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중환자간호사회 김필자 회장

▲ WFSICCM Seoul 2015 당시 공개됐던 국내 대학병원 CCU 전경. 환자 1명에게 수많은 의료장비들이 적용되고 있다.

지난 세계중환자의학회 학술대회(WFSICCM Seoul 2015) 때 전 세계 의료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진 한 장이 있다.

우리나라 대학병원 심장내과중환자실(CCU)의 전경.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환자에게만 약물주입펌프가 10개 이상 달려있고, 동맥혈압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IBP(Invasive Blood Pressure), 체외순환보조장치(PCPS), 지속적혈액투석기(CRRT), 인공호흡기, 일시적 심박동조율기 등 수많은 의료장비가 연결돼 있다.

병원중환자간호사회 김필자 회장(세브란스병원 특수간호팀장)은 "이 사진이야말로 한국의 중환자간호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가 아니겠냐"며 "강의 도입부에 이 사진을 보여줬더니 도대체 몇 명의 간호사가 이런 환자를 보는지 질문이 쏟아졌다"고 회고했다.


환자부담 2배…세계 노동강도 1위

같은 세션을 통해 소개됐던 나이지리아, 호주의 경우 환자:간호사 비율이 1:1~2:1 수준. 심지어 미국 캘리포니아주, 호주 빅토리아주에서는 '간호사 1명당 환자 2명'이라는 법적 기준까지 정해놨다.

운이 좋아야 2:1, 심한 경우 4:1~5:1까지도 이르는 국내 상황과는 천양지차이다.

병원중환자간호사회가 제공한 2008년 연구자료에 따르면, 국내 3차종합병원에서 간호사 1명이 자신의 근무시간 동안 간호하는 환자 수가 평균 3.3명, 종합병원은 4.2명으로 집계됐는데, 반면 2008~2013년 서울 및 경기 소재 8개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의 인공호흡기 사용일수는 매년 약 4000일씩 증가했다.

환자의 중증도와 더불어 간호요구도가 그만큼 늘어났음을 시사하는 자료다.

▲ 연도별 각 장비의 사용일수가 매년 약 4000일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출처: 병원중환자간호사회 백서)

김 회장은 "지난 6년간 중환자실 환자의 간호요구도가 얼마나 증가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서 "이토록 중증도가 높아졌음에도 국내 상급종합병원의 인력비율은 큰 차이가 없다. 그만큼 간호인력에 대해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얼마 전 메르스 사태만 보더라도 간호사 수가 부족해서 공개모집을 통해 자원봉사자들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병원 경영진이나 정책 당국은 여전히 위기감이 덜한 듯 보여 답답할 따름이라고.

지방 중소병원들도 덜하진 않다. 상대적으로 환자 중증도는 낮을지 모르나 급여, 근무여건 등이 열악하다보니 이직률이 높고 서울 대병형원으로 빠져나가는 인력 때문에도 애를 먹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환자실, 운영할수록 적자…간호인력 투자에는 무관심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중환자실 간호인력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까?

▲ 김필자 병원중환자간호사회장

김 회장은 '낮은 수가'가 그 원인이라고 꼽는다.

2008년 보건복지부는 약 200억의 예산을 들여 중환자실 표준화 및 등급화와 함께 수가를 조정했지만 원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달 1일부터 중환자실 입원료(1등급 기준)가 15만 450원에서 26만 8800원으로 오른 것 또한 실효성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여기에는 중환자실을 제대로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 폭이 커진다는 보험급여 구조의 영향이 크다.

즉 병원에서는 환자의 입원비로 인건비 등 중환자실의 운영비용을 커버하게 되는데, 환자 1명이 하루 입원할 때 26만 8800원을 지불하더라도 간호사를 포함한 기타 직원들의 월급을 대체하려면 적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

미국에서 성인 중환자실 1일 입원료가 176만원, 호주 195만원, 영국 240만원이라는 자료만 봐도 확연히 차이가 드러난다.

김 회장은 "입원료가 올라도 한국에 있는 모든 중환자실은 적자"라면서 "필수로 있어야 하는 부서임에도 충분히 늘리질 못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병원 측에서는 중환자실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되고, 간호사는 물론 의료인들의 업무부담은 과중되며, 진료의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질 못하게 된다.

지난해 병원중환자간호사회가 국내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의 5000여 개 중환자실 병상에 대해 설문을 실시한 결과, 미국 의료기관에서 전체 병상수 가운데 중환자실이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반면, 우리나라는 가장 높은 기관이 12.3%, 가장 낮은 기관은 3.4%에 불과했다. 이는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은 입원실 100병상당 5병상 이상의 중환자실을 구비해야 한다는 의료법 기준에도 미달되는 수치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간호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환자를 돌보고 있다"며, "1등급 상급 종합병원은 현장에서 1:1 최소 1:2 비율을 유지하되 나머지 기관들도 실정에 맞게 인력구조를 개편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병원중환자간호사회 회장으로서 남은 임기 동안 중환자실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인력등급을 현재보다 상향조정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그는 "중환자실 간호사는 환자관리 및 치료보조뿐 아니라, 환자 치료와 관련된 각종 기계를 다루고, 치료관련 설명 및 상담, 행정업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면서 "적정 수준의 간호사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환자의 알권리 및 안전, 생명에도 영향을 미쳐 고스란히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대안으로는 "인건비를 보전할 수 있도록 간호관리료 수가를 상향조정해야 함은 물론, 등급을 줄이는 대신 그 간격을 넓혀 등급별 수가 차이를 크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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