 시범사업 참여로 결론을 내린다면 5년간 지리했던 논란에 드디어 방점이 찍힌다. 

반면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는 반론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원격상담이 전화상담으로 대체됐을 뿐, 시범사업 모형이 사실상 기존 원격 모니터링 사업과 매우 유사하며, 이에 동의할 경우 향후 원격의료 사업 확대에 반대할 명분도 흐릿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나아가 의료계가 그간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던 원격 모니터링 사업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스스로 검증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만성질환 관리수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범사업의 성과를 입증, 향후 본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만큼, 사실상 의료계가 원격 모니터링의 효과를 스스로 검증해 내야 하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충청남도의사회 박상문 회장은 "전화상담 또한 엄연한 문진으로 진료의 한 형태"라면서 "수가를 준다고 이를 허용한다면 원격의료를 반대할 명분이 없어진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는 전화상담을 통한 처방전 발행이  불가능하므로 원격진료, 진료행위와는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대가(수가)를 받는 순간 진료행위와 동일한 책임이 따른다"며 "결국은 의료계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각개격파식 정책 추진도 문제라는 입장이다.

또 다른 지역의사회 관계자는 "문제가 많은 사업이지만, 모든 과목에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보니 원격의료 이슈와 달리 의료계 내부에서도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며 "각개격파식 정책추진의 전례를 남기는 것은, 복지부에 일종의 새로운 접근방식에 대한 '경험'을 심어주고 의료계에 분열의 씨앗을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신창록 개원내과의사회 부회장은 "우리가 반대하는 원격의료는 기존의 대면진료를 대체하거나 기존 대면진료 횟수에 영향을 주는 사업"이라며 "현재의 시범사업은 그런 시도나 의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보기에, 전제조건이 받아들여지면 참여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약속과 달리 이를 원격의료와 연계하거나 대면진료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변형한다면, 언제든지 반대입장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 “모형 구체화해 회원 동의 구한 후 최종 결정”

복지부가 의료계가 요구한 '전제조건'을 사실상 수용하면서, 만관제 사업의 향방을 결정지을 열쇠는 다시 의협의 손으로 돌아왔다. 

밖으로는 정부와 올바른 시범사업 모형을 만들기 위한 협의를 진행해야 하며, 안으로는 의료계 내부의 반대여론을 불식시킬 수 있는 설득작업을 벌이는 일이 의협의 과제로 남았다. 

의협은 복지부와 협의를 거쳐 만관제 시범사업 모형을 구체화하는 한편, 이에 대한 의사회원들의 이해를 구한 뒤 시범사업 참여 여부를 최종 확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의협 김주현 대변인은 "시범사업에 찬성한다는 것이 아니라, 전향적으로 협의하겠다는 의미"라며 "의료계가 가장 우려했던 원격의료와의 연계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확인했고, 그에 따른 결과로 우리도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하겠다는 입장으로 이해해 달라"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복지부의 모형을 보면 대략적인 틀만 존재할 뿐 실제 어떤 환자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상담을 하고 기록을 해야 하는 것인지, 또 실험군과 대조군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할 것인지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며 "향후 논의과정을 통해 이를 구체화하고, 다시 그 모형을 가지고 회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거친 뒤 시범사업 참여 여부를 최종 확정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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