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박선혜 기자.
편집국 박선혜 기자.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학창시절 반장이라는 이유로 내 의견만 주장하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학급 대표라는 감투를 쓰고 친구들의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았고 내 의견만 관철시키려고 했다. 

철없던 행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학급 친구들의 신뢰를 잃어가는 것을 체감하며, 반장은 내 의견을 주장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학급 친구들을 신뢰하고 존중하며 소통해야 하는 무거운 자리임을 깨달았다.

지난 2월 정부가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하면서 의료계와 정부의 강대강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진료 공백 사태도 심해지면서 국민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

국민 여론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분위기다.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발표했던 초기, 여론은 이 같은 정부 정책 추진을 적극 지지했다.

이후 의료계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반대하는 근거를 대며 집단행동을 강행했다. 이에 따른 진료 공백이 이어지고 있으나 정부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입장을 계속 고수하자, 정부를 지지하던 여론은 '의대 정원을 증원하되 규모와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심지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정부가 2000명에 과도하게 집착한다며, 2000이란 숫자를 두고 음모론도 확산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은 '의대증원·의료개혁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쐐기를 박았다. 그러면서 의료계를 협상 대상이 아닌 불법 집단으로 칭했고, 의대 정원 증원을 추진해 그동안 공고했던 '의사 카르텔'을 혁파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고 의료계와 협력하며 논의해 유능하게 이번 사태를 해결하길 기대했다. 하지만 숫자에 매몰된 듯한 대통령 담화로 2000명이란 숫자는 국민에게 '불통'의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협의해야 할 의료계를 자극하면서 의료계의 허탈감과 실망감을 야기했다. 

이후 대통령실에서 의대 정원 증원을 협상할 수 있다며 논란을 잠재우려고 했지만, 대통령 담화와 다른 대통령실 발표는 국민들의 혼란만 불러일으켰다.

대통령 담화에서 국민들이 원했던 것은 대통령이 이번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해결 방안이었다. 하지만 방안 없이 숫자에만 집착했다. 

대통령은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면서 다양한 주장과 의견을 수렴해 국가가 분열과 혼란에 빠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이번 대통령 담화는 국민들과 의료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의지도, 국가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겠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남은 건 1999명도, 2001명도 안 되는 '2000명'이란 숫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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