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합의 권한 위임받지 않아…수술과정상 과실도 인정

의료사고를 내고 환자 보호자와 서둘러 합의를 한 병원에 대해 법원이 ‘합의 무효’를 선고했다. 여기에 수술상 과실도 인정돼 병원 측은 5억이 넘는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8부는 최근 환자 A씨가 B학교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5억 8703만 3796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지난 2011년 주차 중 추돌사고로 B법인에서 운영하는 B대학병원에 입원하고, 뇌혈관조영술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A씨의 우측 중대뇌동맥 분지에 22×18mm크기의 뇌동맥류가 확인됐고, B대학병원 의료진은 A씨에게 개두술 및 뇌동맥류 경부 결찰술을 시행했다.

수술 당시 의료진은 근위부 중대뇌동맥, 원위부 중대뇌동맥, 동맥분지 총 3부위에 임시클립으로 결찰한 후 동맥류를 천공·흡인해 허탈시키고, 동맥류 체부를 절개해 경부 일부를 남기고 절제한 후, 근위 부분을 7.5mm 길이의 영구클립으로 결착했다.

수술이 종료된 후, 중환자실로 옮겨진 A씨는 두통을 호소했고 결국엔 반 혼수상태에 이르자, 의료진은 뇌지주막하출혈을 의심해 응급수술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2차 수술 당시 심하지는 않았으나 지주막하출혈과 뇌부종이 있었고, 1차 수술 당시 거치한 클립의 끝부분에서 간헐적으로 출혈이 관찰됐다. 의료진은 4mm, 6mm 크기의 클립을 이용해 출혈이 있는 클립 끝 부위를 막고 지혈조치를 한 뒤 수술을 종료했다.

2차 수술 이후, 10일가량 상태가 안정되던 A씨는 갑자기 의식 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났고, 뇌 CT 검사결과 뇌출혈 소견을 보여, 응급수술을 또 받게 됐다. 3차 수술 과정에서 의료진은 기존 뇌동맥류의 인접 부위인 전두 분지 뒤쪽으로 새로운 뇌동맥류가 관찰돼 7mm, 10mm 크기의 클립으로 뇌동맥류 경부 결찰술을 시행했다.

3차 수술까지 받은 후 A씨는 8개월 가량 재활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지만 현재 좌측 편마비, 보행장애, 인지기능 저하 상태이다.

의료사고도 문제지만 병원 측은 A씨의 배우자 C씨에게 합의를 요구한 것이 더 큰 문제로 비화됐다. 3차 수술이 끝난 뒤 병원이 치료비 중간정산을 독촉하자 C씨는 담당의사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했고, 담당의사는 원무과를 찾아가라고 했다.

원무과장은 C씨에게 위자료 명목으로 6100만원을 지급할 테니, 모든 민사·형사·행정상 권리를 포기하고, 민원제기, 언론 및 인터넷 등을 통한 호소, 면담강요, 집회·시위 등의 행위를 하지 말라고 제안했다.

C씨는 이에 응해 보관하고 있던 A씨의 인감과 신분증으로 병원 측과 합의했고, 병원 측은 합의금에서 진료비 2582만 8930원을 공제한 나머지 3517만 1070원을 지급했다.

이 사실을 알게된 A씨는 즉각 소송을 제기했다. 병원과 C씨의 합의에 대해 ‘대리권을 수여하지 않았다’며 합의 무효와 함께, 의료진이 수술을 할 때 부적절한 클립을 사용하는 등 지주막하 출혈을 발생하게 한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병원과 C씨의 합의에 대해 재판부는 “C씨는 A씨의 보호자이기 때문에 이 사건 합의를 한 것이고 퇴원 직전까지 합의사실을 말하지 않아 A씨는 합의 사실을 알고 있지 못했다”며 “합의 당시 A씨에게 장애가 있거나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었고, 오히려 장애인이 된 것에 때문에 병원에 쳐들어가겠다고 하는 등 병원 측에 적개심을 표출했다”고 밝혔다.

병원 측에 불만을 가진 A씨가 합의 내용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이어 “C씨는 위임장 등 대리권을 증명하는 서류를 가지고 오지 않았고, B병원은 합의에 관해 A씨에게 한 번도 확인하지 않은 점을 비춰보면 C씨가 합의와 관련해 A씨를 대리할 권한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여기에 재판부는 수술 과정상 문제가 있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1차 수술 이후 클립 끝부분에서 출혈이 관찰됐는데 시술한 클립이 완전히 고정되지 않거나 조여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고, 의료진도 2차 수술시 출혈을 막기 위해 2개의 클립으로 1차 수술시 시술한 클립을 보강했다”며 “클립이 느슨해져 발생한 출혈은 잘못된 위치, 부적절한 조임 등에 의해 발생할 수 있고 수술적 결찰술의 불가항력적인 합병증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재판부는 “의료진에게는 뇌동맥류 경부 결찰술을 시행함에 있어 클립으로 동맥류 경부를 완전히 결찰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며 “다만 A씨에게 이상 증상이 발생하자 즉각 응급수술을 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의 조치를 하고자 노력한 점 등을 비춰봤을 때 피고의 책임을 60%로 제한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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