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제도 못마당한데 적정치 못한 평가까지 불만

"그렇잖아도 말 많고 탈 많은 '적정성평가'인데, 의사 사회에서 못마땅해하는 '포괄수가제'에 대해서도 적정성평가를 하려고 하니 초반부터 삐꺽거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의료계에서는 일년내내 적정치 못한 지표로 가득한 적정성평가를 하느라 행정력 낭비가 극심하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 지난해 혈액투석, 항생제, 약제, PCI, 유방암, 대장암, 요양병원, 제왕절개분만, 관상동맥우회술, 폐암, 천식에 대한 평가가 시행됐다. 이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지표도 결과도 모두 엉망이라는 지적을 제기했다.

이러한 비판은 물론 적정성평가 대법원 패소 판결, 그리고 심장학회, 뇌졸중학회의 '보이콧'움직임 등 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심평원에서는 "적정성평가는 가치기반의 의료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며, 모든 국민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므로, 어떤 반발에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올해부터 급성심근경색증(AMI), 중재술(PCI), 관상동맥조영술(CABG) 등을 AMI로 통합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 허혈성심질환 등 대국민 관점에서 큰 틀의 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암 역시 대장암, 유방암에 이어 폐암, 위암, 간암 등을 개별적으로 평가하고, 오는 2015년부터는 통합평가할 예정이다. 2017년에는 10대암으로 확대된다.

▲ 포괄수가제 시작 전 산부인과학회 등 의료계에서 거세게 반발했지만, 예정대로 2012년 7월 의원급, 2013년 7월 모든 의료기관에서 7개 질병군에 대한 포괄수가제가 시작됐다.

특히 의료계에서 가장 반발이 큰 7개 질환군 포괄수가제에 대해서도 올해 하반기부터 적정성평가가 시행된다. 심평원 측은 이를 통해 가치중심의 심사평가, 더불어 의료 질과 비용효율성 제고 등 미래전략의 일환으로 지속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A 이비인후과 개원의는 "지표에서는 재원일수나 중증도 환자 여부 등을 묻고 있는데, 이는 DRG 제도에 따른 부작용을 보려는 것"이라며 "이는 적정성평가를 통해 삭감할 문제가 아니라, 제도를 수정, 보완하는 기반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문제를 보고 점수를 매겨 삭감하는 것이 아닌, 잘못된 점을 고치기 위해 '적정수가' 개선, 포괄수가 시행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 등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표마다 불만 가득

올해 하반기에 실시할 DRG 평가의 지표를 살펴보면, △퇴원시 환자상태 이상소견율 △재원일수 △수술 합병증 및 부작용 발생 △재입원율 △입원기간 중 합병증 치료 및 중환자실 이용률 △입원전 14일 또는 퇴원후 14일 내 외래진료비율 △퇴원 후 응급실 이용률 △중증도 1이상의 환자비율 등 과정·결과·모니터링 지표로 구성됐다.

이들 대부분은 불필요한 입원 증가나 무리한 조기퇴원, 중증환자 진료 거부, 과소 서비스 등을 묻기 위한 것이다.

이의제기에 나온 의견을 살펴보면, 우선 수술전 '기본의료서비스 실시율'을 묻는 항목에 대한 이견이 가장 많았다. 이는 과소진료로 인한 의료 질 저하를 막기 위한 항목으로, 혈액·뇨검사, 안과기능검사, 청력검사, 전해질검사, 크레아티닌, 간기능검사 등 22항목 중 15항목 이상을 시행토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의료인 A씨는 "소아환자일 경우나 응급으로 수술한 환자의 경우 의사소통이 어려워 요검사에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B씨도 "연령이 어릴수록, 특히 기저귀를 차는 어린 환자이면 소변을 보는 시기를 조정하기 어렵다"며 "이러한 환자에 대해 무조건 소변검사를 강요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안과의사인 C씨는 "양쪽눈 수술시 수술전 30일 이내에 안과검사를 시행해야 하는데, 수술을 한 쪽씩 순차적으로 할 경우 수술전 검사가 30일을 초과하게 될 수 있다"며 "시기가 한달이 넘게 되면 검사를 2번해야 하므로 비용효과적으로 낭비다. 기간이 초과했더라도 안기능 검사가 크게 변동되지 않으므로 기간을 좀 더 길게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마찬가지로 다른 안과전문의도 기간을 60~90일 정도로 넉넉하게 설정해줄 것을 제안했다. 또 안압검사의 경우 15세 이하 소아환자는 기본검사가 아니며, 진정제를 먹이고 수면상태에서 시행해야 하므로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각막곡률 측정 검사 역시 주로 성인백내장에 한해서 이뤄지며, 3세 이하의 백내장 환자 및 인공수정체 미삽입 환자는 불필요한 검사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외에도 이비인후과에서는 중이염을 시진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경우 등 청력검사가 불필요한 환자에 대해 검사를 강요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수술전 기본검사에 혈액형 검사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안과 백내장 수술 등 출혈이 극히 드문 경우 이를 제외해달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즉 해당 지표는 불필요한 검사를 과잉으로 시행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환자 불편, 비용 낭비 등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뿐만 아니라 입원기간 중 '수술합병증 및 부작용 발생률'을 측정하는 지표에 대해서도 이의제기가 많았고, 대다수 의료진들은 이에 대해 "병원별 중증도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지표이며, 합병증의 기준이 모호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해당지표에 대해 2~3차의료기관에서의 반발이 극심했다. D대학병원 교수는 "워낙 중증 환자가 많다보니 입원기간 중 수술합병증이나 부작용 발생률이 높다"며 "그렇잖아도 포괄수가제가 상급병원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아 불만이 많은 상태인데, 이를 평가하는 지표까지도 대형병원들을 역차별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출혈'과 같은 합병증은 DRG시행 여부와 관계 없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실제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분만이든 산후 출혈은 언제든지 발생하므로 이를 합병증으로 여기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했다.

이에 대해 "병원마다 중증도 차이를 부여하거나, 현재 출혈, 요루, 유리체 탈출, 안압상승, 기도폐쇄, 기타 합병증 등으로 분류된 합병증의 기준을 다시 세우고 모호한 정의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상급종합병원에서 '중증도 1이상'이라는 지표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중증도에 따라 진료비 차이가 있어 진료비가 높은 중증도에 대한 코드를 허위로 선택할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해당 지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의료진들의 입장을 달랐다. E대학병원 종사자는 "대학병원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질환에 대한 중증도를 감안하지 않은 계산은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더욱이 실제 중증도에 맞춰 입력했음에도 일률적으로 중증도 1 이상의 비율을 산정해 마치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보는 병원은 도덕적 해이가 많은 곳처럼 평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잖아도 대학병원에서 DRG환자를 진료할 경우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중증도에 대한 보상은 커녕 지표까지도 중증환자를 보는 대형병원에 불리하게 설정됐다는 비판이다.

기저질환을 많이 보는 F의원 원장도 "본원 특성상 중증도가 높은 환자가 대부분"이라며 "수술 준비를 위한 처치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하게 '1'이상만 조사하지 말고, 중증도 '2'이상의 비율도 조사하고, 중증도를 확대하는 판현 진료비를 세분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외에도 대부분 지표에 대해 "현장의 판단과 지표 기준이 괴리됐다"는 의견이 많아 대대적인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자문위 거쳐 수정, 보완 예정..."벌써부터 보이콧 움직임은 시기상조"

 

하지만 심평원은 이미 예비평가를 마친 후 문제가 없는 지표이므로, 많은 수정은 없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전문가 자문을 받아 공동으로 마련한 지표"라며 "예비평가를 통해 이에 대한 근거를 확보한 상태지만, 임상에서 생각한 것이 다소 다를 수 있어 이의제기를 받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의제기는 지난주 마감됐으며, 앞으로 이의제기 내용을 토대로 다시 중앙평가위원회와 자문위원회 등의 논의를 거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대대적인 개편이나 지표 삭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검증을 마친 지표들이다. 문구나 기준 등을 수정할 순 있지만, 지표 자체를 삭제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는 10~12월분에 대해 시행하는 DRG 적정성 평가와 관련해 산부인과 학회에서 항의서한 제출과 관련해 회동이 있었던 것으로 포착됐다. 다른 학회에서도 이에 대한 회원들의 불만이나 민원을 모으며 건의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서 심평원은 난감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해당부서 관계자는 "자료를 받은 후에 얘기하는 것이 맞는데, 벌써부터 비공개포럼을 통해 지레짐작으로 반박하면 안 된다"며 "DRG적정성 평가는 건정심에서 하라고 의결된 것이므로 무조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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