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간학회, 2025 윌슨병 치료 가이드라인 개정 발표
급성 간부전 진단·REC 지표 등 포함돼…신규 치료제는 아직
[메디칼업저버 손재원 기자] 유럽간학회(EASL)가 윌슨병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새롭게 주의해야 할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Journal of Hepatology 4월호에 실렸다.
윌슨병은 구리 대사 이상으로 인해 간과 뇌 기저핵에 구리가 과다하게 축적되는 유전질환이다. 국내 유병률은 10만 명당 3.06명으로 상대적으로 흔한 유전질환에 속한다.
주요 증상은 구리가 간세포 내에 축적돼 세포를 손상시킴으로써 발생하는 간경변증이다. 또 간경변증을 동반한 만성 간염이나 신경학적 손상이 일어날 수 있고, 심한 경우 급성 간부전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감별진단 중요성 강조…"REC, 진단·모니터링에 도움"
이번 EASL 가이드라인은 간 상태와 무증상 질환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윌슨병의 정의에 포함시켰다. 이를 통해 전반적인 진단뿐 아니라 진단이 어렵거나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경우에도 정확한 진단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윌슨병의 가장 흔한 증상은 간질환으로, 대부분의 환자가 5~35세 사이에 증상을 보인다. 윌슨병으로 인한 간경변증이 보고된 가장 어린 환자는 3세에 간경변증이 나타난 바 있다.
신체적 특성으로는 구리 침착으로 인해 각막 테두리를 따라 나타나는 황록색 병변인 '카이저-플라이셔 고리'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는 윌슨병의 중요한 진단 지표 중 하나다.
이번 가이드라인에서는 윌슨병 환자에서 나타날 수 있는 급성 간부전(AEF) 진단 중요성도 여전히 강조됐다. 윌슨병으로 인한 급성 간부전은 남성보다 여성에서 약 4배 높게 나타나며, 특히 젊은 여성에서 비율이 높다. 다만 젊은 환자에서 급성 간염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급성 간부전 진단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EASL은 대사이상 지방간질환(MASLD)이나 약인성 간손상(DILI), 자가면역성 간염(AIH), 담즙정체성 간질환, 진행성 가족성 간내 담즙정체증(PFIC) 등을 간 상태와 관련된 감별진단 대상에 포함할 것을 권고했다.
간에서 구리 축적이 증가하거나 조직학, 영상학적으로 지방간과 관련된 특성을 보이는 경우 등은 담즙정체성 간질환이나 MASLD 등 다른 질환과 유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감별진단을 통해 윌슨병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윌슨병 진단에는 여전히 라이프치히 점수가 기본 척도로 적용된다. EASL은 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해 혈액 내 교환 가능한 구리 양을 측정하는 비율(REC) 지표를 추가적인 진단 매개변수로 포함시켰다.
기존에는 혈중 세룰로플라스민 농도 감소나 24시간 소변 구리 배출 증가 등을 기준으로 우선 진단하며, 라이프치히 점수 4점 이상인 경우 치료가 권고됐다. 여기에 더해 라이프치히 점수가 1~3점이면서 REC가 15%를 넘기는 경우도 치료 대상에 포함됐다.
치료 모니터링 과정에서도 기존 매개변수에 REC를 함께 포함시켰다. 이는 치료 순응도가 낮은 환자를 발견하거나 치료 과정을 개인별로 최적화하는 데 있어 보다 개별적인 접근을 하기 위해서다.
이는 특히 윌슨병으로 인한 급성 간부전과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급성 간부전 환자 31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윌슨병으로 인한 급성 간부전 환자는 REC가 15%를 넘긴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는 모두 15% 미만에 머물렀다.
서울대병원 고재성 교수(소아청소년과)는 "국내에서는 아직 REC 검사가 불가능하다"면서도 "윌슨병 진단 시 유전자 검사에는 장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그 결과가 나오기 전 윌슨병을 진단하고 약물 치료 중 모니터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경학적 증상 악화하면 '간 이식' 필요성↑
이번 가이드라인은 심각한 신경학적 침범을 보이는 경우 간 이식이 필요하다는 점과 이를 뒷받침할 유효한 근거를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윌슨병에서 나타나는 신경학적 증상은 정도와 양상이 다양하고, 수년간 유지되거나 몇 달 만에 급격하게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윌슨병 진단 후 신경학적 증상에 대한 관리와 치료 중요성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신경학적 증상 진단에는 주로 뇌 MRI가 사용된다. 윌슨병으로 인한 신경학적 증상을 보이는 환자 90% 이상이 뇌 MRI 이상 소견을 보인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지속적으로 신경학적 증상이 악화하는 경우 간 이식을 치료 옵션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는 최소 6개월 이상의 표준치료를 진행했으나 신경학적 증상이 완화되지 않는 경우에 대해 강한 수준으로 권고됐다.
아울러 윌슨병 표준치료로는 여전히 D-페니실라민과 트리엔틴염산염, 아세트산아연 등 기존 치료법이 꼽혔다. 신규 윌슨병 치료제 임상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대부분 전임상 단계에 그쳤고, 실질적으로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후보가 없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급성 간부전 관리를 위해 킬레이션 요법과 대용량 혈장 교환을 중요한 중재법으로 강조한 점도 특징이다. 특히 간성 뇌병증이 없으면서 비대상성 간경변증 증상을 보이는 경우, 킬레이션 요법을 통해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언급됐다.
급성 간부전이 발생할 만큼 심각한 윌슨병 환자에서 최적의 치료 방식은 여전히 간 이식인 것으로 나타났다. 표준치료 시에도 윌슨병 환자 생존률이 높지만,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간 관련 증상이나 신경학적 증상이 악화하면 간 이식을 강하게 권고했다.
고 교수는 "이번 가이드라인은 비대상성 간경변으로 인한 간 이식이 필요한 윌슨병 환자에서 신경 증상이 동반되더라도 간 이식 금기가 아니라는 점을 명시했다"며 "최근 연구 성과를 반영해 구체적으로 개정된 만큼 윌슨병 진단과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