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부 배다현 기자.
학술부 배다현 기자.

[메디칼업저버 배다현 기자] 연이은 흉기난동 사건에 사회가 뒤숭숭하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인 만큼 나도 언제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국민의 불안감은 상당하다.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누군가는 원인을 찾아야 하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명확한 해결책 제시를 위해 원인은 단순할수록 좋다. 

네글자 MBTI로 서로를 속단하길 즐기는 세상이다.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범죄에도 '정신질환자' 혹은 '싸이코패스'라는 명찰을 달면 모두가 "역시 그랬군"하고 고개를 끄덕이니 명쾌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이나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전문가들도 서현역 사건이 단순히 정신질환에 의한 범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시스템 개선 방안으로 흐르고 있다. 법무부가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전국민 대상 정신건강 검진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최근 성명을 내고 비극의 예방과 사후관리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건 발생 초기, 학회는 조현성 인격장애 등 정신과 진단명 보도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 말을 아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 심화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이 범죄 원인을 피해망상에 의한 것으로 발표하고 피의자의 치료 중단 사실이 부각되면서 학회는 대책 마련에 목소리를 보태기로 결정했다. 

대한조현병학회 역시 조현병과 범죄를 연관 짓는 보도에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도 개선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현 시점에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는 일은 자칫하면 사건의 원인을 정신질환으로 확정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어 위험이 따른다.

그럼에도 두 학회가 목소리를 낸 이유는 우리나라 정신질환 치료 시스템이 그만큼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어서다. 조기 발견 및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한 질환임에도 제도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

친구의 우울증이 급성으로 악화되는 일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험담하는 거 같다는 고민을 늘어놓던 친구는 한달도 채 되지 않아 망상과 환청에 시달렸다. 친구는 자신을 해하려는 망상 속 상대에게 욕을 퍼부었다.

친구를 데리고 병원에 갔지만 가족 동의 없이는 치료가 어렵다는 말뿐이었다. 어렵사리 친구를 고향으로 보냈지만 교회에 다니는 부모님은 약이 아닌 기도로 병이 낫기를 바랐다. 친구가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상황에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양한 이유로 치료를 시작하지 못하거나 중단하는 환자들이 많다. 인권 강화를 위해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 덕분에 누군가는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또 누군가는 위험에 처했다. 

강화된 강제 입원 요건에 의하면 2명 이상의 보호 의무자 신청과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한 2명 이상 전문의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한다. 또는 강제 입원 적합성을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가 심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살려달라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찾아가 부모님을 설득하고 입원 치료를 받게 한 끝에 친구는 얼마간의 회복 기간을 거쳐 일상으로 돌아왔다. 조기 치료를 받은 덕에 재발 없이 무탈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중증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을 볼 때마다 자주 그때를 떠올린다. 주변 사람들이 증상을 더 늦게 알아챘거나, 치료가 더 늦어졌다면 어땠을까. 친구의 상황은 행운에 가까웠다. 

낙인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공감한다. 그러나 현 시스템이 사고를 키우고 편견을 조장하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의 편견을 단숨에 사라지게 할 수 없다면 근본적인 대책 마련으로 악순환을 끊어내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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