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도입 토론회 30일 개최
적절한 조기진단 어렵고 사회 낙인, 경제적 어려움까지
보호의무자 폐지, 공적이송체계, 사법입원제 등 제안

[메디칼업저버 김나현 기자] 조현병을 포함한 중증정신질환자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 가족에게만 모든 책임이 전가되고 있다는 호소가 나왔다.

이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 살인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보호자 책임제'에서 '국가책임제'로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30일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한국정신장애인협외와 공동주관으로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위한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발제에 나선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김영희 정책위원은 조현병 환자를 가족으로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조현병은 대표적인 중증정신질환으로 꼽힌다. 15~25세에 발병해 평생 유지되며 환각과 망상, 와해된 언어, 기이한 행동 등이 주요 증상으로 나타난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김영희 정책위원

김 정책위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흔한 병이고, 그 어떤 병보다 가정과 사회에 부담을 준다"며 "모든 조현병 환자가 잠재적 범죄자는 아니지만, 고위험군에 속하는 조현병 환자는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현병은 질병 발생을 인식하는 '병식'이 없어 초기 인식이 어렵다. 또한 재발되면 병식이 약해지거나 사라지고, 당사자 뿐 아니라 가족의 병식도 함께 약해지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조현병은 약물치료순응도도 상당히 낮아 의사와의 상의없이 약물치료를 중단하는 경우도 많다. 임의로 약물치료를 중단해 재발하는 경우 당사자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문제를 초래한다.

 

조현병 환자 가족, 경제적 부담으로 빈곤층 추락

"국가책임제는 의료와 복지, 치안까지 제공하는 것"

2005년 조현병 산정특례 제도가 도입됐지만 여전히 경제적 부담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생계급여 수급률 통계에서도 전체 일반인구(2.4%)에 비교해 정신장애인은 23배 높은 54.7%에 달했다.

김 정책위원은 "2005년 전 초발한 환자 가족은 의료비 부담이 상당했다. 지금도 입원시 한달 이상 입원하기 때문에 산정특례가 적용돼도 부담이 적지 않다"라며 "최소한 한명이 당사자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함께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신체질환자와 달리 정신질환자는 국가의 공적환자이송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출동한 현장에서 명백한 폭력이 관찰되지 않으면 소방관·경찰은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고, 사설이송단을 통하면 환자의 보복심리를 자극할 뿐 아니라 수십만원에 달하는 비용도 문제라는 것이다.

김 정책위원은 "진주아파트 방화 등 사건들이 발생한 근본적인 문제는 책임 소재다"라며 "사건의 책임을 기관과 정부 공권력에 분산시켜야 한다. 판사와 법원이 입원을 결정하는 정신질환자 사법입원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정책위원은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가족의 부담을 줄여주고, 중증정신질환 당사자에게 필요한 의료와 복지, 치안을 국가가 책임지고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포함돼야 할 요소로는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 ▲공적이송체계 ▲엄격한 비자의입원요건 개선 ▲사법입원제 도입 ▲맞춤형 커뮤니티케어 등이 제시됐다.

 

2018년 이후 다수 발생한 정신질환자 살인사건

"제도 보완 없이 사고낸 사람만 탓하며 구조적 방치"

이어 발제에 나선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법제이사(경희의대 정신건강의학과)도 정신건강국가책임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법제이사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법제이사

실제로 2018년 이후 중증 정신질환자로 인한 살인사건은 다수 발생해왔다. 2018년 7월 영양 경찰관 사망사건, 2018년 12월 31일 고 임세원 교수 사망사건에 이어 2019년에는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사건이 있었다.

백 이사는 조현병 환자에 의해 영양에서 발생한 경찰관 사망사건을 사례로 들며 우리나라의 제도 미비점을 설명했다.

그는 살인 경력이 있는 중증환자였으나 보호자인 어머니가 입원비 부족을 이유로 퇴원을 요청했다. 주치의의 만류에도 결국 퇴원했고 이후 병식부족과 투약중단으로 증상은 재발했다.

백 이사는 "우리나라는 자타해 위험이 있더라도 보호의무자가 퇴원을 원하면 퇴원할 수 있다. 만일 경찰에 의해 응급실로 이송해도 보호의무자의 동의 없이 재입원이 불가능하다"며 "퇴원 후 사례관리체계도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중증정신질환자의 퇴원은 판사가 판단하고, 영국과 호주는 정신건강심판원이 담당한다.

퇴원 후에는 외래치료지원제와 함께 매일 전문가가 가정을 방문하고, 만약 투약을 거부할 경우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제공한다.

백 이사는 "만약 사고가 발생하면 정신건강응급개입팀과 경찰이 함께 출동해 지정병원 응급실로 이송한다"며 "이러한 시스템 없이 사고가 없길 바라고, 사고를 낸 사람만을 탓하면 속은 시원할 수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방치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 이사가 제안한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는 먼저 제시된 모형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정신건강심판원을 통한 입퇴원 결정 ▲국가책임성 강화 ▲정신건강복지센터강화 등이 추가로 담겼다.

그는 "정부가 정신건강종합대책을 발표해 예산을 포함했지만 근본적인 질문에는 답을 못하고 있다"며 "백악관에서는 대통령이 1년에 두 차례 정신건강 컨퍼런스를 주재한다. 국가책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호의무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형태에서 국가와 사회에 책임을 부여하고 주거,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책임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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