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중환자실 전격해부<2>

 (사진 제공: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최근 중환자실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9월 1일부터 무균치료실, 중환자실 같은 특수병상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이 강화되면서 입원료가 올랐고(상급종합 2등급 기준 14만원→24만원), 소아중환자실 수가(상급종합 2등급 기준 28만원)가 신설됐으며, 전담 전문의 근무요건을 준수할 경우 가산료(3만원)가 붙게 됐다. 2008년 이후 수년째 동결 상태였던 중환자실 수가가 조금이나마 개선됐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병원들은 "중환자실은 제대로 운영할수록 적자"라는 한숨 섞인 소리를 낸다.

선택진료 및 상급병상 축소로 인한 경영손실분을 보전하기 위해 마련된 궁여지책에 불과한 데다, 이마저도 인건비 상승률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는 것.

학계에서도 의료법 관련 조항이나 중환자실 등급제 등에 대해 십수년째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환자들 가운데 절반이 퇴원 1개월 이내 사망한다. 지난해에는 중환자실 병상수가 법적 기준에 미달되는 기관들도 발각됐다. 적자라는 이유로 병원 측은 중환자실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고, 중환자실 근무인력들의 업무부담은 과중되면서 진료의 질이 떨어지게 된 결과다.

의료 선진국을 표방하는 대한민국 중환자실에 과연 어떤 문제가 숨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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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중환자진료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지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학회는 중환자의학 전문의사의 부족과 관련 의료법의 부실을 꼽는다.

현재 의료법상 국내 성인 중환자실에는 '전담의사를 둘 수 있다(중환자실의 시설 규격 시행규칙 제28조의 8)'라고 돼 있어, 전담의 배치에 관한 의무조항이 없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집중치료부 책임자는 일본집중치료의학회가 인정한 집중치료 전문의사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데, 그나마 '전국 44개 상급종합병원에 전담 전문의를 1명 이상 둬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된 것도 올해 1월 1일부터다.

학회가 처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중환자실 인력 및 시설 기준'의 강화를 요구했던 것은 정확히 2003년 6월.

의료인 2661명의 이름으로 작성된 청원서에는 '중환자실에 전담 전문의를 배치해 적시에 환자상태를 관찰하고 치료를 담당하도록 하고, 간호사 대 환자 수가 최소 1:4의 비율을 유지함으로써 양질의 간호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여에 걸친 회의 끝에 탄생한 지금의 의료법(보건복지부 고시 제2008-40호)은 신생아 중환자실에 전담 전문의 배치를 의무화 한 것과 달리, 성인 중환자실의 경우 '둘 수 있다'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가 헌법 제10조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들며 '전담의사를 둬야 한다'는 개정안을 제시했지만 수용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는 전담의사의 자격요건에 대한 내용도 빠졌다.

제12차 세계중환자의학회 학술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은 고윤석 교수(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인문사회의학과)는 "현행 의료법은 중환자실에 전담의사를 두든 말든 상관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고령화와 더불어 환자 중증도가 점차 높아지는 현실에 맞게 제도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치열한 유치 경쟁을 뚫고 세계중환자의학회라는 큰 대회를 유치하게 된 것도 정책 당국자들과 시민들에게 중환자실의 허약한 실상을 알려야겠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가까운 중국만 해도 전담 전문의가 중환자실을 맡고 있고 선진국의 경우 24시간 상주해야 하는지가 논쟁거리인데, 우리나라는 전담 전문의를 둬야 하는지조차 제도상에 명시돼 있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고 교수는 "전담의의 자격에 대해서도 명확한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며 "최소 2등급 이상의 중환자실 병상에는 인턴이나 일반의가 아닌 전문의를 배치하도록 의료법 시행규칙이 바뀌어야 하고, 전담의 한 명당 중환자 몇 명을 봐야 하는지도 명시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전담의 1명이 담당할 수 있는 중환자수를 15명으로 줄이고, 기존에 학회가 운영하고 있는 중환자의학 세부전문의의 역할을 강화하는 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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