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규제과학의 개념과 정책방향 주제로 첫 포럼 열어
업계 전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포괄적 통합 논의 필요

이미지출처: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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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인공지능(AI), 디지털 치료제, 유전물질을 사용하는 백신 등 기존에는 없던 개념,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른 형태의 제품들이 제약업계에 속속 등장하면서 인·허가 등의 규제 정책 변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이에 신속하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미국과 유렵 등의 주요 국가는 규제과학의 정의와 전략을 수립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규제과학을 통해 신약개발의 불확실성을 낮추고 성공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롯해 업계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제1회 규제과학 혁신 포럼'을 개최, 규제과학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새로운 모멘텀을 제공하기 위한 방안을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했다.

이번 포럼은 '규제과학의 개념과 정책방향'을 주제로 열렸으며 올해 2회와 3회가 추가로 예정돼 있다.

이는 제약바이오업계의 문지기(gate keeper)에서 조력자(enabler)로의 역할 변화를 고심하는 정부 입장에서 규제과학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규제과학은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명확한 정의는 아직 없으며, 계속 진화·발전 중이다.

의약품, 바이오의약품, 의료기기, 헬스케어제품 등에 대한 안전성, 유효성, 성능을 평가하는 도구, 기준, 접근법을 개발하는 '과학'으로 '규제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개념이다.

규제과학은 과학적으로 데이터를 평가하고 사회적 요구 등 다양한 요소를 균형감 있게 고려해 과학 발달에 따라 새롭게 개발되는 첨단 제품을 환자와 사회에 신속하게 전달하는 가교역할을 수행하는 게 주요 역할이다.

즉, 규제를 법적·행정적 측면에서 해석하는 경직적이고 기계적인 방식이 아니라 과학적 토대를 둔 규제의 설계와 운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앞서 식약처는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규제과학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했으며 이번 포럼도 그 일환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발표한 '제2차 의약품 안전기술진흥 기본계획안(2021~2025년)'에 따르면 규제과학 환경 조성에 대한 식약처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당시 규제과학 연구역량 강화를 위해 전문인력을 600여명 양성하는 등 민·관 연구개발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식약처 김강립 처장은 기조강연에서 "국내 규제과학을 선도하고 이끌어야 하는 책무를 가졌다"며 "규제과학을 통해 신약 개발의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단순 규제과학 발전 넘어 통합평가 가능한 방안 필요"

이날 포럼에 참석한 업계 전문가들은 단순히 규제과학의 정의와 개념을 수립하는 것을 넘어 통합평가가 가능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식약처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국가신약개발사업 김순남 본부장은 "신약개발은 더 정교하고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규제기관이 임상디자인의 가이드라인부터 발전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약이 합성의약품에서 바이오의약품, 유전자치료제로 진화하는 과정을 기존 규제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이에 발맞춘 새로운 규제과학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 김법민 단장도 "식약처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새롭게 발견·제시되는 제품에 대한 선제적인 규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라며 "빠른 발전 속도를 따라가려면 연구자들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왼쪽부터)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 김법민 단장, 국가신약개발사업 김순남 본부장, 연세의대 기초의학교실 박유랑 교수,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엄승인 본부장,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손수정 부장.
(왼쪽부터)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 김법민 단장, 국가신약개발사업 김순남 본부장, 연세의대 기초의학교실 박유랑 교수,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엄승인 본부장,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손수정 부장.

이어 "AI 관련 의료기기가 70건 넘게 허가 받았지만 수가를 받은 제품은 하나도 없다"며 "규제과학 논의는 식약처 혼자서 할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등 다른 규제기관과 함께 해야 연구자 입장에서 바람직하게 느껴진다"고 부연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규제과학에 걸맞은 새로운 법령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연세의대 박유랑 교수(기초의학교실)는 "새로운 치료제와 의약품 등이 나올 때마다 제도를 변화시키는 땜질 방식의 규제는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라며 "새 규제과학에 맞는 새로운 법령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규제과학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놓인 제약업계는 규제과학의 발전에 전반적으로 동의하지만 이미 평가받은 기존 제품에 대한 문제해결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엄승인 본부장은 "규제가 상향되면 스펙을 맞추기 위해 재투자하고 수준은 점점 올라간다"며 "하지만 규제 발전에 따라 기준 자체가 변하면 기존에 안전하다고 평가받은 제품이 부정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규제과학이 발전할수록 부정되는 제품이 많아질 수 있다"며 "이 제품들에 대한 영향 평가를 어떻게 할지 검토해야 사용상의 혼란이 없을 것"고 강조했다. 

결국 규제과학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무작정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데 집중하기 보다는 과거 기준에 맞게 만들어진 제품에 대해서도 통합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식약처는 규제과학이 제약바이오산업 생태계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손수정 부장은 "식약처만의 연구개발(R&D)가 아닌 업계와 학계, 국민이 모두 공감하는 개념을 창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부부처가 동일한 지향점을 향해서 협력하면 규제과학 발전 생태계에 좋은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언급했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서경원 원장도 "결국에 신기술이 제품화되기 위해서는 규제과학의 합리적인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며 "현시점에서 우리 실정에 맞게 규제과학이 선도할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인지 등을 고민할 수 있는 논의구조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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