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현장 신규 항생제 접근성 제고 목소리 높지만 급여 진입문턱 높아
항진균제 및 항바이러스제 접근성 제고 위해 경평 면제 대상 포함 필요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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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신형주 기자] 암 환자 및 이식환자 등 면역저하자들이 원 질환 치료를 잘 받았지만, 곰파이 및 바이러스 원인으로 사망하거나 상태가 악화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의료현장에서는 신규 항생제가 급여화 되지 않아 항생제 내성을 가진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전하고 있다.

항생제 내성(AMR)은 세균, 진균, 바이러스 등이 특정 항생제에 저항력을 가지고 생존하는 능력이다.

이는 감염의 효과적인 예방과 치료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질병의 확산과 심각한 질병 및 사망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세계 보건기구(WHO)은 항생제 내성을 코로나19 팬데믹을 무색하게 할 만큼의 중대한 전 세계적 공중보건 위기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WHO는 이이 2015년 모든 회원국들에게 항생제 내성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국가 단위의 행동계획을 수립하도록 촉구한 바 있다.

지난 2017년에는 항생제 내성에 대응하기 위한 신규 항생제 개발을 위해 글로벌 항생제 연구개발 파트너십(GARDP)을 조직하기도 했다.
 

항생제 내성으로 사회경제적 파급효과 연간 13조 손실 추정

질병관리청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많이 발생하는 항생제 내성균 MRSA, VRSA, VRE, MRPA, MRAB, CRE 등 6종이 일으키는 주요 감염병으로 인한 전체 사회적 비용은 연간 약 5501억원을 추정되고 있다.

또, 항생제 내성균에 의한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로 인해 연간 최소 3조 6100억원에서 최대 12조 8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역시 증가하는 항생제 내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2016년부터 5개년 단위의 국가 항생제 내성관리 대책을 수립,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20년에는 신속한 항생제 도입을 위해 경제성평가 면제 대상에 항균제를 포함하는 등 신규 항생제 접근성 정책을 일부 개선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의료계 관계자는 "국내 항생제 내성관리 정책은 항생제 사용량을 통재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항생제 내성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신규 항생제 도입을 위한 정책적 노력은 미흡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특히 지난 2021년 질병관리청이 밝힌 제1차 국가 항생제 내성 대책 평가에 따르면, 2020년 실적치 기준 인체 분야 항생제 내성 관리 분야 핵심 목표 4개 중 3개는 목표 달성을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4년 이후 허가된 신규 항생제 중 미국은 15개, 유럽은 9개를 도입한 반면, 한국은 항균제 3개, 항진균제 1개 등 단 4개만 허가했다.

그 마저도 1개의 항균제를 제외하면 비급여 또는 국내 출시 포기 등으로 인해 의료현장에서 사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신규 항생제 도입 걸림돌 경제성평가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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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와 제약업계는 신규 항생제 국내 도입이 저조한 주요 원인으로 경제성평가 제도를 꼽고 있다.

2020년 항균제를 경평 면제 대상으로 포함시켰지만, 항진균제와 항바이러스제 등 기타 항생제들은 제외돼 항생제 접근성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평가다.

이미 치료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과거 항생제를 기준으로 신규 항생제의 비용효과성을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현재 경평 면제 제도로는 신규 항생제를 도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항생제의 특성을 반영해 경제성평가 자료 제출 생략 대상을 항진균제 및 항바이러스제 등 항생제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규 항생제 국내 도입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선행약제가 이미 경평 면제로 도입된 경우 후발약제들의 시장 진입 여건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선행약제가 경평 면제 및 위험분담제를 통해 도입된 경우, 후발약제는 자동적으로 선행약제의 총액제한 기준을 적용받는다.

특히 후발약제의 총액은 선행약제의 실제 청구액을 기반으로 제한돼 후발약제가 선행약제에 비해 임상적으로 더 우수하더라도 선행약제보다 널리 사용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신규 항생제 개발 및 도입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 필요

제약업계는 항생제 영역이 상대적으로 연구개발이 어렵고 수익성이 낮아 선진국 처럼 매출과 이익을 보장하는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그 일례로 일본은 올해 하반기부터 후생노동성이 시오노기제약의 항균제 페트크로자(성분명 세피테코롤) 등 특정 항생제에 대해 제약사의 일정 수입을 보증하는 정액지불 모델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 역시 지난 7월 화이자의 자비쎄프타(성분명 세프타지딤/아비박탐)와 페트크로자 등 2가지 항생제에 대해 처방 건수와 관계없이 연간 2000만 파운드(약 330억원)의 급여 환급을 보장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의료현장과 제약업계는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된 항생제들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국가필수의약품 지정과 보험등재 연계 필요…크레셈바·조플루자

2021년 12월 기준 국가필수의약품은 총 511종이 지정, 관리되고 있다.

이 중 백신을 제외한 감염병 관련 약제는 총 158종으로, 10종의 약제는 여전히 보험급여 목록에 등재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1월 침습성 아스페르길루스증과 털곰팡이이증 치료에 대해 허가를 받은 신규 항진균제 크레셈바(성분명 이사부코나졸)와 지난 2019년 11월 독감 예방 및 치료에 대해 허가받은 독감 치료제 조플루자(성분명 발로사비르마르복실) 등은 모두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됐지만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지 못해 사용이 제한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감염병의 신속한 대응과 약제 확보 중요성 인식이 높아졌지만 감염병 신약 접근성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답보 상태다.

글로벌 A 제약사 관계자는 "국가필수의약품과 건강보험 등재가 연계되지 않아 실제 임상현장에서는 적극적인 사용이 안되고 있다"며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된 의약품에 대해 유연한 기준 또는 절차를 통해 신속한 보험급여 적용이 가능하도록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길병원 엄중식 교수(감염내과)는 "항생제 또는 항진균제, 항바이러스제는 모두 각각 타깃하는 원인 미생물이 다르다"며 "실제로 감염증에 사용하는 약제 개발이 쉽지 않아 외국에서 개발된 약제들을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항진균제 및 항바이러스제를 필요로 하는 면역저하자들이 있다"며 "항균제는 경평 면제 대상에 포함하고, 항진균제와 항바이러스제를 제외하는 합리적인 근거는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엄 교수는 고가 약제인 항진균제와 항바이러스제가 경평 면제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두고 도입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평가했다.
 

신규항생제 없어 치료 포기 사례 발생…"죽 쒀 개 주는 꼴"

의료현장에서는 기존 항생제로 효과를 볼 수 없거나, 내성 및 부작용이 생겨 신규 항생제가 필요하지만 대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엄 교수는 "극단적인 경우 보험급여가 안돼 본인부담금이 너무 부담스러워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도 있다"며 "선진국 수준의 경제력을 가진 우리나라가 필요한 치료약제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토로했다.

또 "암 환자나 장기 이식받은 환자가 잘 치료 받았지만 바이러스 및 곰팡이 질환으로 쓸 약이 없어 사망하거나 상태가 악화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표현이 적절하지 않지만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암 및 장기 이식 등 고비용의 치료로 원래 질환을 치료했지만, 신규 항생제가 없어 감염 및 부수적인 질환으로 환자를 잃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엄 교수는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감염학회 및 항균요법학회 등과 항생제 접근성 제고를 위한 논의 시작했지만, 그 성과는 지지부진하다고 지적했다.

엄 교수는 "신규 항생제에 대한 조기 도입 및 급여화에 대해 논의했지만 진척이 별로 없는 것 같다"며 "몇가지 약은 도입돼 허가를 받았지만 급여화가 안됐거나 여전히 도입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정부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항진균제 및 항바이러스제 등에 대한 보험급여화 및 제도 개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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