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통합 또는 청구권 이양"...심평원 "재정누수 효과 연구부터, 행정낭비 심각할 것" 갑론을박 '팽팽'
잠잠했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청구권 이양 주장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다시금 불을 붙였다. 공단은 '재정누수 방지'라는 이점을 강조하고 나선 것. 그러나 심평원은 '시스템 재구축 비용' '요양기관 행정력 낭비' '업무 혼란' 등 부작용을 내세우며,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맞섰다.
대한변호사협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4일 '진료비 청구·지급체계의 법률적 문제점 및 해결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속적으로 공단에서 심평원의 청구권 업무를 주장하는 것과 관련, 법률적인 관점으로 명분과 실익을 분석해보자는 게 주최측의 의도다.
주제발표부터 극명한 대립이 발생했다.

청구권 이관을 찬성하는 내용을 담은 '건강보험 진료비 관리체계의 개선방안'을 발표한 서울대 간호학과 김진현 교수는 "대다수 해외사례를 보면 건강보험에서 진료비의 청구, 지급이 일원화돼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진료비 청구, 지급 등 관리체계 현황이 이원화돼 종별 가산율, 입원료 체감, 급여범위 등이 상이해 다양한 문제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원화된 진료비 관리체계로 인해 △보험자는 지출관리의 비효율성, 부당수급 및 부당청구로 인한 재정누수, 관리운영의 비효율성이 발생할 뿐 아니라 △요양기관에는 진료비 청구업무 가중, 심사 불확실성 등 불편을 주고, △환자에게는 급여보장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즉 현재 진료비 관리체계로 국가 전체적으로 효율성, 형평성이 저해된다는 것.
김 교수는 "공단이 청구권이 없어 수급자의 자격 확인, 실제 제공된 의료서비스 사실유무, 건강보험 대상자 여부 등을 확인하지도 못한 채 요양기관에 진료비를 주고 있다"며 "지급 후 부당지급이 확인돼야 다시 이를 환수하는 역순서로 이뤄지고 있다. 즉 사후관리로 재정누수가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공단과 심평원을 통합해 청구·지급을 통합하거나 △요양기관에서 공단과 심평원에 진료비를 동시 청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달리 현두륜 변호사는 청구권 이관에 반대하는 내용으로 진료비 지급체계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 비판적인 고찰을 이어갔다.
우선 공단이 청구권을 가져가더라도 '사무장병원'이나 '부정수급'을 걸러낼 수 없고, 지나친 심평원 업무에 대한 요구는 전문심사기구로서의 독립성을 저해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 변호사는 "자격 사칭이나 증대여 부정수급 등은 자격점검만으로 걸러지지 않는다. 현재와 동일하게 사후점검만 가능하다"면서 "게다가 심평원이 현재 요양기관 인력현황에 대한 각종 데이터를 구축해 이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고 있으므로, '의료인력에 대한 점검이 청구단계에서 이뤄지지 않아 재정누수가 발생한다'는 공단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사무장병원이나 보험사기와 같은 부정청구는 단순히 사전점검을 한다고해서 잡힐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는 사법 및 수사당국에서 면밀히 조사해 알아낼 수 있는 문제다. 즉 청구권을 가져가더라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단언했다.
뿐만 아니라 "진료비 청구와 심사가 분리되면 요양기관에 행정력 부담과 혼선을 야기할 수 있고, 건보공단에서 의료 질에 대한 고려없이 비용효과성만 따지면 국민 의료 질과 안전에 대한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즉 현 변호사는 "청구권 이관은 건보공단의 권한만 강화시킬 것이다. 건보의 지속가능성과 의료 효율성 및 질 보장은 공정하고 전문적인 심사에 의해 가능하다"면서 "건강보험 발전을 위해서라도 심평원과 공단은 분리독립돼 현재 업무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난상토론 '현 시스템 맞다' 우세
건보공단 송영경 전문연구위원은 현 변호사 의견에 반대하면서, "진료비 청구업무는 단순업무며, 심평원에서 이뤄지는 심사 90%가 전산심사다. 심평원의 대부분 업무에서 특별한 전문성 필요한지 의문"이라며 "청구권 및 단순심사 업무의 이관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단에서 청구권을 갖게 되면 장기요양보험이나 건강검진처럼 사전점검이 가능해져 바로 부당청구를 잡을 수 있다"면서 "업무 이관 주장은 알력 다툼으로 봐선 안 된다. 단지 진료사실 존재여부, 자격여부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며, 보험급여의 관리를 제대로 하겠다는 의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다수 패널과 참관자들은 현재 시스템의 유지와 더불어 경쟁구도 배제를 요청했다.

심평원 변창석 법무지원단장보험자 "전산심사가 90%인 것은 연간 14억건에 달하는 심사를 물리적으로 사람이 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수가 기준이나 코드가 변할 경우 20만개의 전산시스템 항목들이 바뀐다. 즉 공단으로 업무들이 이관되면 시간, 인력, 비용을 막대하게 투자해야 하는데, 이것이 재정 누수분 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진료건에 대해 일반 심사를 해야 하는지 전문심사를 해야 하는지를 누가 구분할 것인지도 의문"이라면서 "막말로 공단의 주장은 심평원이란 기관만 세워두고 직원 봉급만 주라는 소리"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심사는 평가와 불가분적으로 연결돼 있는데, 공단의 일반심사건을 심평원 평가업무와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도 의문"이라며 "공단도 심평원도 모두 14년째 운영 중이며 각 기관 특성에 따라 진화 중이다. 나름대로 각자의 주어진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 서인석 보험이사는 "공단에서 재정 누수에 대한 책임을 잘못된 곳에 묻고 있다"면서 "사무장병원은 수사당국에서 밝혀내야 할 범죄고, 증 도용은 IC카드 도입 등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청구기관을 바꾼다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공단에서 심평원 업무를 가져간다고 해서 재정누수를 막을 수 없는 것은 물론 의료기관의 불편만 가중돼 더 비효율적으로 될 것"이라며 "정보 공유의 문제에서 발생한 문제는 통합이나 업무이관이 아닌, 서로 업무와 자료를 잘 공유하면 해결된다"고 말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김종명 정책위원은 중립적인 입장을 제시했다. 김 정책위원은 "생각보다 두 기관의 갈등이 심한 것 같다"면서 "두 기관의 통합은 절대 안 된다. 공단에 대한 불신이 많기 때문에 심평원이 존재하며, 심평원에서 심사 공정성을 유지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진료비 청구를 양 기관에 하거나 공단에서 맡는 것은 심평원의 업무 훼손으로까진 볼 수 없다"며 "재정 누수 절감에 효과가 있다면, 심사권을 갖지 않고 단순히 동시 청구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고려해볼만 하다"고 했다.
한편 이날 첫 공식석상을 찾은 건보공단 성상철 이사장은 "건강보험은 국민건강 최후의 보루기 때문에 보험재정 건전성을 위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진료비 지급체계는 민감한 문제지만 상생 방안을 찾기 위해 논의를 계속해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 이사장은 "문제 해결 과정에서 가입자와 공급자, 보험자 대립이 아닌 서로 협력해야 하며, 이번 기회로 지급체계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첫 단추가 잘 끼워지길 바란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