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사용 허가 주장에 힘 싣는 한의협...'해부학 세미나' 개최

"한의학이나 서양의학이나 모두 인간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존재한다. 때문에 한의학에서도 당연하게 인간의 생리학과 해부학을 모두 익히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지난 14일 '해부학에 기반한 한의학의 발전'을 주제로하는 세미나를 개최, 한의협 김필건 회장을 비롯한 한의계 전문가들은 "한의학은 철저히 해부학의 원리에 입각한 의학"이라고 소개했다. 또 이를 토대로 '한의사 의료기기 및 진단기기 사용' 주장에 힘을 실었다. 

▲ 대한한의사협회 김필건 회장

우선 김 회장은 "국민 대다수는 한의사가 해부학 공부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서 "우리가 해부학을 배우지 않았으므로 진단기기나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2005년에 '한의사 CT 사용 관련 판결'에서 재판부가 '한의학은 서양의학과 달리 해부학적 지식이 아닌 통합적 지식에 입각한 학문이므로, 현대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판결에 대해서도 "해부학을 배우지 않는다는 잘못된 지식에 기반한 오류"라고 꼬집었다.

김 회장은 "마치 한의사들이 해부학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판결했고, 이러한 판결때문에 의료법에서 제한을 두지 않고 있어도 한의사들이 의료기기,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의료법상으로 따지면 한의사도 진단기기를 쓸 수 있다"며 "국민에게 수준높은 의료혜택 주려고 한의사들이 의료기기, 진단기기 쓴다는 것인데, 못하게 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했다.

◆ "배우는 목적만 다를 뿐 동서양 의학 모두 '해부학' 배우고 있다"

▲ 경희대 한의과 백유상 교수

주제발표에서도 한의사들이 해부학을 조선시대부터 익혀왔으며, 한의대 설립 이후 단 한 차례도 다루지 않은 적이 없음을 밝혔다.

경희대 한의과 백유상 교수는 "조선 말인 대한제국 시기부터 해부교육이 정식 커리큘럼에 기반해 이뤄졌다"면서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에도 지속적으로 한의학 교육과정 속에 해부학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실제 "한의대가 의대 소속이었을 때는 물론, 한의대가 독립한 이후에도 늘 본과 1학년 과정에 400~500시간 가량 커리큘럼에 속했다"며 "현재는 본과 1학년에 411시간, 246.5학점으로 편성돼 있다"고 전했다.

해부학 뿐만 아니라 한의계에서는 간단한 외과적 수술도 다뤄왔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상처를 봉합하는 간단한 수술은 한의학에서도 지속적으로 배우고 시행해왔다.

다만 해부학을 배우는 목적만 다를 뿐이라고 견지했다.

백 교수는 "동·서양의 해부프로세스 지침을 비교해보면 특별히 다른 점이 없다. 목적만 다를 뿐"이라며 "서양의학은 정확한 진료를 위해 여러 조직의 짜임새, 뼈 및 인대의 강도, 혈관과 신경의 구조 등을 파악하려는 것인 반면, 동양의학에서는 해부를 통한 지식을 토대로 우리 몸이 어떻게 기능을 발휘하고 운영되는지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나뉜다"고 주장했다.

경희대 한의과 김남일 교수 역시 "현재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이라는 이분법적 관념이 생기면서, 대부분 사람들이 서양의학에만 해부학이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동의보감'에서도 '해부학'이 포함됐음을 설명하면서, "서양의학에서 해부학이 더 발달된 것은 인정하지만, 동양의학에서도 충분히 해부학을 배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의계 자성의 목소리 이어져..."해부학 배운다고 알렸어야 했다"

이러한 상황까지 온 것에 대해 한의계의 자성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의대와 같은 해부학의 커리큘럼이 있음에도 이를 알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한의협 김필건 회장은 "지금까지 한의학에서 지속적으로 해부학을 다뤄왔지만, 이에 대해 자료를 제출하지도 정부에 이를 공표하지도 않았다"며 "우리는 자성의 목소리 내야 한다. 지속적으로 해부학과 관련된 활동, 세미나 등을 통해 법원의 오해와 국민의 선입견을 깨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한의학계가 짊어지고 가야 할 숙제다. 한의사가 힘을 합쳐 잘못된 부분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자"며 "지속적인 반성과 개혁으로 국민에게 올바른 지식을 전하다"고 당부했다.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 강연석 기획이사도 "한의계 내부에서 이러한 오해와 편견을 깨려는 움직임을 갖지 않았다. 과거에는 우리 스스로의 방식대로 얘기해도 됐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된다.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강 기획이사는 "어떤 의학도 환자의 질병 고통 덜어주려는 노력 하지 않은 학문은 없다. 한의학도 마찬가지다. 또 이를 위해 모든 분야의 의학에서는 당시 활용되는 모든 도구를 활용해왔다"며 "시대마다의 차이, 한계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한의사들은 지금 시대에 맞는 도구와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부학 배우기 때문에 "의료기기 사용 근거 충분하다" 주장

대한한의학회 신길조 부회장은 "현재 진료를 볼 때 치료과정에 따른 변화를 지켜보기 위해, 또 환자의 변화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치료전·후 사진을 찍고 있다"면서 "조선시대에서 환자의 상태를 그림으로 그린 것과 비슷한 것이다. 예전에도 사진기가 있었다면 이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한의사들이 카메라 사진을 이용하는 것은 합법인데, 방사선 사진은 불법인 것이 의문"이라며 "치료경과를 현대 과학의 산물인 카메라를 통해 찍어 객관적 변화자료를 만들 수 있다. 현대기기를 활용해 한의학 이론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방사선 촬영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즉 "살아있는 생명체에 대해 이론을 전개하는 방식만 다를 뿐이지, 사람의 질병을 본다는 학문에 있어서는 양방, 한방 같다"며 "서양의학은 현대과학의 최대 수혜자이며, 대학교육, 진단기기, 수술기기 등의 발전 등으로 한방에 비해 비약적으로 성장이 가능해졌다. 한방에서도 현대 의료기기, 진단기기를 이용한다면 결여돼 있는 비판, 논증, 실험 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대한한의사협회 김지호 홍보이사.

신 부회장은 "현대 의료기기에 대한 양의사 전문성 인정하지만, 엑스레이 정도는 한의사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자질 측면에서는 물론 질병 진료라는 윤리적 부분을 고려하더라도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합목적성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한의협 김지호 홍보이사 역시 "지난해 12월 28일에 규제기요틴 발표 이후 많은 토론회나 방송, 논의의 자리가 있었다. 늘 나오는 질문이 한의대에서도 해부학을 배우냐라는 것이었다"라며 "오늘의 세미나를 기점으로 이러한 오해가 더이상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이순신 장군이 무과시험에서 다쳤을 때 나무를 덧대 고정을 시켰다고 해서, 지석영선생이 종두법을 가져왔다고 해서, 한방에서 예방접종을 하겠다고 깁스를 한다고 하지 않는다"며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로 더이상 지지부진한 논쟁이 이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이어 "한의학은 생리학을 토대로 발전해왔던 학문이며, 동의보감에만 매몰돼 있는 것이 아닌 해외문물을 받아들여왔다는 점을 고려했으면 한다"며 "늘 환자에게 더 좋은 점을 고민해왔던 응용학문이자 실용학문이다. 이러한 점을 근거로 의료기기를 사용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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