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병원의사협의회·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 성명서 발표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지난해 31일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강북삼성병원 故 임세원 교수(정신건강의학과)를 향한 의료계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와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2일 연이어 성명서를 발표했다.

의료계는 고인을 추모하며 이러한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국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뜻을 함께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고인은 환자를 위해 살아온 의사"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고인을 '온전히 환자를 위해 살아온 의사'라고 전하며 애도했다. 

병의협은 "고인은 늦은 시간까지 환자를 돌보고, 환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기 위해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온전히 환자를 위해 살아온 의사였다"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많은 사람을 구해내려 애썼던 열정적인 의사였고, 자신의 생명이 위험한 다급한 순간에도 같이 일하는 간호사가 피신했는지를 살폈던 의인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병의협은 의사를 비롯한 모든 의료계 종사자가 지금도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현실을 지적했다.

병의협은 "치열한 의료 현장에서는 이번과 같은 비극적인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며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의료인들에 대한 폭력과 살인은 환자의 목숨까지도 앗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의료 현장에서 환자와 의료인 모두의 안전이 확실히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의료 현장에서 환자와 의료인 모두의 안전이 확실히 보장돼야만 보다 많은 환자가 살아날 수 있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며 "병의협은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일들을 앞으로 해나가겠다"고 전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비극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해야"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대형 종합병원의 진료현장에서 의사를 대상으로 끔찍한 살해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사는 대부분 진료현장에서 자기방어를 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정부 대책은 미흡하다고 꼬집었다. 진료실 전화 및 비상벨은 이번처럼 급작스러운 행동 앞에서 무력하다는 것이다. 

의사회는 "의사들은 종종 환자가 공격적이거나 폭발하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노력을 통해 설득과 이해를 얻어내지만 드물게는 급작스러운 분노폭발 및 위험한 상황을 감수해야만 한다"면서 "의사가 환자에게 죽임을 당한 사건은 과거에도 있었다. 이런 끔찍한 비극이 반복됐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책은 미흡하기만 하다"고 지적했다.

또 어려운 의료여건상 환자들의 불만이 종종 생기며, 이와 함께 정신병적 증상 악화가 맞물리면 더없이 위험한 상황이 전개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우리나라 진료수가 문제는 오래전 단추가 잘못 끼워져 긴 갈등으로 이어져 이제는 바로잡기 어려운 현실이 됐다. 많은 환자를 정해진 시간 내에 보고, 그것도 비급여검사 혹은 진료마저 함께 시행해야 하니 이 과정에서 환자들의 불만이 종종 생긴다"며 "불안정한 정서와 생각으로 충동성, 공격성이 갑자기 증폭되는 일부 정신건강의학과 환자의 경우, 진료 현장은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상황마저 벌어진다"고 토로했다.

이에 의사회는 행정당국과 법을 제정하는 입법부에 의사들이 외래에서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확실하고 철저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의사회는 "이번 일을 계기로 국가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의 특수성을 제대로 인정해야 한다. 또 발생 가능한 위험성에 대해 경비인력을 지원하는 등 안전하고 소신있는 진료를 위한 정부차원의 의료진 보호 정책을 필수적으로 강구해야 한다"며 "의사회는 무엇보다 먼저 진료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과 유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 다시는 이러한 끔찍한 참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회원 보호에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 "묵살된 정신과 의사들 목소리…예정된 일이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이번 사건을 "예정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봉직의협회에 따르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지난 2017년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해 "정신질환자들이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고 결국 환자 자신과 사회의 안전망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묵살됐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제대로 된 입원 시스템과 지역사회의 돌봄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환자를 치료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법이라는 게 봉직의협회의 전언이다.

봉직의협회는 "잘 치료받은 정신질환자는 위험하지 않다. 그런데 이제는 중증 정신질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중증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라며 "환자는 치료받을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의사는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모두에게 불행하고 슬픈 일"이라고 밝혔다.

이에 국가가 치료를 보장하는 사법입원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를 통해 치료가 필요한 이들에게 제도적으로 치료를 보장하고, 환자와 사회, 국민의 안전을 보살펴 달라는 것이다. 

봉직의협회는 "작금의 강제입원 제도를 폐지하고, 국가가 치료를 보장하는 사법입원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면서 "또 지역사회에 환자들이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을 확충하고, 증상이 악화됐을 때 신속히 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 달라"고 제언했다.

이어 "이러한 요청이 더 이상 예산과 인력의 부족이라는 논리에 부딪혀 순진하고 헛된 소망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귀 기울여 달라"면서 "비통한 오늘의 슬픔이 이 땅의 모든 환자와 그들의 가족, 그들을 치료하는 모든 이에게 희망으로 바뀔 그 날을 고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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