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비수도권 의대에 1649명... 경인지역에 361명 배정
의사들 "정부 독단적 결정에 유감" "정권 퇴진 운동 벌일 것" 등 격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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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정말 2000명 증원할 줄 몰랐다", "2000명 증원하고 그 이후는 알아서 하라는 것 아니냐", "웃음 밖에 안 나온다". 

20일 정부가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한 후 의사들은 대부분 격앙돼 있었다. 

정부가 매일 아침 브리핑을 통해 2000명 증원을 강조했지만, 의사들과 논의 없이 강행할 것이라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그 어떤 정부도 전문가 단체인 의사들을 이렇게까지 무시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의사들이 느끼는 마음의 타격은 더 클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정부, 의대정원 2000명 증원 강행

교육부는 20일 서울청사에서 2025학년도 의과대학 학생 정원 대학별 배정 결과를 발표했다. 

의대 추가 정원 2000명 가운데 1649명이 비수도권 의대로 배정됐다. 그 외 경인 지역에 361명이 배정됐으며, 서울에는 신규 정원 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결과는 지난 2월 22일부터 3월 4일까지 대학의 증원 신청을 받고,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관련 전문가로 구성한 '의과대학 학생정원 배정위원회' 논의를 거쳐 마련됐다.

그 결과, 총 2000명 중 수도권 대학에는 증원 인원의 18%에 해당하는 361명이 경인 지역에 신규로 배정됐으며, 비수도권 대학에는 증원 인원의 82%에 해당하는 1639명이 신규로 배정됐다. 

먼저 서울권 의과대학 8곳에서 당초 365명을 신청했으나, 정원이 추가 배정되지는 않았다. 이들은 2025학년도에도 기존 정원인 826명을 유지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서울에 위치한 의대 증원을 단 한명도 하지 않고, 기존 미니 의대였던 성균관대(40명→80명=120명), 울산대(40명→80명=120명), 가톨릭관동대(49명→51명=100명) 등을 증원한 것은 의미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편, 경인권은 의대 5곳에서 565명을 신청했으나, 정부는 이들 의대에 361명을 추가 배정했다. 경인권 의대의 모집 정원은 기존 209명에서 2025학년도 570명으로 늘었다.

비수도권은 △강원도 257명→432명 △경북 49명→100명 △대구 302명→520명 △경남 76명→200명 △부산 343명→500명 △울산 40→120명 △전북 235명→350명 △광주 250명→350명 △제주 40명→100명 △충남 133명→270명 △충북 89명→300명 △대전 199명→300명 등으로 확대됐다.

지역 거점 국립대병원 살리기 첫걸음

이번 정부 발표 중 최대 수혜자는 비수도권의 거점 국립대다. 정부가 의대 정원의 주요 이유로 '지역 의료 인프라 확충'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국립의대에 마치 200명 인원을 맞출려는 듯 인원을 배정해 눈길을 모았다. 

구체적으로 보면 구체적으로 보면 전북대가 142명에서 58명이 증원돼 200명, 전북대(142명→58명=200명) 부산대(125명→75명=200명), 전남대(125명 →75명=200명), 경북대(110명→ 90명=200명), 충남대(110명→90명=200명), 경상대(76명→124명=200명), 충북대(49명→151명=200명) 등이 거대 지방 의대로 탄생했다.

이외에 강원대(49명→83명=132명)와 제주대(40명→60명=100명)도 기존 인원을 넘는 정원을 배정받았다.  

성적표를 받아든 지방 국립대 중 경상대와 충북대는 증원 인원이 생각보다 너무 커 모두를 놀라게했다. 

충북의대 한 고위 관계자는 "웃음 밖에 안 나온다"고 허탈해 했다.

그는 "지방 국립의대 대부분 200명 정원인 거대 국립의대가 됐다. 이렇게 배정한다고 지역의료와 국립의대가 살아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49명이던 학생들을 갑자기 200명으로 늘어나면 어디에서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예과생들이니까 괜찮다고 주장하지만, 무언가를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의대생들은 PBL(Problem Based Learning) 수업을 한다는 것을 정부가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PBL 수업이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authentic) 문제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개별학습과 협동학습을 바탕으로 해결안을 마련하는 학습자 중심의 교수 학습법이다. 

한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이하 전의교협) 비상대책위원회 조윤정 홍보위원장(고대의대 교수의회 의장)도 20일 브리핑을 통해 "의대 증원 문제는 의대 교육 현장과 연계됐다"며 "단순하게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조 홍보위원장은 최근 리노베이션을 마친 고대의대 제1의학관 사례를 들며 의대 증원 시 나타날 수 있는 교육 현장 문제점을 지적했다.

고대의대의 현재 정원은 106명으로, 제1의학관 리모델링 및 증축을 위한 공사는 4년간 이뤄졌고 공사비는 약 250억원이 들었다는 것이다.

조 홍보위원장은 "의학교육 필수 시설로 이론 교육이 이뤄지는 대규모 강의실은 최소 2곳이 필요하고, 교수 1인과 수업조교 1명, 수업 지원 직원 1명이 있어야 한다"며 "강의 외에 실험실습실, 토론방(TBL 룸), 전산실습실, 소그룹 토론 세미나실, 시뮬레이션 센터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니 의대의 변신 

이번 증원의 또 다른 특징은 50명 이하 미니 의대들이 대부분 100명 이상의 의대로 거듭나게 됐다는 점이다. 

국내 40개 의대 중 17곳이 정원 40~49명이었던 미니 의대였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는 대구가톨릭과 울산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00~120명 정원이 되도록 인원을 배정했다. 결국  17개 미니 의대들은 '미니'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게 됐다. 

현재 세계의학교육연맹이 조별 실습과 종합 교육을 위해 80~100명을 권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부 발표는 설득력을 갖는다.  

의료계 "전공의들이 돌아올 마지막 다리 끊어"

의료계는 정부가 전공의들이 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 다리를 끊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가 전공의들이 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 다리를 끊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예정대로 정부가 2000명 증원을 강행하자, 의료계는 전공의들이 돌아올 마지막 다리를 끊은 것과 같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20일 대한의학회와 26개 전문과목학회는 의료계와 합의 없는 성급하고 독단적 결정에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의학회는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를 2000명으로 산정한 것은 근거가 없고, 근거로 삼은 연구의 저자들이 정부가 부적절하게 연구를 인용했다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 정부 결정은 의료교육과 전공의 수련체계를 마비시킬 수 있다"거 우려했다. 

이어 "의과대학 임상교육은 파탄나고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의사가 배출될 것"이라며 "전공의 수련체계 역시 훼손돼 결국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나라의 의료수준은 영원히 복구되지 못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전의교협 조윤정 홍보위원장도 정부의 의대 정원 배정은 문제가 있다고 질타했다. 신규 정원 배정이 서울에는 없고 비수도권에 집중됐을지라도 대형 수련병원이 수도권에 쏠려 있다는것이다. 

조 홍보위원장은 "수도권에 대형 수련병원이 집중돼 있고, 2028년 6600병상의 대학병원 분원들이 오픈할 예정"이라며 "지방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발표했지만, 수도권 대형 수련병원에서 의대생이 수련받는 시스템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비대위 일각에서는 정권 퇴진 운동이라는 카드까지 꺼냈다. 

20일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오늘부터 14만 의사의 의지를 모아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에 나갈 것"이라며 "우리의 목적은 올바른 의료제도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정권 퇴진 운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한 것은 없지만 필요하다면 정치 집단과의 연대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25일 교수 사직 가속화되나?

전의교협 교수들은 오는 25일 개별적으로 사직을 결정한 바 있다. 이에 20일 정부 발표로 인해 사직서를 내는 교수들이 더 많아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단국대병원 한 교수는 "교수들이 모두 사직서를 꺼내들 것 같다. 특히 교수들이 사라지면 매출이 없어 병원이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교수들이 병원을 떠나면 간호사나 방사선사 등도 사직이나  해고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의교협에서 교수 사직서 제출을 얘기하고 있지만, 일부 교수는 착찹한 마음을 내보이기도 한다. 

충남대병원 한 교수는 "의대 정원 찬성이냐 반대냐를 구분짓기도 어렵다. 필요한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라며 "충남대병원 교수들 사이에서 사직서 얘기가 나오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어느 한쪽 편만 들기에는 이번 의대정원 문제는 복잡한 것 같다. 그래서 의견을 내기 어렵다"라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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