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치매 진행 완전히 차단하는 치료제 임상시험 모두 실패

지난 15년간 세계적 제약사들은 치매 완치를 꿈꾸며 치매 진행을 막는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현재까지 진행된 임상시험은 120여 건. 그러나 최종적으로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치료제는 도네페질(donepezil), 리바스티그민(rivastigmine), 갈란타민(galantamine), 메만틴(memantine) 단 네 가지에 불과하다.이마저도 치매를 완전히 치료하기보단 증상 발현을 3년가량 늦추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치매 진행을 차단하면서 정상 기능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치료제는 모두 임상시험에서 고배를 마셔 부재한 상황이다.치매 치료제 개발 실패율이 '99%'를 웃돌고 있지만 '1%'의 가능성을 향한 제약계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환자군 또는 치료 용량 등을 변경해 새로운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치매 정복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스포츠계의 명언처럼 거듭된 실패에도 다시 일어서는 '칠전팔기' 치매 치료제 개발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했다.[창간특집①] 치매 치료제 개발 도전기…'1%'를 향해 쏴라[창간특집②] 멈추지 않는 도전…새로운 물질로 임상 진행 중'[창간특집③] 패러다임 전환한 치매 치료제 개발 '주목'

솔라네주맙·베루베세스타트, 추락한 '기대주'

제약계는 치매 유발 원인을 차단할 수 있는 치료제 개발에 도전장을 내밀어 왔다. 그중 가장 가능성 있는 신약으로 주목받았던 후보물질은 '솔라네주맙(solanezumab)'과 '베루베세스타트(verubecestat)'다. 하지만 최근 2년 사이에 개발을 중단한다는 비보를 전하며 두 후보물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솔라네주맙은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하는 단일클론항체 제제다. 초기 치매 환자에서 베타아밀로이드 증가를 억제해 뇌 신경세포 파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도록 개발됐다. 그러나 2016년 개발사인 일라이 릴리는 경도~중등도 알츠하이머병 환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솔라네주맙의 효능을 알아본 EXPEDITION3 임상 3상이 실패했다고 공표했다. 

개발에 11조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을 쏟아부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고 최종적으로 개발사는 치매 치료제 개발 중단을 결정했다. 

지난해 2월에는 MSD가 베루베세스타트의 임상시험 중단 소식을 알렸다. 베루베세스타트는 베타아밀로이드 생성을 저해하는 BACE 1(beta-site amyloid precursor protein cleaving enzyme 1) 억제제 계열 약제로, 경도~중등도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타깃으로 했다. 

하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EPOCH 임상 2/3상 모니터링 결과에서 더는 긍정적인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해 MSD는 EPOCH 임상 2/3상을 최종 중단했다. 

당시 MSD는 알츠하이머병이 발병하기 직전인 알츠하이머병 전구증상 환자에서 베루베세스타트의 가능성을 계속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치매 치료제 개발에 한 줄기 희망을 남겨 놓았다. 그러나 지난 2월 알츠하이머병 전단계인 경도인지장애 환자에서 베루베세스타트의 효과 및 안전성을 본 APECS 임상 3상도 중단하면서 베루베세스타트는 솔라네주맙과 같은 길을 걷게 됐다.

'베타아밀로이드 가설' 무너지나

연이은 치매 치료제 임상시험 실패는 개발의 기반이 됐던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을 흔드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은 치매 연구의 가장 중심이 되는 이론이다. 정확한 치매 유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정상인보다 치매 환자의 뇌에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지나치게 많이 발견되면서 베타아밀로이드는 현재까지 치매 진단의 중요한 바이오마커로 활용되고 있다.

그동안 제약계는 치매 환자의 뇌 속 베타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치료제 개발에 초점을 맞춰 왔다. 하지만 임상시험이 계속 고배를 마시면서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은 조금씩 힘을 잃고 있으며, 학계에서는 이 가설이 맞는지를 따지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장인 서울의대 김기웅 교수(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치매 치료제 임상시험이 실패하기 전부터 일각에서는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며 "일부 전문가는 베타아밀로이드가 치매를 유발하는 나쁜 공격물질이 아니라 뇌에 악영향을 미치는 공격물질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기에 이를 제거하면 오히려 더 증상이 나빠질 것이란 주장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타우 가설'?…"타우 단백질도 함께 억제해야"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이 흔들리면서 또 다른 치매 원인으로 지목되는 '타우(Tau)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 타우 단백질은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신경세포의 기능 및 형태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응집되면 신경세포 퇴행을 직접 유도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지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는 게 타우 가설이다. 

영국 캠브리지대학 Thomas E Cope 교수팀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과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을 통해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를 손상시키는 타우 단백질이 뉴런에서 뉴런으로 전파된다는 증거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에 타우 단백질을 공격할 수 있는 치료제가 개발되면 타우 단백질이 전파되기 전 제어해 치매를 막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Brain 2018;141(2):550-567). 

이와 함께 하나의 원인보다는 여러 원인을 복합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치매는 단일 원인으로 발병하지 않기에,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 등과 다른 원인을 함께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톨릭의대 임현국 교수(여의도 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치매는 하나의 원인으로 발병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뿐만 아니라 분자적, 유전체적 문제 등이 함께 치매 발병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라며 "뇌에 베타아밀로이드가 있는지는 검사를 통해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지만 아직 치매 병리과정 진행을 확인하기 어렵다. 현재 다양한 생명현상을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환자 특이적으로 치매를 치료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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