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전문간호사, 의사 등 타 지역간 입장차 커
구체적인 논의 진전 없이 답보상태, 의협 역할론도 나와

[메디칼업저버 김나현 기자] 우리나라 의료법에 근거는 없지만 병원에선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지며 중요한 인력으로 자리 잡은 이들이 있다. 부족한 의사인력을 채우기 위해 생겨난 PA(Physician Assistant)는 진료보조인력으로도 불리며 실질적으로 의사의 업무를 대체하고 있다. 간호사 뿐만 아니라 응급구조사와 간호조무사 등 그 범위도 확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서울대병원이 PA 소속을 변경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의료계가 한바탕 시끄러웠다. PA 제도화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간 논의에 진척이 없었던 이유는 타 직역과의 관계가 얽혀있고 이들의 주장 또한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PA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 시민단체로부터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해결점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① 논란 속 수년째 방치된 PA, 불법 경계 넘나든다
② 직역별 이해관계 얽혀있다...PA 해결책은 어디에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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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외직종 속하는 PA, 타 직역과도 관계 애매하다
병원계 "PA 과연 없애야 하는지 논의할 장 필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PA가 법정 의료인력에 속하지 않는 '법외직종'이다. 업무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탓에 타 직역과의 불편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고, PA가 수행하는 업무와 자격도 병원마다 제각각인 상태다.

PA와 밀접한 전공의들은 제도화 움직임을 경계해 왔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발표한 전국 전공의 병원평가에 따르면 자신의 수련기관이 PA를 운용한다고 응답한 전공의는 70%를 넘었다. 

이런 가운데 PA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느끼는 전공의 비중은 2018년 약 25%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 시행된지 5년째를 맞았지만, 전공의들은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전체 업무 중 소위 '잡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변함없다고 응답했다.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전공의인 서연주 전 대전협 부회장(23기)은 "매달 혹은 매분기마다 새로 가르쳐야 하는 전공의는 일이 익숙하지 않을 수 밖에 없고, 반복적인 잡무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오래 근무한 PA는 업무에 익숙하다 보니 병원 입장에서도 편하다. 결국 싸고 좋은 인력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수술이 많은 진료과에서는 PA를 SA(Surgical Assistant)로 부르기도 한다. 수술실에서는 이들을 활용하고 외과 전공의는 오히려 병동업무를 보거나 수술실 어레인지(사용 예약) 업무를 맡게 된다"며 "전공의 입장에선 수술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진료과별로 이들의 업무범위는 천차만별이라는 전언이다. 

각 병원에서 정형화된 업무범위가 없다 보니 전공의가 많지 않은 진료과에선 전공의 업무를 대체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다면 각자 개별적인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선 전공의와 PA의 관계도 극과 극인 것으로 전해진다. 서 전 부회장은 "부족한 인력 상황 속 함께 고생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도우며 잘 지낸다"며 "다만 병원마다 차이는 있어 PA가 전공의를 아랫년차처럼 대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2003년 법제화된 영역인 전문간호사(Advanced Practice Nurse, APN)와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의료법에서 인정하는 전문간호사의 실무분야는 가정, 감염관리, 응급, 종양, 중환자 등 13개 영역이다.

전문간호사들은 PA와 업무가 유사한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전공의가 부족한 진료과일수록 이런 형태가 흔하다고 말한다. 

또한 일부 의사들은 전문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PA를 전문간호사와 같은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한국전문간호사협회 임초선 회장은 "PA와 전문간호사의 업무는 중첩되는 경우가 많다. 의사의 업무를 위임받거나, 상급 실무를 수행하는 현실"이라며 "이들은 의사와 간호사의 중간 역할을 하면서 복잡한 치료 과정을 조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PA는 일반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넘어서는 일을 하도록 요구받고, 심지어 경력이 부족한 저년차 간호사도 투입된다"며 "전문간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활동하는 일부 PA도 있지만, 해당 기관에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PA로 분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전공의 등 의사 인력이 부족한 외과계도 PA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한외과학회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PA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부터 적절치 않다. 현재 병원에서 일하는 진료보조인력은 미국과 같은 PA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다"며 "외과학회 입장은 명확하다. 간호사의 업무만 위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병원에 따라 그레이존에 속하는 애매한 일을 시키다보니 문제가 되고 있다. 정확하게 업무를 정의하고 분담해야 하지만 그 부분이 진행되지 않아 혼란이 자꾸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대한병원협회 등 병원계에서는 PA의 존재와 필요성을 마냥 부인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병원계에 따르면 간호사 출신 PA가 많지만 지역과 규모에 따라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등 다양한 직종이 PA 인력으로 운영되고 있다.

병원계 관계자는 "저수가, 의료인력 부족을 이유로 PA가 병원에서 오래 전부터 존재한 것은 사실"이라며 "우리나라에서 PA를 과연 없애야 할 존재인지, 아니면 전공의와 PA의 업무를 명확히 해 균형점을 찾을지 논의할 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PA의 존재는 인정해야 한다. PA가 면허제도로 뒷받침되진 않지만 병원의 흉부외과 등에서 잘 훈련된 전문인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PA 실태조사 촉구하며 관련법 발의
"업무범위 규정이 먼저, 의협 적극 나서야"

고질적인 병폐로 꼽혀온 PA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료계도 공감을 표한다. 

지난해 공공의대 설립 및 의대증원 문제로 전공의들이 파업할 당시 인력 공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PA가 언급되며 PA 제도화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PA를 근절하기 위한 법안도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 방조, 방관한 책임자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 담겼다.

PA 실태파악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고영인 의원은 최근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대리로 수술하고, 처방하고, 처치하는 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현장에서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PA는 관행이 됐다"며 "복지부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법의 근거가 없는 PA가 의료현장에 등장한 것은 업무범위가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선 PA 실태조사부터 명확히 해야한다"며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수준은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논의는 그때 뿐, 해법을 두고 여전히 의견은 분분하다. 의료계는 의사와 간호사, PA 등 각 직역이 수행할 업무범위를 확실히 해야 한다는데 어느 정도 공감한다. 특히 이를 논의하기 위해 대한의사협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외과학회 관계자는 "복지부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본다. 의사들이 먼저 진료보조인력에게 어떤 일을 위임할지 논의하고, 전공의 교육에 차질이 없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즉 업무 분담부터 명확히 한 후, PA 직종이 필요하면 그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논의 없이 PA를 먼저 합법화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다. 이런 주장은 인력을 값싸게 쓰고 싶은 측에서 할 것"이라며 "진료과, 개원가, 중소병원 등 PA에 대한 입장이 모두 다르다. 이런 부분은 각 단위병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의협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공의들은 PA 합법화를 논의하기 전, 체계적인 수련 시스템과 교육 방법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 전 부회장은 "병원에서 전공의와 PA를 값싼 인력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이런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전공의가 충분히 수련받을 기회가 확보된다면 PA와 역할분담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간호사와 의사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면 신뢰할 수 있는 의료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간호사들은 PA의 불법 문제를 해결하고 의사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를 확대하고 전문간호사제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8년 3월 의료법 제78조(전문간호사)가 개정된 후, 지난해 3월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를 규정한 하위법령이 마련됐어야 했지만 유관 기관간 입장차로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현재 복지부는 전문간호사 업무범위 하위법령 마련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임 회장은 "전문간호사와 PA의 업무가 현재 진행 중인 전문간호사 업무범위 제정으로 해결되길 기대한다"며 "합법 인력인 전문간호사의 역할범위에 PA가 행해왔던 업무 중 환자의 건강권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를 명시하면 PA의 불법성 문제를 해결하고, 특정 과의 의료인력 공백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현장에서 실제 배치돼 근무하는 전문간호사는 자격 취득자의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문간호사 활성화 실패가 무분별한 PA 양산으로 이어졌다"며 "전문간호사제도 활성화 실패 원인에 대해 면밀한 분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PA가 오래된 논쟁거리인 만큼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뚜렷한 진척은 없는 상황이다. 

다만 전문간호사의 업무영역은 빠른 시일 내에 규정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문간호사 업무범위는 PA와 분리해 봐야 한다. 의료계와 간호계의 이견이 있지만 법에 따라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를 정비해야 하기 때문에 오래 끌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PA 공론화를 촉구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와 국회의 지적에 따라 현실적 수준에서 실태조사를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PA는 진료보조인력이라는 용어로 논의를 진행 중이다. 현재 제기되는 여러 문제점을 정부도 인식하고 있고, 문제의식도 갖고 있다"며 "다만 아직 뚜렷한 논의 결과물은 없다"고 전했다. 

이어 "진료보조인력을 모두 조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전수조사가 과연 효율적인지 따져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실태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그 결과를 토대로 관련 직역간 의견을 조율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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