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 23일 길리어드 간염 아카데미 개최
서울아산병원 임영석 교수, 치료 과정 단순화·기준 변경 필요성 강조
[메디칼업저버 손재원 기자] 간암 등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높은 B형 간염에서 조기 치료적 개입이 질병 악화 위험을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현재 치료 기준을 완화하고 B형 간염 바이러스 역가를 새로운 기준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대두됐다.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는 23일 한국프레스센터 매화홀에서 길리어드 간염 아카데미를 개최했다.
간염은 크게 B형 간염(HBV)과 C형 간염(HCV)으로 분류되며 C형 간염과 달리 만성 B형 간염은 아직까지 완치 가능한 치료제가 없다. 그러나 B형 간염이 악화하면 간암이나 비대상성 간경변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와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길리어드는 B형 간염 치료제 베믈리디(성분명 테노포비르 알라페나미드·TAF)와 비리어드(테노포비르), C형 간염 치료제 엡클루사(소포스부비르/벨파타스비르)와 보세비(소포스부비르/벨파타스비르/복실라프레비르) 등을 보유하고 있다.
길리어드 이주연 상무는 "세계적으로 15억 명이 만성 간질환을 앓고 있고 매년 200만 명이 간질환이나 그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B형 간염을 조절할 수 있는 치료제를 공급하며 최종적으로 완치하는 것이 길리어드의 목표"라고 밝혔다.
HBV에서 바이러스 역가 6log10IU/mL 전후로 간암 위험↑
서울아산병원 임영석 교수(소화기내과)는 기존 B형 간염 치료 기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베믈리디 조기 치료 효과를 분석한 ATTENTION 임상연구 중간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현재 주요 B형 간염 치료 가이드라인은 간 효소(ALT) 수치를 기준으로 치료 여부를 판단한다. 국내에서도 치료 가이드라인이 지난 2023년 3월 개정됐지만, 치료제 적용 기준이 까다로워 진단율과 치료율 간 편차가 크다.
세계적으로 B형 간염 진단율은 2022년 기준 13.4%, 치료율은 2.6%로 보고돼 진단율을 높이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로 지적된다. 반면 한국의 B형 간염 진단율은 2023년 기준 85%를 기록한 데 비해 치료율은 21%에 그쳤다.
임 교수는 "ALT 수치만을 기준으로 하면 치료를 받을 수 없는 B형 간염 환자가 많고, 이런 '회색 지역(그레이존)'에 속한 환자는 간세포암으로 발전할 위험이 더 높다"며 "ALT 수치가 아닌 혈청 B형 간염 바이러스 DNA 수치(이하 바이러스 역가)를 기준으로 치료 가이드라인을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 연구팀이 한국과 대만 22개 기관에서 다국가, 다기관, 전향적, 무작위 배정 임상연구로 진행한 ATTENTION 연구에 따르면 ALT 수치가 낮은 환자에서도 TAF 조기 치료 시 간암 등으로 악화할 확률은 유의하게 감소했다.
4년차 중간 분석 결과, TAF 조기 치료군은 간암이나 비대상성 간경변증 등 발생률이 연간 100명당 0.33명을 기록해 대조군 1.57명 대비 위험을 79% 의미 있게 낮췄다(HR 0.21; P=0.027).
임 교수는 "바이러스 역가가 5~7log10IU/mL 사이일 때 혈소판 수치 상승과 간 섬유화가 나타나는 비중이 가장 높았다"며 "연구 결과, 오히려 이 수치를 넘어가면 간암 발생 위험이 낮아지는 비선형적 상관관계가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가령 신생아 시기에는 바이러스 역가가 9log10IU/mL 수준으로 높지만, 이 경우 간암 등 심각한 간 사건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또 이런 바이러스 역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감소할 수 있다.
이때 바이러스 역가가 5~7log10IU/mL 아래로 급격히 감소하는 경우 다시 위험 범위로 돌아올 확률은 20% 수준이지만, 반대로 서서히 감소해 5~7log10IU/mL 사이에 머무를 경우 간암 등으로 악화할 확률이 높다. 연구에 따르면 바이러스 역가가 6log10IU/mL일 때 간암 등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ALT 수치 기준 바꾸면 간암 질병 부담 낮출 수 있어
학계에서는 현재 치료 기준을 낮추고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B형 간염 환자의 조기 치료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간학회와 아시아·태평양간학회 가이드라인 기준, 간암을 처음 진단받은 환자에서 B형 간염 약제를 복용하고 있는 비율은 36%에 그쳤다. 그러나 미국간학회(AASLD)를 기준으로 하면 B형 간염 약제 복용률은 54%였고 유럽간학회(EASL)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66.5%에 달했다.
임 교수는 "ALT 수치는 간에 염증이 발생하고 세포가 죽어갈 때 나타나는 지표"라며 "이를 기준으로 하면 질환이 악화해 간암이 될 때까지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여러 연구를 통해 ALT 기준을 폐지하고 바이러스 역가를 치료 기준으로 삼아도 된다는 과학적 근거가 축적됐다는 취지다. 실제로 ALT 수치가 정상 수준이어도 간 섬유화나 염증 등 악화 징후가 보고되는 환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1990년대에 들어서며 B형 간염 백신이 폭넓게 보급됐다. 이에 따라 현재는 혈액으로 인한 감염 가능성은 매우 낮고, 모체에서 신생아로 전염되는 수직감염 비율도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포괄적인 신생아 대상 백신 예방접종이 시작되기 전 세대는 상대적으로 B형 간염에 취약하다.
임 교수는 "35세 미만과는 달리 그 이상 연령대에서 B형 간염은 여전히 유병률이 높은 질환이다. B형 간염이 간암으로 악화할 수 있는 주요 연령대는 50~60대"라며 "간암은 완치가 없는 질환인 만큼 B형 간염에서 간암으로 악화하지 않도록 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적절한 초기 치료가 개입되면 연간 간암 발생률을 현재의 0.8~1%에서 0.2%까지 낮출 수 있다. 이 경우 향후 15년간 B형 간염에서 간암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 약 4만 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했다.
임 교수는 "치료 기준에서 ALT 수치를 제외하고 바이러스 역가와 혈소판 수치에 따라 환자를 치료하면 간암으로 인한 질병 부담이 크게 낮아질 것"이라며 "내년부터 학회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개선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건강보험 급여 기준 개선을 위한 협의를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