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중환자실 전격해부<4>

 

최근 중환자실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9월 1일부터 무균치료실, 중환자실 같은 특수병상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이 강화되면서 입원료가 올랐고(상급종합 2등급 기준 14만원→24만원), 소아중환자실 수가(상급종합 2등급 기준 28만원)가 신설됐으며, 전담 전문의 근무요건을 준수할 경우 가산료(3만원)가 붙게 됐다.

2008년 이후 수년째 동결 상태였던 중환자실 수가가 조금이나마 개선됐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병원들은 "중환자실은 제대로 운영할수록 적자"라는 한숨 섞인 소리를 낸다.

선택진료 및 상급병상 축소로 인한 경영손실분을 보전하기 위해 마련된 궁여지책에 불과한 데다, 이마저도 인건비 상승률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는 것.

학계에서도 의료법 관련 조항이나 중환자실 등급제 등에 대해 십수년째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환자들 가운데 절반이 퇴원 1개월 이내 사망한다. 지난해에는 중환자실 병상수가 법적 기준에 미달되는 기관들도 발각됐다. 적자라는 이유로 병원 측은 중환자실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고, 중환자실 근무인력들의 업무부담은 과중되면서 진료의 질이 떨어지게 된 결과다.

의료 선진국을 표방하는 대한민국 중환자실에 과연 어떤 문제가 숨어 있는 것일까?

1. 대한민국 신종플루 사망률, 미국의 5배?

2. 뒤처져도 한참 뒤처진 의료법

3. 중환자실 돌릴수록 적자...왜?

4. 해답은 '중환자진료팀' 

학계에서는 중환자실에 전담 전문의를 의무적으로 배치해야 함은 물론, 다학제 진료팀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국내 중환자의학 분야의 최고권위자로 알려진 고신옥 교수(연세의대)를 중환자진료센터장으로 영입한 중앙대병원은 중환자실에 전담 전문의를 배치한 뒤 중환자 사망률과 입원기간이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중앙대병원이 지난 6개월간 외과계 중환자실의 주요 지표를 분석한 결과,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를 배치하기 전 사망률 11.6%에서 배치 후 7.1%로 4.5%p 낮아졌다. 평균 재실일수 역시 4.9일에서 4.3일로 12.2% 감소했다.

전담의 배치 여부가 중환자 진료의 질을 제고하는 요인임을 시사하는 결과다. 입원환자 수가 14.5% 증가한 것은 그에 따른 부가 이익이었다.

▲ 고윤석 교수

고신옥 교수는 "중환자실에서 급성기 중환자 치료 효과를 호전시키기 위해서는 환자 상태 변화를 조기에 파악하고, 적절한 진단과 치료가 즉시 이뤄져야 한다"며 "중환자의학 교육과 임상경험이 많은 전담 전문의사가 중환자실에 있어야 그러한 역할을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중환자의학회 학술대회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공개됐다. 당시 대한중환자의학회가 제공한 자료를 살펴보면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가 있는 병원과 없는 병원의 패혈증 사망률이 각각 18.0%와 41.6%로 큰 폭의 차이를 보임을 알 수 있다.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때 전담 전문의가 없는 중환자실의 사망률이 50%에 달했고, 전담 전문의가 있는 곳과 2배 이상 차이가 났다는 심평원의 보고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고윤석 교수(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인문사회의학과)는 "중환자실을 전담하는 진료팀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치료성적이 차이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일관되게 나오고 있다"며, 중환자의학 전문의가 중심이 된 중환자진료팀의 도입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중환자 전담 전문의를 중심으로 간호사, 약사, 영양사, 호흡치료사, 사회사업가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함께 회진을 돌면서 진료하는 방식으로,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국내에서도 일부 시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아산병원 내과계 중환자실은 전담 전문의 외 호흡기 전담 간호사와 전담 영양사, 약사, 재활치료사의 팀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다만 지금으로써는 기관 자체에서 적자를 무릅쓰고 인력을 지원해야만 운영이 가능한 상황이다.

▲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진료보는 모습

고윤석 교수는 "중환자의학 전문의들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개선돼야 한다"며, "제대로 된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데 소요되는 진료 원가를 보험급여로서 보전해 주고, 성인 중환자실도 신생아중환자실과 같이 전문의 전담의를 두도록 관련 의료시행규칙을 개정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아울러 전문의를 중환자실 전담의사로 배치한다고 해서 중환자진료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전문적 판단의 결여로 인해 발생하게 되는 불필요한 치료를 배제하고, 적절한 진료가 이뤄지기 때문에 오히려 중환자들의 사망률을 저하시키고 중환자진료 비용의 효용성도 증대될 수 있다.

고윤석 교수는 "병원의 진짜 실력은 중환자실에서 판가름 난다"며, "장비는 마음만 먹으면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의료 인력은 불가능하다. 국가 차원에서 중환자진료에 대한 제도개선과 투자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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