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선 교수 실손보험 심사 주장에...의협·병협·정부 '비판'

급증하는 의료비 절감을 위해 '비급여'에 대한 국가적인 관리가 필요하며, 일환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민영 실손보험에 대한 심사를 위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병원계, 의료계 등에서는 보험회사가 국민건강과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미국식 의료 영리화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국민의료비의 효율적 관리방안'을 주제로 지난 6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는 발제를 통해 '실손보험의 심평원 심사 위탁'을 주장했으나, 이와 관련해 여러 이해단체의 반발에 부딪쳤다.

▲ 연세대 정형선 교수.

우선 정 교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에도, 보장률은 오히려 떨어지거나 60% 초반에서 머물러 있다"며 "이는 비급여 진료비의 급증 탓"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 진료비 부담을 줄이면서, 비급여 부분이 급증하는 것을 국가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실손형 민영보험에 대한 심사평가원의 심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시민사회단체와 의료계에서 금융위원회의 심사 위탁 검토에 대한 논란과 반대가 심한 것과 관련 "공공기관이 왜 민간보험을 심사하느냐고 지적하는 것은 지극히 '단견'에 불과하다"면서, "민간보험도 공공보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건강보험 제도권 내에서 이를 관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비급여에 대한 용어와 코드를 정비하고, 비급여 가격비교 사이트를 보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교수는 "공급자 입장에서는 건강보험제도권 내에서 비급여를 조사하는 데 불쾌하겠지만, 환자, 국가 입장에서 봤을 때 직권으로 이를 심사하는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외에도 전체 의료비 지출을 줄이면서 비급여 진료비 축소를 위해서는 ▲임의비급여 유형별 관리 및 보완책 마련 ▲신의료기술의 평가제도 및 급여결정체계 정비 ▲의학적 비급여에 대한 관리 ▲선별급여제도의 모니터링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경제학자·건보공단·병원계 "비급여 제지 전 '적정수가'부터 실현하라"

하지만 또다른 주제발표자인 보험연구원 이태열 금융정책실장은 의사들이 경제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제도를 묵묵히 시행해왔는데, 이에 대해 더 큰 통제를 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 실장은 "공공의료를 제공하는 기반이 거의 없음에도 건강보험제도가 자리잡은 것은 민간소유의 의료기관을 강력하게 통제한 데 따른 것"이라며 "경영에 대한 책임은 모두 의료공급자가 지고 있음에도, 국가제도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 기이한 정책을 실현했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정부가 저수가 정책을 고수하면서 의사들이 병원경영을 보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급여 진료를 혼합해 사용 중이며, 계속되는 통제로 인해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부연했다.

이러한 제도에 대한 개선을 시행하지 않은 채 '비급여 직권 심사' '실손보험의 심평원 심사 위탁' 등을 논의하고 있는 것에 대해 "비급여 남발이나 실손보험환자의 과잉진료는 의사의 잘못이 아님에도 의사를 옥죄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며 "합리적인 틀과 조정 및 심의기구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자율적인 조정심의기구에서 비급여와 실손보험에 대한 부분을 심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의견이다.
 

 

저수가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논리는 공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도 동의했다.

건보공단 정현진 연구원은 "비급여 관리와 가격에 대한 모니터링은 반드시 시행해야 할 사안"이라면서도, "궁극적으로 비급여 확산 원인이 되는 저수가부터 개선해 적정수가를 마련하는 것이 선행 과제"라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 이계융 상근부회장은 "국민 의료비 증가가 마치 비급여에서만 기인한 것처럼 해석하면 곤란하다"면서 "저수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병원 유지를 위해 쓰인 부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적정보상도 없이 비급여 관리와 통제만 주장하는 것 옳지 않다. 또한 마치 병원에서 불필요한 비급여를 남용한 것처럼 매도하는데, 필요에 따라 비급여 진료를 본 것"이라고 못박았다.

비급여에 대한 직권 심사는 의료 기술과 질 발전을 저해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정책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부회장은 "정부에서 적은 비용으로 최고의 서비스 한다고 자랑하지만, 이는 병원들의 마른수건 짜기에 불과하다"며 "수건이 찢어질 만한 참담한 상황이다. 이제는 늦었지만 적정부담, 적정수가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민간보험 회사 손해를 왜 국민과 의사가 메워야 하나?"

 

특히 이 부회장은 정 교수가 '민간 실손보험의 심평원 심사 위탁' 주장과 관련 "민간보험 회사에서 무리하게 가입자를 확대한 후 손해를 보니깐 공적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손해율이 높다는 이유로 정부를 압박하고, 의료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보험사 행태는 자신들이 만든 상품에 대한 손해를 스스로 책임지지 않고, 국가와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 부회장은 "실손보험 심사 위탁이 되면 결국 국민들의 의료정보는 고스란히 보험사가 쥐게 되고, 의료행위 전반에 대해 감시하게 된다"며 "이는 보험회사가 의료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식 의료영리화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치과의사협회 마경화 상근부회장 역시 "민간보험과 건강보험은 청구 방법, 심사 기준, 보상 원칙 등이 모두 다르다"며 "심평원에서 실손보험을 심사하는 것은 맞지 않는 논리"라고 언급했다.

의사들의 진료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하기 전에, 차라리 보험사들의 상품 개발, 판매, 운영 등에 대한 국가적인 관리와 통제부터 시작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대한의사협회 서인석 보험이사는 "실손보험을 가입하는 이유는 정확하고 효과적인 진료를 받기 위함이며, 이 과정에서 진료비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평원은 건강보험 제도 권 내 급여행위를 심사하는 준정부기관인데, 이들이 보험사들의 심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면서 "만약 심평원이 실손을 위탁하게 되면 의사들은 위축된 진료를 보게 되고, 그 피해는 온전히 환자들의 몫"이라고 내다봤다.

◆ 금융위 '해명 급급', 복지부 '확답 피하기'

금융위원회 이동훈 보험과장은 "의료계에서 오해가 있다"며 "보험회사 이익을 챙겨주려고 심사 위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보험사들은 상품에 있어서 손해가 나면 보험료를 올려 충당한다"며 "정부 입장에서 볼 때 보험사들이 우후죽순으로 보험료를 올려대는 것을 좌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이 보험과장은 "그런 가운데 대안을 생각한 것이 보험사의 손해를 줄이는 것이었고, 이는 결국 환자의 도덕적 해이와 의사의 과잉진료를 막아야 하는 것이므로 '심평원 심사 위탁'을 생각한 것"이라며 "앞으로 이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들으면서, 복지부와 긴밀히 협조에 나가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과장은 확답을 피한 채 실손 심사 위탁에 대한 조심스러운 입장을 표현했다.

이 과장은 "상품이 잘 팔릴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와서 보험사들이 손해가 있다고 말하는데, 사실상 상품설계 때부터 제대로 고민했어야 할 일"이라며 "가입자가 3000명을 넘어섰다고 해도 이는 민간기업 소유이므로 공보험 영역으로 봐선 안 된다"며 심사 위탁 반대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논의 과정과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며 "다수가 원하는 좋은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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