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3주년 특집] 해묵은 논란 양 기관·국회에서 공개 이슈화

공단 “전문심사 뺀 모든 업무 통합해야”vs심평원“누수 막기 위한 각자 역할 충실히
기재부“징수·지급 이원화로 재정 책임성 결여”...양 기관 운영 효율성 위해 논의 중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합설이 국회에서까지 다뤄지고 있다.

관련 전문가들과 국회 여야 모두 건보공단이 재정누수 방지 등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심평원에 떠넘긴다고 지적하면서 일단락된 듯 하지만, 여전히 일각에서는 기재부가 내놓은 사안인만큼 현실화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우선 건보공단과 심평원 통합은 수차례 언급돼 왔으나, 2 8개월 전 김종대 이사장이 부임하면서 공식화됐다.

지난 2012년 건보공단 쇄신위원회를 꾸려 '건강복지플랜' 보고서를 발간했고, 여기에서 급여결정 구조 및 진료비 청구·심사·지급체계 합리화 방안이 대대적으로 다뤄졌다.

보고서에는 현행 청구·심사시스템으로는 재정 누수를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청구를 공단으로 일원화하고 전문심사를 제외한 모든 업무는 공단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심평원의 업무를 대폭 축소하고 자동차보험이나 보훈 심사처럼 공단에서 위탁한 건강보험 중 전문심사 부분만 위탁받는 것으로 명시됐다.

공단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건강복지플랜 보고서를 보건복지부는 물론 기재부, 국회 등에 전달했고, 언론을 통해서도 대대적으로 알렸다.

이에 대해 심평원에서는 기자간담회를 갖고 '심평원의 재정 감소 기여도'에 대해 발표해 간접적으로 건보공단의 플랜에 선을 그었고, 복지부에서도 "권한을 넘는 행위"라고 제지를 가했다. 또한 지난해 국정감사를 통해 여야를 막론하고 질책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기재부에서 꺼내든 '통합'카드, 실현 가능성 있나?

하지만 최근 기재부에서 건보공단-심평원을 비롯해 보건의료 공공기관 통합을 내용으로 한 문서가 나오면서, 다시금 건보공단의 심사권 이양 및 통합 주장이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해당 문서에 따르면, 현행 건보공단의 보험료 징수 업무와 심평원의 보험금 지급 기준 결정 업무가 이원화 돼 있어 재정 책임성이 결여된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요양급여비용 산정에 있어서 건보공단과 심평원으로 나뉘어 있어 수가 결정 시 건보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기 어렵다는 입장도 명시됐다.

 

뿐만 아니라 심평원-보건의료연구원의 이원화로 신의료기술 평가 및 보험등재에 있어서 업무중복, 심사기간 지연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점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이원화에 따른 문제점 개선을 위해 △(1)건보공단과 심평원, 보건의료연구원, 건강증진재단 등을 통합하거나 △(2)심평원이 아닌 건보공단이 진료비 청구 및 사전관리하는 시스템의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이에 탄력을 받은 건보공단은 창립기념 행사로 '재정누수 방지를 위한 진료비 청구·지급체계 정상화 방안 토론회'를 개최, 심평원의 청구업무 이관을 공고히 했다.

주제발표를 맡은 서울대 간호학과 김진현 교수는 진료비 청구권한을 공단으로 가져오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김 교수는 "돈을 주는 사람(공단)에게 청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심평원은 심사평가 전문화 기관으로 입지를 다졌으나, 보험자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심평원은 재심사나 분쟁에 대한 심사가 아닌 진료비 첫 통과관문임에도 심사조정률은 0.4%밖에 안 된다" "기능과 목적을 상실한 채 마치 보험자-공급자 간 중재기구이자 심판자인 척 한다"고 꼬집었다.

향후 건보공단에서 수입과 지출을 총괄 관리하면 "요양기관에서 정산으로 인한 불이익이 없고 환자가 어떤 보험을 받아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게될 것이다. 이에 따라 사회안전망도 개선되고 진료비 관리도 효율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다.

반면 관련 전문가들은 보험자가 두 갈래로 나뉘면서 문제가 있는 것은 인정하는 분위기였으나, '업무이관'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해당사자인 심평원은 배제한 채 이뤄진 토론이어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거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부원장은 심평원의 청구업무가 공단으로 간다고 해서 허위청구, 부당청구, 사무장병원 등 재정누수를 해결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신 부원장은 "청구 순서를 바꾸는 것이 능사가 될 순 없다" "특히 사무장병원 문제의 경우 건보공단이나 심평원 모두 다루기가 어렵다. 사법기관과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의협 서인석 보험이사도 "누수가 심평원 청구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은 공단의 억지"라며 "마치 심평원에서 일을 잘 하지 않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렇다면 이 부분은 공단에서 자료를 더 공유하면 해결될 일"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외국의 경우 건보 재정의 5%가 누수인 반면 우리나라는 0.5%에 그친다" "누가 해당 업무를 맡더라도 어려운 일"이라며 공단의 주장에 반기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법부터 보험자의 권한을 개정한 후 이 같은 논의를 하는 게 순서에 맞다" "법 개정은 물론 공단에서 인력절감의 의지도 표명해야 한다. 또 정보누출, 사전관리 문제 등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역할 집중 안하고 통합만 능사인 양
국회 여·야 전문가들 반대 목소리 크지만 현실화 가능성에 무게


토론회에 이어 국회에서도 건보공단은 직격탄을 맞았다.

▲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 중인 심평원 손명세 원장(왼쪽)과 건보공단 김종대 이사장(오른쪽).

새정치민주연합 이목희 의원은 질의서를 통해 "심평원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진료비 심사와 의료의 질 평가를 수행하기 위해 지난 2000 7 1일 설립한 것"이라며 "현재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에서도 부러워하는 건강보험제도가 됐고, 심사평가시스템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시스템"이라고 운을 뗐다.

진료비 청구를 건보공단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건보공단의 주장에 대해 "결국 심평원으로부터 심사권한을 가져오고자 하는 계획의 일부"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심평원과 건보공단의 기능을 다시 조정, 진료비 청구를 공단에 하는 것은 심평원 설립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며 "진료비 청구와 심사는 분리할 수 없고, 심평원이 전문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다만 필요시 청구권 이양이 아닌 기관 간 긴밀한 '정보공유와 협조'를 하는 한편, 건보공단이 자격관리를 철저히 하고 심평원이 정보공유를 긴밀히 한다면 청구단계에서 사전점검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또한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공단에서 심평원에 재정누수 책임을 전가하면서, 언론매체를 통해 다투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조직이기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심평원의 진료비 청구는 물론 심사권을 가져가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사전관리에만 집중하지 말고, 현재 공단의 업무인 사후관리 체계부터 정상화하라"고 강조했다.

연일 기관 존립의 위협(?)을 받고 있는 심평원 손명세 원장은 처음으로 관련 견해를 국회에서 밝히기도 했다. 손 원장은 "공단과의 기능통합은 법률상 어려울 것"이라며 "각자 설립취지에 따른 업무에 충실하면서 재정누수를 관리하는 데 집중하자"고 말했다. "기재부에서 통합안을 제안한 것은 역할분담, 상호협력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을 방증한 것"이라며 "각자의 업무에 충실하면서 효율화를 꾀하자"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건강보험의 두 기둥인 공단과 심평원을 '부모'로 빗대며, "공단이 아버지로서 재정을 걷어오면, 심평원이 어머니처럼 요양기관을 잘 키우고, 환자들에게 질 좋은 의료를 할 수 있게 관리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어머니, 아버지가 협조 하에 각각의 업무를 해야 한다" '분리'체계를 강조했다.

하지만 기재부가 해당 사안을 밀어부치는 만큼, 어느 정도 '통합'가능할 것이란 의견이 팽배하다.

 

건보공단 다수 관계자들은 "기재부에서 공단-심평원의 효율적인 운영과 사전 심사기능 강화 등을 이유로 통합안을 제안했다" "이를 복지부와 공단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 공단 관계자는 "이미 지난 2012년부터 전문심사를 배제한 청구 및 심사권에 대한 공단으로 이양에 대해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공단에서 발표한 건강복지플랜보고서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정부는 이달 중으로 전문가 간담회를 진행하고, 하반기에는 세부계획을 수립, 추진할 것으로 안다" "사실상 통합은 거스를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또 다른 공단 관계자는 "기재부, 복지부 등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논의라서 자세히는 모르겠다"면서도, "워낙 파장이 큰 사안인 만큼 앞으로 기재부-복지부-공단 등에서 구체적인 계획 마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단이 거대화된다고 해서 좋은 일만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이 관계자는 "(통합이 되면)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이 가능해지고 건보 재정에도 많은 기여를 하겠지만, 의료계 등 외부의 감독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필요에 따라 기관이 커졌다 해도 '방만경영'을 지적하는 외부의 지적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도 "통합에 대해 반대하고 있지만, 원격의료처럼 기재부에서 손을 대고 있는 만큼 사실상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의정 협의, 의사 총파업 등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의사들의 분주한 움직임에도, 기재부는 복지부를 앞세워 계획대로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건보공단과 심평원의 통합안이 기재부에서 다뤄지고 있으므로 시간은 조금 걸리더라도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앞으로 김종대 이사장의 임기는 4개월 남짓 남았지만, 이제는 통합의 키(Key)가 기재부로 넘어갔기 때문에 추진에 방해될 것이 없다는 입장도 견지했다.

두 개의 보건의료 공룡기관이 과연 여러 반대와 비판을 무릅쓰고 '통합'까지 갈지, 아니면 현재 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각자의 발전을 도모할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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