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사 수는 절대적 부족 ...보고서 참조한 정책적 결정"
의료계 "의사 수 부족하지 않다...정부가 증원 근거 제시못해"

2020년 의대정원 확대 관련 전공의 파업 당시 모습 ⓒ메디칼업저버
2020년 의대정원 확대 관련 전공의 파업 당시 모습 ⓒ메디칼업저버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의대 정원 확대와 같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국민, 의료계, 정부가 동의할 수 있는 근거 지표를 만들 수 없을까. 

지난 6일 정부가 내년부터 의대정원 2000을 확대한다고 발표하자, 예상했던 대로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20일 전공의들이 병원을 비우고 환자 곁을 떠났다. 

2000년 의약분업, 2014년 원격의료 시행, 2020년 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의사들이 파업을 결정했을 때도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각기 다른 통계를 들고 서로를 공격했다. 

정부는 보건의료기관의 원활한 인력 확보와 근무 환경 개선 등을 지원하기 위해 5년마다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진행하는 보건의료인력 수급에 관한 추계는 연구자에 따라 활용하는 지표·방법이 달라 합리적 판단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문제가 이번에도 나타나고 있다.

서로 다른 근거 지표 제시하며 공격

복지부는 OECD 평균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근거를, 의료계는 고령화 등으로 의사 수가 더 이상 늘지 않아도 된다는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협상하는 주체들이 인정하는 근거 지표가 없어 당연히 협상은 난항이다.

20일 열린 MBC 백분토론에 참여한 보건복지부 유정민 팀장(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소속 의료현안추진단 전략팀장)은 주요 OECD 국가 의사 수를 비교하며, 의대 증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유정민 의료현안추진단 전략팀장
보건복지부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유정민 의료현안추진단 전략팀장

인구 천명당 의사 수를 보면, 우리나라 2.1명, 일본 2.6명, 프랑스 3.1명, OECD 평균 3.7명이라는 것. 이 차이를 해소하려면 2050년까지 2500~1만명 증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OECD 주요국의 2000년 대비 의사 수 변화 양상을 보면 10년(2000~2019) 동안 우리나라 의사 수가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서울의대 김윤 교수(의료관리학)도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최근 OECD 국가들이 의대 정원을 많이 늘렸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2023년 기준 인구당 의대 졸업생 수가 OECD 국가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며 "의대 정원을 두배로 늘리지 않으면 의사 수 격차는 더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2019년 종합병원 의사 인건비가 2억원에서 최근 3-4억원으로 올랐다"며 "전공의들이 주 80시간 일하고, 대형병원들이 의사 인력을 보조하는 PA를 2만명 정도 쓴다. 의사가 부족하지 않은데 왜 이럴까요"라고 반문했다. 

의료계, 의사 수 확대 불필요

반면, 이동욱 의협 경기도의사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의대 증원은 필요 없다는 주장을 폈다.

이 위원장은 "의대 정원을 동결해도 OECD 중 가장 급격한 증가가 일어나고 있다"며 "지금을 유지해도 의사 수 30% 증가하고 있다. 특히 출생아가 75% 줄고 있어 더욱 그렇다"고 주장했다. 이어 "핵심은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배분의 문제다. 필수의료 환경 개선의 문제를 의대증원 문제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가천의대 정재훈 교수(예방의학과)는 미래 의료 수요에 따른 의사 인력을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의료 수요에 따른 인력을 추계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의사 인력 공급 측면에서 근무 시간과 생산성 변화를 어떻게 고려할 것인지, 성별 구조와 정년 연장 등도 반영해야 한다는 것. 또 의사 인력의 공급 증가가 적정 배분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도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 교수는 "수요를 추계할 때도 시계열적 접근이 적절하게 이뤄지는지, 현재 이용 패턴이 동일하게 이어지는지, 특정 변수는 정확하게 관측했는지, 모형이 특정 변수에 의존적이지 않은지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2000명 근거가 된 보고서 논쟁

이번 전공의 파업의 또 다른 쟁점은 의대정원 2000명 확대 근거다. 

정부는 2000명 증원도 부족하다는 입장이고,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확대는 말도 안 된다는 주장이다. 2000명에 대한 토론과 합의 등이 이뤄져야 다음 스텝으로 옮겨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복지부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 서울대병원 홍윤철 교수(예방의학과)팀이 작성한 보고서를 참고했다고 했다. 보사연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연구(2021)'에 따르면 의사 1인당 업무량이 2019년 수준으로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때 2030년 1만4334명, 2035년엔 2만7232명의 의사가 부족하다. 

KDI도 지난해 6월 '인구 구조 변화 대응을 위한 의사 인력 전망' 보고서에서 2050년 기준 약 2만 2000명 이상의 의사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의사 한 명당 업무량을 2019년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2050년 기준 약 2만 2000명 이상의 의사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해마다 3058명인 전국 의과대학 신입생 정원을 내년부터 2030년까지 매년 5%씩 늘려야 한다고 계산이다.

홍 교수팀도 '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의사 인력 적정성 연구(2020)'에서 현행 입학 정원을 유지할 경우 2050년 2만 6000명 이상 의사가 부족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연구 책임자들도 2000명 증원은 무리라 주장

KAMC는 19일 서울의대 교육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교육 현장에 혼란이 초래된 점에 우려를 드러냈다.
KAMC는 19일 서울의대 교육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교육 현장에 혼란이 초래된 점에 우려를 드러냈다.

그런데 의료계는 이 보고서가 근거가 없다고 복지부를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원장들은 19일 서울의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00명 증원에 대한 근거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KAMC 신찬수 이사장은 "의대 입학정원 2000명 확대로 인해 의대생들이 휴학원 제출 등을 결의하며 교육 현장에 대혼란이 초래됐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부는 의사 수 연 2000명 증원을 결정한 근거를 지금이라도 제시하고 제시할 수 없다면 2000명 증원계획을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세가지 보고서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근거로 삼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20일 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은 의사집단행도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각 보고서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여성 의사 비율 증가, 남성과 여성의 근로시간 차이 등을 분석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일부 의사단체가 보고서가 제안한 내용과 다르다고 한다. 이는 연구자들이 보고서 뒷부분에 단계적으로 늘렸으면 좋겠다고 하는 정책 제언을 말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주변의 모든 상황을 고려해 정책적 결정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정재훈 교수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정재훈 교수 

20일 MBC 100분 토론에 참여한 정 교수는 정부가 연구자들의 보고서를 제대로 인용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보사연 연구는 다양한 가정에 의한 검증이 이뤄진 보고서다. 첫번째 연구에서는 의사 수가 부족했지만, 여러 조건을 대입했을 때는 오히려 의사 인력 과잉이 일어났다"며 "연구자가 의대정원을 1000명씩 10년 동안 늘려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KDI 보고서의 연구 책임자도 의사 수요와 공급을 연간 5%씩 늘려 4500명 정도 유지하는 게 적절한 방안이라고 했다"며 "서울대병원 연구 책임자도 인력 증원보다는 전달체계를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의료계의 이런 반발에 대해 복지부 유정민 팀장은 정부는 정책적 결정을 한다는 말로 답했다.

유 팀장은 "복지부가 보사연과 KDI, 서울대병원 등 3가지 보고서를 참고한 것은 맞다. 하지만 각계각층의 전문가 의견을 듣고 정책적 결정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의사 숫자만 늘리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 필수의료 패키지를 통해 지방에도 서울대병원 등의 빅5 병원의 역량을 갖춘 병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밀실 말고 공개된 곳에서 의사 수 문제 논의해야"

의대 정원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정부와 의료계 간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문제다.

원칙대로라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 등에서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은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참여하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협상해 왔다.

복지부는 의대 정원 관련 회의를 "14번 이상했다"고 하고,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협의한 적 없다. 뒤통수를 맞았다"고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밀실에서 의협과 논의하는 것을 멈추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논의하라고 요구한다. 

김윤 교수는 "정부와 의료계, 국민, 전문가들이 참여해 공개적으로 의사 수 증가에 관해 얘기해야 한다"며 "그래야 의협이 파업하고 고통을 겪어도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 알 수 있고, 국민적 이해와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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