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3명이 말하는 소청과 현실과 미래
서울아산병원 김서연·서울대병원 최윤영·고대구로병원 김현서 전공의

(좌측부터) 서울아산병원 김서연(3년차), 서울대병원 최윤영(3년차), 고대구로병원 김현서(1년차)
(좌측부터) 서울아산병원 김서연(3년차), 서울대병원 최윤영(3년차), 고대구로병원 김현서(1년차)

[메디칼업저버 박서영 기자] 소아청소년과가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다. 좀처럼 쉽게 낫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언론은 소청과가 “죽어가고 있다”고 앞다퉈 보도한다.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냉소적 반응도 적지 않다.

기록은 소청과가 앓고 있는 몸살을 증명한다. 올해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은 15.9%다. 전체 모집 인원 207명 중 33명만이 지원한 것이다. 소위 ‘빅5’라고 불리는 서울 내 종합병원도 미달 사태를 피하지 못했다.

1차선을 담당하던 소청과 개원의들은 단체로 모여 폐과를 선언했다. 낮은 수가 때문에 정상 진료가 불가능하다며, 살기 위해 통증이나 피부·미용 클리닉으로 떠나겠다고 했다.

아무도 들어서지 않고 남아 있는 자들도 떠나버리는 황무지. 그 길을 걷는 소청과 전공의들은 좋든 싫든 관심의 대상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걱정과 응원을 듣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미련하다는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중요한 건 외부의 왈가왈부 따위가 아니다. 눈앞에 있는 아이를 살려내는 일, 그리고 그 아이가 사회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도록 뒤에서 그늘이 돼주는 것이다.

본지는 창간 22주년을 맞아 소청과 전공의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날 자리에는 서울아산병원 김서연 전공의(3년차), 서울대병원 최윤영 전공의(3년차), 고대구로병원 김현서 전공의(1년차)가 참석했다.

1.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소청과 선택한 전공의들

2. 후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하지만 아이들 보면 웃음 지어져

3. 소청과, 한 아이의 머나먼 인생길을 함께 걸어주는 것

 

전공의들이 보기에

현재 소청과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서울아산병원 김서연 전공의(3년차)
서울아산병원 김서연 전공의(3년차)

서연: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진료 체계 붕괴를 꼽고 싶다.

진료 체계 붕괴란 급성기 질환에 대한 1차 진료의 부재, 즉 개원가의 붕괴를 말한다. 주요 소아 질환인 감염병 관리와 육아 상담 등은 집 가까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의사가 정확한 진단 및 치료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의료 수가의 붕괴로 개원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어려워지면서 다들 대형병원으로 몰리게 됐다. 대학병원은 중증 진료를 담당하는 곳이다. 

그런데 일차 진료의 늪에 빠져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됐다.

두 번째는 의료진을 향한 과도한 책임 전가다. 의사가 모든 것을 완벽히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보호자가 인지했으면 한다.

보호자들이 “대학병원에서 준 약을 먹었는데도 하루 만에 열이 안 떨어진다”며 불만을 제기할 때가 있다. 

이럴 때면 앞으로 내가 수없이 마주하게 될 사건들, 그리고 책임져야 할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의료진은 점차 방어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만 해도 의료진이 도의적인 책임은 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모든 책임이 그들의 몫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 바라는 게 있다면 소청과 수련 과정이 더 탄탄해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한 해에 배출되는 소청과 전문의 수가 줄어든 만큼, 의료진 1명이 5명의 몫을 할 수 있도록 경증부터 중증까지 두루 경험하는 수련 과정이 마련돼야 한다.

윤영: 포괄적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미래가 없어 보이니까 소청과에 지원을 안 하는 것 같다. 몸이 힘든 것에 비해 돈도 많이 못 벌고, 소송 위험도 있고.

소아 환자를 바로 받을 수 있는 종합병원이 많이 없는 이유가 의료진이 고발 위험성이라는 부담감을 갖고 일하기 쉽지 않아서 그렇다.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은 정말 사명감 하나만으로 자리를 지키는 거다.

개원가는 더 어렵다. 아이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보호자도 응대해야 하고, 다른 과보다 채용해야 하는 직원도 많고. 아이들을 위한 시설도 따로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수가가 없으니 벌리는 돈은 없다. 땅 파서 장사하는 것 아니지 않느냐. 게다가 보호자들의 요구를 안 받아주면 맘카페에 병원명이 올라오기까지 한다.

현서: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오늘날 의사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옛날과는 다르다. 그 요구를 반영해 적절한 보상이 따라와야 하는데 정책은 제자리걸음이다. 

보상이 돼도 안 할 마당에 아무것도 득 되는 게 없으니 당연히 안 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런데 소청과 전공의가 됐다. 후회한 적은 없나.

서연: 없다면 거짓말이다. 일주일에 당직만 2~3번이다. 귀가하자마자 소파에 쓰러진 뒤 다음 날 아침에 깨서 간신히 출근할 때, 응급실로 아이들이 밀려오면서 항의가 쏟아질 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강릉아산병원 응급실에 있을 때 겪은 일이다. 급성 장염으로 오랜 기간 설사를 해 탈수 증상이 심한 아이가 있었다. 수액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평상시에도 소아는 정맥 주사를 잡는 게 성인 보다 몇 배는 어렵지만, 탈수로 혈관이 수축했을 때는 더더욱 어렵다. 히포크라테스 할아버지가 와도 힘들 판이었다. 간호사가 2~3번 정도 실패하자 보호자가 “여기가 강릉이라서 그런 거냐”며 응급실에서 폭언을 했다.

결국 의사인 내가 나서야만 했는데, 보호자가 나한테도 심한 폭언을 하더라. 강릉이라서가 아니라 아이의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설명한 끝에 보호자가 진정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왜 소청과를 해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자괴감에 빠진다. 부모가 자식의 일에 이성적이기 어렵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다른 과에 비해 감정노동이 큰 만큼 이 일을 오래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윤영: 아이들 보는 일이 좋아 지원했고, 힘든 것을 이미 알고 시작했기 때문에 웬만한 건 이해하는 편이다. 전공의 과정이 쉽지 않지만,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간혹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그만두는 전공의가 있다. 보통 다른 과의 경우 고년차가 될수록 삶의 질이 좋아지는 게 보이지 않느냐. 소청과는 보호자 민원도 상대해야 하고, 펠로우가 돼서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주말에 회진을 나와 환아 상태를 확인한다. 일부 전공의 시선에는 자신의 미래 모습인 펠로우가 너무 힘들어 보이는 거다.

교수가 돼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연구에 외래에 학생 수업에, 심지어 응급실까지 봐야 하니까 전공의들은 ‘교수가 돼도 힘든 건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개원한다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들려오는 말들이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 미래가 없어 보인다며 나가는 사람들을 차마 붙잡을 수 없다.

현서: 후회한 적은 없다. 그도 그럴 게, 아직은 혼자 당직일 때에도 on-call 당직으로 4년차 선생님들이 당직표에 올라가 있다. 혹시 혼자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고년차 선생님과 상의할 수 있어 든든하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고년차 선생님들이 없어 걱정 되고 두렵기도 하다.

 

반면 소청과 하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서울대병원 최윤영 전공의(3년차)
서울대병원 최윤영 전공의(3년차)

윤영: 혈액종양분과에서 조혈모세포 이식 주치의를 했었다. 그때 무사히 퇴원했던 아이가 이후 외래에 와서 나한테 직접 만든 물건을 주고 가더라. 그게 너무 보람찼고, 혈액종양을 보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하지만 내가 체력이 약해 그 수련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호흡기분과 아이들도 많이 만났다. 뒤센근위축병을 앓는 환자들이 인공호흡기에 잘 적응해서 퇴원하는 것을 보면 ‘내가 그래도 훌륭한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또 아이들이 워낙 귀엽지 않나. 네다섯 살 아이들 노는 걸 보면 되게 귀엽다. 놀리는 재미도 있다. 먹을 거 이만큼 쌓아놓았길래 “선생님 하나 줘”라고 하면 절대 안 주는 아이가 꼭 있다.

현서: 아이들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보다 보니 귀엽다. 처음 병원 오면 아이들이 낯설고 어려워하는데 보면 볼수록 (의료진과) 신뢰가 쌓이니까 잘 웃기도 한다. 말 못 하는 아기들은 그냥 보기에 귀엽고, 서너 살 아이들은 말하는 게 귀엽고.

한 번은 열이 계속 나 집에 못 가는 아이가 있었다. 어머니가 “열 좀 그만 나라”고 하니까 아이가 “내가 열이 나고 싶어서 나?”라고 대꾸하더라(일동 웃음).

청소년들도 귀여운 구석이 있다. 물론 성인인데 소청과 계속 다니는 사람들은 별로 귀엽지는 않고(웃음). 교수님이 그러는데 철 들기 전까지는 소청과 다녀도 된다더라. 아이들도 귀엽고, 배우는 것도 많고, 소청과 하길 잘한 것 같다.

서연: 아무래도 울면서 왔던 아이들이 걸어서 집에 돌아가거나, 살지 못할 것 같은 아이들이 의료진의 적극적인 치료로 다시 살아났을 때가 아닌가 싶다.

특히 신생아실에서 숨도 못 쉬고 눈도 못 뜨던 아이가 살아서 우유를 먹고 있는 것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고대구로병원 김현서 전공의(1년차)
고대구로병원 김현서 전공의(1년차)

현서: 처음 주치의를 맡았던 아이가 기억난다. 다른 병원에서 전원 온 아이였는데, 아버지가 항상 자리에 계셔서 이 얘기 저 얘기 해줬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감사하다면서 나한테 커피를 사줬는데, 그날 아이가 중환자실에 갔었다. 그게 무섭다고 앞으로 커피를 못 주겠다더라. 나중에는 징크스를 깨겠다면서 커피를 다시 사줬다. 지금은 아이가 잘 회복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서연: 우리 병원(서울아산)에는 이식 환자들이 많다. 그중 백혈병으로 골수이식을 받았다가 부작용으로 폐 손상을 입고 결국 이식까지 받아야 했던 아이가 있었다. 당시 침샘염이 생겼다고 인계를 받았는데 지속적인 항생제 치료에도 호전이 없었다.

추가 검사를 받아 보니 이식 후 발생하는 질병 중 하나인 림프세포증식질환(PTLD) 때문이었다. 집을 그리워하는 아이에게 한 번 더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하자니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아프더라.

그날 밤 아이가 쉽게 진정하지 못했다. 울부짖는 아이를 껴안으니 “살고 싶은데 너무 무섭다”며 내 손을 꽉 잡더라. 더 이상 내가 주치의가 아니게 된 후에도 그 아이를 자주 찾아가게 됐다.

안타깝게도 아이는 나중에 다른 원인으로 사망했다. 살고 싶다던 그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다음에 그런 환자를 만나면 꼭 살려보리라 다짐했고,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됐다.

윤영: 너무 많다. 굳이 한 명을 꼽자면 2년차 때 내가 6개월 주치의를 맡았던 5살 남아다. 면역질환 때문에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았는데 이식편대숙주 반응이 와서 폐가 많이 손상됐다. 그런데 아이 상태가 안 좋아지더니 결국 하늘나라로 갔다. 현대 의학으로 살릴 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수많은 의료진이 그 아이 하나를 위해 회의도 많이 하고 폐이식도 고민했는데, 결국은 살리지 못한 게….

도움 될 만한 치료가 있을까 해서 공부도 많이 했지만, 아이가 나빠지는 길을 막을 수 없었다. 병원에서 아이 어머니랑 정말 많이 울었다.

사실 이 아이뿐만 아니라 주치의 했던 환자들은 전부 기억에 남는다. 오래 치료한 아이는 집안 사정도 알게 되고,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특성도 파악하는 등 정말 많은 정을 나누게 된다. 이름과 얼굴이 항상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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