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난 7일 'PA 보완지침' 발표…환자 소송 시 "의견 제출로 돕겠다"
법조계 "의료사고는 간호사가 책임…정부도 면책 장담 못할 것"
의료계·시민단체 "간호사 보호할 안전망 없어"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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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이주민 기자] 의료대란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PA 시범사업 보완지침을 내놨지만, 의료행위로 발생하는 의료소송은 의료진 개인이 감당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환자 상태가 악화될 경우 환자 또는 보호자 등이 의료진과 의료기관을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묻는 경우가 발생하는 데, 간호사를 법적으로 보호할 안전망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 "간호사, 법적 책임 묻지 않을 것…보호자 소송에는 의견 제출"

정부는 지난 7일 의료대란이 장기화되자 간호사가 응급상황 심폐소생술과 약물투여, 기도 삽관 등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지침'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간호사들은 8일부터 심폐소생술·약물 투여·기도 삽(발)관·검체 채취·약물 처방 등 98개 진료지원 행위가 가능하게 됐다.

다만, 이런 의료행위는 의료기관장의 관리·감독하에 진행돼야 하며, 간호사 숙련도에 따라 진료지원 범위는 달라진다.

정부에 따르면, 간호사의 진료지원 행위는 '보건의료기본법'에 근거한 시범사업이므로, 참여 의료기관 내 의료행위는 법적으로 보호된다.

보건복지부 임강섭 간호정책과장은 지난 7일 복지부 전문기자협의회를 통해 "PA 시범사업과 관련해서는 간호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면책된다"고 말했다.

이어 "보건의료기본법 근거로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것이고, 환자나 보호자가 간호사에게 소송을 제기해도 법원에 의견 제출 등을 통해 끝까지 도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료기관장에게 법적 책임이 귀속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이 병원장에게 귀속된다는 조항으로 인해 책임이 전가된다는 인식이 있는데, 관리·감독하에 진료지원 행위가 이뤄지면 병원장이 법적 책임을 질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의료사고 발생하면, 책임 가능성 있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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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의료소송은 의료진에게 형사책임을, 의료기관에게 민사책임으로 이뤄지나, 의료진에게 민·형사상 소송이 진행되기도 한다.

정부의 주장과 달리, 법조계 전문가는 정부가 정한 업무범위라고 하더라도 고의 또는 과실로 발생한 의료사고는 간호사가 직접 민·형사상 책임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의료 전문 A변호사는 "PA 시범사업의 업무범위 내 의료행위는 보건의료기본법을 근거로 하고 있어, 무면허 의료행위로 책임지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위험한 의료행위를 하다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개인(간호사)이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시범사업 전부터 이미 간호사분들은 의료과실로 발생하는 의료소송 책임을 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복지부 임강석 간호정책과장의 "법원에 의견 제출 등을 통해 돕겠다”라는 발언에 대해 A변호사는 "정부도 모든 책임을 면책할 수 없다는 것을 장담할 수 없기에 '돕겠다'고 말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법적 책임을 묻고 처벌을 하는 곳은 행정부가 아닌 사법부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범사업으로 간호사들이 의료소송에 휘말리는 사례는 더 많아질 수 있다. 정부가 대법원 판례를 기준으로 정한 금지행위 외에도 다른 의료행위들이 법조계 일선에서 의료소송에 휘말리고 있어서다.

A변호사는 "정부가 대법원 판례를 기준으로 금지행위를 정했는데,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사례도 많다"며 "대법원 판결만 없을 뿐 처벌 받은 케이스들은 충분히 많다"고 말했다.

의료계와 시민단체 "간호사 법적보호, 불가능…법적 장치 없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주수호 언론홍보위원장은 지난 7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PA 간호사가 의료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주수호 언론홍보위원장은 지난 7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PA 간호사가 의료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계도 PA 시범사업은 간호사를 보호할 법적 안전망이 부재하다고 지적한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주수호 언론홍보위원장은 지난 7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PA 간호사가 의료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수호 언론홍보위원장은 "정부가 심폐소생술이나 약물투여 등을 PA 시범사업을 통해 업무 범위 내로 조정해 복지부 행정처분 대상은 아닐 수 있다"면서도 "의료행위로 환자 상태가 악화돼 환자나 보호자가 PA 간호사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지라고 소송을 걸면 간호사는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학병원 응급의학과에 종사하는 A교수도 환자 상태 악화로 인해 발생하는 책임은 누가지는 것이냐며 PA 시범사업은 법적 책임에 한계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A교수는 "이번 PA 시범사업은 환자의 합병증 등의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을 져야하는지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합병증 등 환자 건강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면 이는 어떻게 해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토로했다.

시민단체도 의료계의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8일 보도자료를 통해 "의사 업무를 간호사가 수행하는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간호사는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사고 소송은 의료기관만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제기되기 때문에 의료기관장이 법적 책임을 진다해도 의사업무를 수행한 간호사도 소송을 피할 수 없다"며 "간호사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간호사들은 결국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서 의사업무를 수행하고 법적 책임에 대한 불안을 떠안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의료사고에 대한 면책이 명확히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간호사들은 법적 보호도 없이 의사업무를 대리하는 불법의료행위자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정부의 PA 시범사업 발표로 간호사들이 감당해야 할 법적 책임들만 늘어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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