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 아밀로이드 타깃 치료제 연구 효용 입증 계기
치매, 당뇨병·고혈압처럼 관리 가능한 질환 될 것
가격 비싸도 사용 원하는 환자 많아…부작용 통제 가능한 수준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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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배다현 기자] 치매의 근본 원인을 억제하는 신약 '레켐비'가 미국에서 정식 허가를 획득하면서 치매 치료 환경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주목된다.

레켐비의 효능과 부작용, 약가 등을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허가가 중요한 과학적 결과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치매를 만성질환과 같이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 첫걸음이라고 평가한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지난 6일(현지시각)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를 정식 승인했다. 지난 1월 가속 승인 후 6개월만이다.

레켐비는 바이오젠과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항아밀로이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치매 원인 물질로 꼽히는 베타 아밀로이드를 타깃한다.

허가 기반이 된 임상3상 CLARITY-AD 연구에서 레켐비는 경도 인지장애 및 경증 치매 환자의 인지·기능 감소 진행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확인했다.

1795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18개월 동안 레켐비 10mg/kg 또는 위약을 격주로 투여한 결과, 레켐비군의 임상치매척도(CDR-SB) 점수가 위약군에 비해 0.45점 적게 변화해 인지기능 악화가 27% 지연된 것으로 나타났다.

레켐비 허가, 어떤 의미 있나

▲에자이와 바이오젠의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
▲에자이와 바이오젠의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

레켐비는 나빠진 인지기능을 되돌리는 것이 아닌 악화를 막아주는 질병 조절 치료제(disease modyfying agent)다. 한 번 저하된 인지 기능을 복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간 치료제가 증상 완화 효과에 그친데 반해, 레켐비는 치매 발생의 근본 원인을 억제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치료제라고 할 수 있다. 레켐비 허가가 향후 치료제 연구의 이정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학계도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서울성모병원 양동원 교수(신경과, 대한치매학회 이사장)은 "치매 원인이 아밀로이드 단백질이라는 가설에 따라 오랫동안 연구가 이뤄졌는데, 치료제 개발은 계속 실패하면서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며 "이번 허가는 그간의 노력이 헛된 게 아니라는 중요한 과학적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까지 연구 결과에서 치료군의 인지기능 악화 속도가 지연된 것을 보면 치료 2~3년 후 비치료군과 차이가 더 벌어질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연장 연구 결과가 발표돼야 알겠지만 질병 조절 치료제인 레켐비가 질병 경과를 변화시켜 장기간 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천대길병원 박기형 교수(신경과, 대한치매학회 기획이사)는 "치매는 한 번 진행되면 인지기능이 돌아올 수 없는 병이고 전 단계에서 진행을 막는 게 중요하다. 노화 자체를 정복하지 않는 이상 완치는 불가능하다"며 "레켐비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향후 개발될 다른 약제들과 함께 사용하면서 증상이 나타나지 않게 해야 한다. 레켐비 허가는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과 같이 치매를 조절할 수 있게 하는 첫 단계"라고 설명했다.

가격·부작용 허들 넘을 수 있을까

에자이는 지난 6월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레켐비의 품목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이르면 2024년 혹은 2025년 상반기 허가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투여 전후 고가의 아밀로이드 PET-CT 검사가 필요하다는 점과 높은 약가 등이 허들로 꼽힌다. 현재 레켐비의 연간 약제비는 약 3300만원으로 전망되는데, 중증이 아닌 경증 환자가 악화 지연을 위해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양 교수는 "많은 환자가 레켐비를 쓰고 싶어하고 기다리고 있다. 가격으로 인해 모두가 투약할 수는 없겠지만, 효과가 있다면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며 "다행히 우리나라는 PET-CT 검사비가 해외에 비해 저렴하다. 해외는 500만~1200만원까지 하는데 우리나라는 120만원이면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치매 치료제에 대한 환자들의 지불 의사도 크다. 지난해 대한치매학회가 전국 17개 시도 만 18세 이상 남녀 1006명을 조사한 결과, 알츠하이머병 경도인지장애 상태에서 약물 개발 시 월 60만원까지 지불할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이 41.2%, 120만원 15%, 300만원 5.3%, 가격이 상관 없다는 답변도 7%에 달했다.

박 교수는 "당뇨병 전단계에서 당뇨병 진행을 막기 위해 약을 복용하듯 경도인지장애 환자 역시 인지기능 악화를 막을 수 있는 약을 복용하고 싶어한다"며 "이 때는 가족이 아닌 본인이 치료를 판단해 결정할 수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더 의사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허들인 부작용 문제와 관련해서도 전문가들은 충분히 관리가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레켐비와 같은 기전의 알츠하이머 치료제 아두헬름(아두카누맙)은 2021년 FDA 허가를 받았으나, 높은 부작용으로 인해 상용화에 실패했다. 아두헬름 고용량군은 뇌 부종, 뇌 미세혈관 출혈 등 아밀로이드 관련 비정상적 영상 소견(ARIA) 발생이 41.3%에 달했다.

레켐비는 아두헬름에 비해 적은 12.6%의 ARIA 발생률을 보였으나, 이 역시 위약군의 1.7%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레켐비 처방 정보에도 ARIA 관련 잠재적 위험을 알리는 '박스 경고(boxed warning)'가 포함됐다.

박 교수는 "레켐비의 부작용도 적지는 않으나, 희망적인 점은 ARIA는 영상학적인 소견으로 이중 실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22~23% 정도 였다"며 "증상도 경미하고 약을 중단하면 거의 다 없어진다. 따라서 조절 가능한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만 "뇌출혈 위험이 높은 항응고제 사용 환자에게 처방해서는 안되며 APOE4 대립유전자 검사, 다수의 MRI 촬영 등을 통해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면서 "아무에게나 쓸 수 있는 약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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