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경정신의학회·대한의사협회, 강북삼성병원 고 임세원 교수 애도 성명서 발표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고 임세원 교수는 본인에게는 한없이 엄격하면서 질환으로 고통받는 많은 이들을 돌보고 치료하고 그들의 회복을 함께 기뻐했던 훌륭한 의사이자 치유자였습니다."

지난해 31일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강북삼성병원 고 임세원 교수(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이사장 권준수)와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는 고 임세원 교수 피살사건에 대해 애도 성명서를 1일 발표했다. 

고인은 직장정신건강영역의 개척자였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국형 표준자살예방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의 개발책임자로서 우리나라의 자살예방을 위해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전문가로 손꼽힌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018년 마지막 날 저녁에 날아온 청천벽력과 같은 비보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모든 회원은 애통하고 비통한 감정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며 "또 고인이 돌보던 환자분들이 받을 심적 충격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학회는 고 임세원 교수를 잃고 크나큰 슬픔에 잠겨있을 유족, 동료들과 그 고통을 함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학회는 고인의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언급하며 고인을 '통증으로 인한 우울증의 고통을 경험한 치유자'라고 표현했다. 

학회는 "다시 한번 고인과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를 드리는 바이며 별도의 추모 과정을 통해 고인을 뜻을 애도하고 기억하는데 마땅한 일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학회는 "진료 현장은 질병의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는 아름다움이 넘치는 희망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재발과 회복의 반복을 일선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치료 현장은 결코 안락한 곳은 아니다"면서 "의사에게 안전한 치료 환경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환자에게 지속적 치료를 제공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정신보건의료 제도하에서 이러한 사고의 위험은 온전히 정신과 의사와 치료팀의 스텝들이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 일은 정신과 환자를 위해 일하는 모든 이들이 겪을 수도 있는 비극이었다"면서 "학회는 이러한 문제와 그 해결책에 대한 섣부른 논의를 지양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완전하고도 안전한 치료 시스템 마련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회 성명서를 통해 유족의 입장도 함께 전했다. 

학회에 따르면, 유족들은 '안전한 진료환경'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길 부탁했다. 이 두 가지가 고인의 유지라고 생각한다는 것. 

학회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라고 인간의 기본적 감정을 거스를 수는 없다. 다만 그 화의 에너지가 헛되이 사용되지 않고 고인의 유지를 이어갈 수 있는데 사용되기를 바란다"며 "학회는 고인의 유지를 이어나가기 위해 앞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학회는 현 이사장(서울대 권준수 교수)과 차기 이사장(한양대 박용천 교수)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대책위원회를 구성했으며, 학회 홈페이지에 추모의 공간을 개설해 전 회원이 임 교수를 애도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대책위원회는 안전하고 완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현황 조사 및 정책 방안들을 논의하고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대한의사협회 "예고된 비극…정부·정치권 대책 마련에 나서야"

대한의사협회도 1일 입장문를 통해 고인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의협은 "의료진에 대한 폭력 사건이 유난히 많았던 지난 한 해, 전 의료계가 한마음으로 대책을 강구해 왔으며 그 첫 성과로 국회에서 응급의료 종사자에 대한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불과 며칠 되지 않은 상황에서 참변이 벌어졌다"며 "예기치 못한 불행으로 유명을 달리 한 회원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도 심심한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예고된 비극'이었다고 밝혔다. 의료인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의 폭행은 수시로 이루어져 왔으며 살인사건 역시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의협은 "다행스럽게도 최근 응급실 내 폭력사건에 대한 처벌 강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이번 사건은 응급실뿐만 아니라 의료기관 내 어디에서든 의료진을 향한 강력범죄가 일어날 수 있으며 우리 사회의 인식과 대처가 여전히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정치권이 의료진에 대한 폭력 사건에 대해 그 심각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피력했다. 

이와 함께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갈등과 폭력을 흥미 위주로 각색하거나 희화화하는 방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의협은 "최근 상류층의 자녀 교육을 주제로 한 한 드라마에서는 수술 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칼을 들고 의사의 뒤를 쫓는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여 방송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은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면서 "피의자가 이 방송을 보고 모방한 것이 아니더라도 방송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료진에게 폭언이나 욕설을 하거나 진료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력을 써서 항의해도 된다는 식의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이러한 방송 행태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막연한 오해나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이 피의자의 정신질환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아직 전혀 밝혀진 바가 없다는 것. 

의협은 "이번 사건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환자 사이에 벌어지면서, 일부에서는 적절하게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의 공격성이 이번 사건의 원인이 된 것이 아니냐는 식의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오히려 섣부른 언론의 추측성 보도나 소셜미디어상의 잘못된 정보의 무분별한 공유가 대중의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계했다.

이어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건의 전말과 범행 계기, 환자의 정신질환과의 연관성 여부 등이 모두 정확하게 밝혀지고 일벌백계로 삼을 수 있는 엄정한 처벌은 물론,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의료인 대상 폭력사건에 대한 사회 전체의 문제 인식 제고가 함께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피력했다. 

정부도 임 교수 및 유족에 대한 심심한 조의를 표명하면서 진료실 안전을 위한 대책 마련에 들어간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정윤순 과장은 "故 임세원 교수님과 유족분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바친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제도적으로 미비된 진료실 안전 대책을 위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 과장은 "바로 대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의사협회, 병원협회, 신경정신의학회 등 의료계와 만나 대책을 위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국회는 지난해 응급실 폭행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응급의료법 및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진료실내 폭행에 대한 부분은 논의에서 제외된 상태.

정 과장은 "응급실에서의 폭행과 관련해서는 응급의료법과 의료법으로 개선됐지만 진료실내 폭행 사건에 대해서는 논의가 보류된 상태"라며 "차기 법안소위에서 진료실내 폭행과 관련한 논의가 진행될 경우, 정부차원에서 적극 의견을 제시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의료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에서 고 임세원 교수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 안전성을 위한 청와대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무방비로 노출된 진료실내 환자 및 보호자들의 폭행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다음은 고인이 사망하기 보름 전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글이다.

얼마 전 응급실에서 본 환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신 선생님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긴박감과 피냄새의 생생함 그리고 참혹함이 주된 느낌이였으나 사실 참혹함이라면 정신 과도 만만치 않다. 각자 다른 이유로 자신의 삶의 가장 힘겨운 밑바닥에 처한 사람들이 한가득 입원해 있는 곳이 정신과 입원실이다.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에 모두가 가장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보다 객관적 상황에 처해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그중에서도 정말 너무 너무 어려운, 그 분의 삶의 경험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혹함이 느껴지는, 도저히 사실이라 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도대체 왜 이 분이 다른 의사들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 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이면서 그 분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다. 이렇게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가 어 느 새 가득 찼다. 

그 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또한 그 분들에 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되어 더 많은 환자들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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