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950만명 서울에 입원 가능한 호스피스 260병상뿐
안규백 의원의 조력존엄사법, 한목소리로 '시기상조' 비판

12일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는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김대균 기획이사(가운데)
12일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는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김대균 기획이사(가운데)

[메디칼업저버 김나현 기자] 말기환자가 의사의 조력으로 생을 마감하도록 하는 '의사조력 존엄사법'이 발의된 가운데, 호스피스 및 완화의료 확충이 먼저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와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12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의사조력 존엄사 논쟁은 부적절하고 시기상조라는데 목소리를 모았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호스피스·완화의료는 △병원 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원형 △전문인력이 전문상담등을 제공하는 가정형 △병동이외 일반병동 또는 외래에서 상담을 제공하는 자문형으로 나뉜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김대균 기획이사(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는 "올해 5월 서울 강동구와 용인 병원을 전수조사한 결과 입원 대기일수는 21일"이라며 "그러나 호스피스 환자들이 처음 와서 사망할 때까지 머무는 기간이 평균 21일"이라고 말했다.

학회에 따르면 인구 950만명 서울에 입원이 가능한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15개 기관, 260병상 뿐이다.

2020년부터 코로나19(COVID-19) 유행에 따른 공공의료기관 전환으로 올해 1월은 7개 기관, 105개 병상만이 운영됐으며, 간병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3개 기관 50병상 뿐이었다.

학회 윤리이사를 맡고 있는 경상대병원 강정훈 교수(혈액종앙내과)는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5일까지 10일간 진행했다.

눈에 띄는 문항은 '존엄한 죽음을 위한 정부와 국회의 정책 우선순위'였다. 여러 응답 중 의사조력자살 합법화는 13.6%에 그쳤고 간병 부담 지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 확충 등이 80.7%에 달했다.

강 교수는 "환자가 질병에 시달려 죽고싶다고 말했을 때 '고통스러우니까 힘들지 않게 자살하도록 도와줄게'라고 답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고통의 무게가 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인지는 상식적인 질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말기환자로서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담당 의사의 조력을 받아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희망하는 사람은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에 대상자 결정을 신청하도록 하고, 이를 심의결정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소속으로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존엄사'라는 단어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대한의사협회는 존엄사, 안락사, 조력사망 등 다양한 용어의 정의를 통일하고 구체화하는 작업부터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국대 법과대학 이석배 교수

단국대 법과대학 이석배 교수도 "존엄사는 PVS(항구적 식물인간상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안락사는 고통을 없앤다는 의미가 있지만 존엄사는 환자가 고통받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지금은 의사조력자살을 말할 때가 아니다. 스위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살을 방조하면 자살방조죄로 처벌하고 있다"며 "여러 법체계를 고려하지 않고 하나만 집중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되는 격"이라고 덧붙였다.

의료현장에서 실제로 임종환자를 많이 보는 의료진들의 제언과 발언도 이어졌다.

이대목동병원 이경은 교수(혈액종양내과)는 말기 암환자를 많이 보고 있으며, 환자가 임종기에 다다르면 보호자들이 호스피스에 모시고 싶다는 의지를 다수 피력한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질문을 받다보면 호스피스에 대한 좋은 인식이 느껴진다"며 "통계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집에서 사망하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70% 이상이 병원에서 사망한다. 약은 점점 많아지고, 보호자도 필요한데 그런 환경이 되는 가정이 얼마나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환자는 불안한 사건이 있을 때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집에서의 임종을 생각할수 있지만 현실은 어렵다"며 "집같은 병원이 필요하고, 그것을 호스피스 인프라로 해결해야 한다. 인력, 시설이 다른 요양병원은 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인 80%가 안락사 찬성' 설문조사 의문 표시

"의사조력존엄사 합법화, 말기고통환자 희망 상실"

대한가정의학회 김철민 재무이사(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완화의학과)는 연간 1000명이 넘는 말기 환자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김 이사는 "회진 때 '죽고싶다'고 요청하는 환자였어도, 며칠이 지나면 더 이상 안락사 요청을 하지 않기도 한다. 대국민 조사 결과 조력자살을 찬성한 배경에는 고통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고, 호스피스 제도에 대한 인식 부족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안 의원은 법안 발의 배경으로 성인 80%가 안락사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를 근거로 제시한 바 있다.

김 이사는 "의사조력자살이 합법화되면 죽음이 기본 선택지가 되거나 전염되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말기 고통받는 환자의 희망이 상실되는 것"이라며 "의사조력자살보다는 호스피스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입원형에 치중된 서비스 유형을 가정형, 자문형, 요양병원형, 소아청소년형 등으로 다양화하기 위해 시범사업 및 본사업 전환을 추진 중이다.

복지부 한상균 질병정책과장은 "이용률 향상과 인프라 확충 모두 중요하다. 신규로 호스피스를 신청하면 주는 보조금을 그해부터 바로 주도록 해 신규 유인효과를 높이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원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했다.

한 과장은 "심사위원회를 둬 복지부 장관의 심의를 받도록 했는데, 자살예방 정책도 수행하는 복지부가 주체가 되는 것의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또 "의사조력자살의 이행기관 문제도 있다. 국가 지정기관에서 이행할 것인지, 아니면 개별의료기관에서 이행할것인지 논의도 필요하다"며 "특별법 우선원칙 등 법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