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CIDP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과실로 조기 치료 기회 상실"
일실수입, 위자료, 전동휠체어 교체비 등 '1억 6600만원' 배상판결

이미지출처 :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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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김나현 기자] 기존에 당뇨를 앓던 환자에게 근력 마비가 동반돼 결국 하반신 마비 장애를 갖게 된 경우, 만성 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성 신경병증(CIDP)을 고려하지 않은 의료진도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당뇨 합병증 뿐만 아니라 CIDP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기 진단을 위한 검사를 시행했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하반신 마비의 책임을 두고 병원에 손해배상을 요구한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다.

원고인 A씨는 2017년 5월 2일부터 같은해 8월 31일까지 B병원에서 우측 골반 통증, 보행장애, 양쪽 손발 저림 등 증상으로 진료를 받았다.

정형외과와 내분비내과, 신경과와 같은 진료과에서 여러 검사를 받은 A씨는 당뇨병성 다발신경병증, 당뇨병성 근위축증 등을 진단받았다.

진단 내역에 따르면 B병원 신경과는 A씨의 마지막 진료일에 "말초신경병은 당뇨병일 가능성이 있다. 기타 원인 및 다른질환과의 감별을 위해 혈당 조절을 하면서 수개월 경과 관찰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A씨는 다음달인 9월 7일 C병원에 내원했다. 

해당 병원이 뇌척수액검사, 신경생검을 시행한 결과 만성 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성신경병증(CIDP)로 진단됐고 A씨는 혈장교환술 등의 치료를 받았다.

A씨는 C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상지의 기능은 일부 회복했지만, 양 하지는 비가역적인 완전 마비상태로 상지는 위약감이 있는 상태다.

A씨 측은 B병원에 외래진료를 시작한 이후에도 마비증상이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에, 의료진이 CIDP를 염두에 두고 이를 감별하기 위한 검사를 시행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CIDP의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과실로 A씨가 조기에 치료할 기회를 상실하게 해 하반신 마비 장애에 이르게 했고, B병원이 A씨가 입게 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B병원은 A씨가 2017년 7월 25일 신경과에 외래진료했을 당시, 의료진이 CIDP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므로 스테로이드, 면역억제제, 면역글로불린 투여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A씨가 이러한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 시도하지 못했고, CIDP는 2개월 이상 시일이 경과해도 계속 진행하는 경우 진단기준에 부합하므로 의료진에게 CIDP 진단 지연에 대한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 "CIDP는 조기 감별 필요한 질환...검사 소홀한 과실 인정"

하지만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의 근력 마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CIDP는 진단이 지체되면 환자의 예후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심한 당뇨를 앓고 있었어도 CIDP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검사를 시행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B병원의 의료진은 A씨의 질병이 CIDP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단검사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음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B병원의 주장에도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고 봤다.

의료진이 A씨에게 CIDP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스테로이드 등 치료를 시도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2~3개월 먼저 CIDP에 대한 치료가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원고의 후유장애 발생을 막기 어려워 A씨의 장애와 B병원의 과실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B병원 측의 입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CIDP는 진단이 지체되면 예후가 좋지 않아 조기에 감별이 필요한 질환임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B병원의 과실로 조기치료가 지연됐다고 하더라도 ▲실제 증상의 진행 경과는 환자마다 다른점 ▲A씨가 과거에 경험한 병력이 증상의 발생 및 확대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 등을 고려해 B병원의 책임범위를 15%로 제한했다.

재판부는 B병원이 A씨에게 총 1억 6674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총 재산상 손해액에서 책임범위 15%를 계산한 결과다.

재판부가 인정한 A씨의 재산상 손해액은 ▲일실수입 2억 4613만원 ▲개호비(간병비) 7억 5079만원 ▲전동휠체어 교환비용 1471만원 ▲위자료 1500만원 등이다.

A씨는 하지마비 상태로 식사, 공간이동, 배변, 탈의, 목욕시 도움이 필요한 상태다. 법원은 오는 2062년 1월 19일을 A씨의 여명종료일로 보고 1일 6시간 정도의 개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며 노동능력상실률은 45.2%로 계산했다.

다만 향후 치료비는 손해액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의 상지마비에 대해 치료가 필요한 사실은 인정되나, A씨가 C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상지마비 증상이 호전됐다"고 했다.

다만 "CIDP는 조기에 치료가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B병원의 진단 지연으로 상지마비에 대한 향후 치료가 필요하게 됐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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