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생식의학회 서주태 회장

▲ 서 회장은 "난임 부부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제대로 쓰이려면 정확한 원인감별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전통사회에서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다던 칠거지악(七去之惡)에는 '무자(無子)'가 포함돼 있다. 그 정도로 불임(不妊)이 전적인 여성의 잘못으로 여겨지던 경향이 컸던 것이다. 이제는 달라졌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불임의 원인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임신 가능성이 높아졌고, 그에 따라 불임이란 용어 대신 난임(難妊)으로 바꿔 부르는 추세. 난임이 저출산과 함께 중대한 보건 사회적 문제로 자리하게 되면서 난임 부부에 대한 정책 지원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난임에 관한 인식이 치료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여전히 난임의 원인으로 여성측 요인이 크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고, 난임을 진단받은 남성 중에서는 경제적 부담이나 수치심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경향이 높다. 인터넷이나 일부 종편 방송을 통해 여과 없이 노출되는 잘못된 정보들도 문제다. 대한생식의학회 서주태 회장(제일병원 비뇨기과)은 "난임은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가 합심해서 노력하면 극복 가능한 부분"이라며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기보다는 이른 시일 내에 전문의와 만나 정확한 원인을 찾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Q. 올해 초 우리나라의 난임 환자 수가 20만명에 달한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가 있었다. 난임 환자 수가 계속 늘어나는 원인은?A. 불임이란 임신 가능한 연령대 부부가 피임 없이 1년 이상 정상적인 성생활을 했음에도 자연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임기 부부 7쌍 중 1쌍, 즉 15%가량이 불임에 해당한다고 집계된다.여기서 한 가지, 불임(infertile)은 임신을 못 한 경우일 뿐 임신불능(sterile)은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는 임신하기 어려운 상태를 뜻하는 난임이란 표현이 더욱 정확하겠다.이렇듯 난임 환자 수가 증가하는 원인으로는 남녀를 막론하고 사회적으로 결혼 연령대가 늦어지는 부분이 크다고 본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다 보니 성관계 횟수도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가정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이다.실제 난임 치료를 위해 내원하는 환자들을 보면 직장 때문에 멀리 떨어져 지내는 주말부부나 외부 모임, 각자의 취미생활 등으로 성생활에 소홀한 부부들이 꽤 된다.Q. 시대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여성에 의한 난임 비율이 높다는 인식이 많은 것 같다. A. 난임은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다. 난임의 원인이 전부 여성에게 있다는 생각은 바로잡아야 할 잘못된 통념이다.난임 부부 가운데 3분의 1은 여성 측 요인, 3분의 1은 남성 측 요인, 나머지 3분의 1은 양측 모두의 요인이거나 현재 의학 수준으로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원인불명이라고 나눠볼 수 있다. 즉 절반가량은 남성 측 요인에 기인하기 때문에 자세한 병력청취와 신체검진, 2~3차례에 걸친 정액검사 및 호르몬검사를 통한 원인감별이 중요하다.
▲ 서주태 회장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Q. 남성에서 난임을 일으키는 원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A. 남성 난임은 정액검사의 결과에 따라 크게 △정액검사가 정상인 경우 △감정자증, 약정자증, 기형정자증처럼 정액검사에서 정자는 있지만 정자 척도에 이상이 있는 경우 △무정자증으로 대별된다.

이 중 무정자증은 병명이 아니라 단순히 정액검사상 정자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 원인에 따라 치료방향이 달라지는데, 특히 혈관계 이상을 나타내는 정계정맥류(varicocele)가 가장 흔하다. 정계정맥류는 정계(spermatic cord) 안쪽 만상정맥총(pampiniform plexus) 정맥의 비정상적인 확장 상태로 대부분 좌측 고환에 발생한다. 일반 성인 남성의 약 15%, 난임으로 내원한 남성의 경우 3분의 1 정도(19∼41%)에서 정계정맥류가 있다고 보고된다.

다행히 정계정맥류가 있다고 해서 모두 불임은 아니며, 치료 가능성 또한 높다. '교정 가능한 불임의 가장 흔한 형태'라고 알려진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원인을 잡아낸 다음에는 △불임의 원인이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한지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본인의 정자를 이용한 보조생식술이 가능한 상태인지 △비배우자 공여정자를 이용하거나 양자 입양을 고려해야 할 상태인지 △불임에 영향을 미칠 만한 의미 있는 기존 질병이 있는지 △환자 본인이나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및 염색체 이상이 동반되어 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Q. 난임 부부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대된다고 한다. 임상현장에서 체감하는 반응은?

A. 정부에서 난임시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키로 한 부분은 임상의로서 반가운 일이다.

다만 이러한 지원금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난임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난임시술 지원금이 사용된 현황을 보면 원인불명에 의한 시험관 아기 시술의 비율이 높다. 상대적으로 남성에 의한 난임 비율이 낮게 나타나고 여성 측 요인 또는 원인불명에 의한 시험관아기 시술이 늘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계정맥류를 수술적 치료로 교정했을 때 자연임신율이 50%라면 시험관아기를 시도했을 때 임신성공률은 크게 잡아도 35%에 불과하다. 반면 비용은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남성 측의 원인을 찾는 과정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성은 여성에 비해 검사 절차가 간편하고 비용도 저렴하므로 먼저 검사를 받는 편이 바람직하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갈수록 늦어지는 결혼연령과 저출산의 문제가 해결돼야 하겠다.


Q. 난임으로 고통받는 부부들에게 조언한다면?

A. 오늘날 가임기 부부들이 워낙 인터넷 환경에 익숙한 세대들이다 보니 인터넷이나 종편 방송을 통해 엉터리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얼핏 들으면 귀가 솔깃해질 법한 내용이 많지만 진단과 원인을 해결하는 중간과정이 생략된 채 치료만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문의와 만나 의학적 근거가 입증된 방법으로 치료받길 권한다. 이에 대한생식의학회에서도 표준 치료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기 위해 1년 정도 기간을 잡고 난임치료 가이드라인을 작업 중이다.

난임 치료는 파트너십(partnership)이 중요하다.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고 부부가 합심해 극복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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