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희귀질환 치료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 개최
문진수 교수 “선천·후천성 환자에 동일 혜택 적용 필요”
권혁수 교수 “급여 관련 특혜 조항 신설해 지원책 마련해야”
이종혁 교수 “정의 일원화, 급여 절차 개선에 기여할 것”

[메디칼업저버 양민후 기자] 국내 희귀질환 치료환경의 사각지대가 드러났다.

관련 지원제도는 형평성 문제를 동반해 동일한 증상·고통에도 환자의 부담은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제 급여에 관한 지원책은 부재하고 허들이 산재해 신약 접근성 역시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에 따라 환자의 고통을 고려한 제도 운영과 신약 접근성 확대를 위한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부 측은 기존 제도를 잘 활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적 고민을 이어가겠다고 답했다.

서울대병원 문진수 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문진수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문진수 교수(소아청소년과)는 31일 희귀질환 치료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강선우 의원·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주최)에서 희귀질환 지정 및 산정특례 적용의 한계에 대해 발표했다.

문 교수는 “희귀질환에 따른 개인·사회적 부담을 감소하기 위해 희귀질환관리법이 2016년부터 시행됐다”며 “법안에서 희귀질환은 유병인구가 2만명 이하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 수 없는 질환으로 보건복지부령에 의한 절차 및 기준에 따라 정해진다”고 말했다.

희귀질환 지정 시 대부분 산정특례를 적용받아 환자의 본인부담률은 10% 수준으로 경감한다. 이런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질환은 환자의 부담이 큰 상황이다.

한 예가 단장증후군이다. 이 병은 선천성 또는 수술적 절제로 전체 소장의 50% 이상이 소실된 상태를 말하며 흡수 장애와 영양실조를 동반한다. 진단 불명확을 사유로 희귀질환에 속하지 않는다. 

단장증후군은 희귀질환 지정과 산정특례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 교수의 주장이다. 환자들은 중심정맥 수액에 의존해야 하며 중심정맥 감염증, 대사성 산증, 탈수 등으로 입원이 잦다는 설명이다. 삶의 질이 낮고 5~6년 사망률 21~35%, 10년 사망률 41~48%라는 점도 고려한 시각이다.

무엇보다 ‘선천성 단장증후군’은 단장증후군과 달리 희귀질환으로 지정된 상태여서 형평성 문제를 동반하고 있었다. 동일한 증상과 고통, 질병 부담에도 후천성 단장증후군 환자들은 관련 법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문 교수는 “희귀질환 지정이 되지 않아 사각지대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관련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며 “진단 기준과 정의가 어려울 수 있지만 이는 관련 전문가 자문을 바탕으로 풀(Pool)을 확대해 질환 특성 및 환자 삶의 질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차성 질환이더라도 특성 및 환자의 고통을 고려한 희귀질환 또는 산정특례 지정이 필요하다”며 “동일 질환에서 선천성과 후천성에 따른 지정-미지정은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에 동일 혜택을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희귀질환관리법에 급여 지원 조항 신설 필요”

서울아산병원 권혁수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권혁수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권혁수 교수(알레르기내과)는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현황 및 한계에 대해 발표했다.

권 교수는 “높은 가격 등에 따라 희귀의약품의 보험급여율은 2013년 이후 낮아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신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이 제한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희귀의약품 급여 관련 정책의 부재도 현 상황의 원인이라 것이 권 교수의 견해다. 희귀질환관리법은 희귀의약품의 생산·판매·허가에 대한 지원만 할 뿐 급여 지원책은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신약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일부 희귀질환 환자는 차선책에 만족해야 하는 실정이다. 유전성 혈관부종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질환은 부종 발작을 동반한다. 환자들은 사회생활 장애와 더불어 급성발작에 따른 기도폐쇄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겪는다.

국내에선 급성치료에 이카티반트, 예방치료에 남성호르몬제가 활용된다. 남성호르몬제는 체중증가, 월경 이상, 남성화, 지질 이상 등 부작용을 초래해 가이드라인에서 권고 순위가 낮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A7국가에선 최소 1개 이상의 예방 신약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활용되는 약은 대부분 가이드라인 권고 순위가 높다.

권 교수는 “희귀의약품 급여 관련 특혜 조항을 신설해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고가 의약품의 급여화를 위해 경제성 입증 기준에 변화가 필요하고 위험분담제(RSA)·경제성평가면제제도(이하 경평면제제도) 대상도 확대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희귀의약품과 희귀질환치료제 용어·정의 일원화해야”

호서대 이종혁 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호서대 이종혁 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호서대 이종혁 교수(제약공학과)는 국내 희귀질환 보장성 개선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이 교수는 “국내에서 희귀의약품과 희귀질환치료제는 정의가 비슷하지만 지정기관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질병관리청으로 각각 나눠졌고 관련 법령도 다소 다르다”며 “희귀의약품으로 허가됐지만 대상 질환이 산정특례 질환이 아닌 경우 희귀질환치료제로 간주되지 않아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희귀질환지료제로 인정받더라도 관문은 남아있다”며 “기대여명 2년 미만의 심각한 질환에 사용되는 경우에만 RSA, 경평면제 대상이 된다”고 부연했다.

결국 급여를 위해선 희귀의약품 지정부터 희귀질환치료제 지위 확보 그리고 제한적 급여평가 특례제도 등 일련의 허들을 모두 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난 10여 년간 희귀의약품의 보험등재율은 56%로 나타났다. 허가 품목 127개 중 71개가 급여를 인정받은 것이다.

단순히 비율을 따지기보단 허가 후 오랜기간 비급여로 남은 약제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이 교수는 짚었다. 이들 약제의 접근성 결여가 환자들에게 미친 영향을 파악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희귀의약품의 대상 질환과 희귀질환 지정 질환의 범주를 일원화해 희귀의약품으로 허가 즉시 보험급여가 적용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며 “해외에서 혁신신약(BTD) 등으로 신속 승인된 희귀질환치료제에 대해선 RSA·경평면제제도 적용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제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서 고민”

패널토론에서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최경호 사무관은 기존 제도를 활용하는 방향에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답했다. 동시에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 역시 중요한 사안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보건복지부 최경호 사무관이 발언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최경호 사무관이 발언을 하고 있다.

최 사무관은 “우리의 역할은 새로운 치료제가 나오면 적정 값어치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중증질환자의 치료권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력하고 있지만 체감 상 부족한 점이 있는 것 같다”며 “특정 약제라고 언급하긴 힘드나 기존 제도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과 정책적인 부분을 많이 고민해 접근성이 나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질병관리청 희귀질환관리과 이지원 과장은 “희귀질환 지정 확대라는 취지에 공감해 매년 새로운 희귀질환을 신규 지정하고 있다”며 “2018년 926개로 시작했던 희귀질환 목록이 2020년 1086개 그리고 올해 1100여 개로 확대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일부 질환의 형평성 문제 등 세부 기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같이 논의를 해 볼 것”이라며 “유전성 혈관부종에 대해서도 유관기관 등과 협의를 통해 폭 넓게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질병관리청은 거점센터를 통해 유전성 혈관부종처럼 발견이 어렵고 치명적인 질환에 대한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다.

유전성 혈관부종은 진단 기법이 이미 급여화된 만큼 홍보가 같이 이뤄진다면 오진 등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이 과장은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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