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만으로 판단 안돼” vs “대사증후군 전 과도기” 의견 분분

 

비만은 지난 수십 년간 인류를 위협하는 공중보건학적 문제 중 하나였다. 비만 유병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현 추세대로라면 2030년까지 전 세계 인구 10억명 이상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문제는 제2형 당뇨병이나 이상지질혈증, 심혈관질환, 암과 같이 비만으로 인해 유발되는 다양한 합병증이다.
국내 연구에서도 비만도가 높아질수록 심혈관질환은 물론 대장암, 직장암, 간담도암, 전립선암, 신장암, 갑상선암, 흑색종 등 암 발생 위험이 증가됐음이 확인됐다. 
그런데 최근 몇몇 연구에서 비만 환자들 중 일부는 관련 합병증 위험이 증가되지 않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즉 비만 유형에 해당하지만 대사이상을 동반하지 않은 그룹으로, 흔히 '대사적으로 건강한 비만(metabolically healthy obesity, MHO)'이라고 불린다. 
아직까지 명확한 진단기준이 제시되진 않았는데, 심대사질환 발생률이나 사망률을 추적한 연구들이 엇갈리는 결과를 보고함에 따라 학계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극단적으로는 '건강한 비만'이라는 개념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비만인 3명 중 1명꼴로 관찰되는 'MHO', 통일된 진단기준 없어

'(대사적으로) 건강한 비만'이란 체중이 정상 범위를 초과하면서도(BMI>23kg/㎡, 아시아인 기준) 대사적으로 이상 소견이 없는 사람들을 일컫는 개념이다. 대사장애가 있지만 정상체중인 그룹(metabolically unhealthy normal weight)과 대조를 이루며 비만의 새로운 하위유형으로 떠올랐다(Curr Opin Endocrinol Diabetes Obes 2012;19:341-6).

비만한 사람 대부분에서 제2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통풍, 고혈압,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과 인슐린저항성이 증가하지만 10~25%가량은 인슐린 감수성이 보존되며 대사이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었고, 체질량지수(BMI)가 동일하면서도 이질적인 특성을 갖는 그룹에 학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Curr Opin Lipidol 2010;21:38-43)<표>.

이들은 대체로 전체 비만그룹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고 집계되는데, 정체된 개념이 아니라 대사증후군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이기 때문에 허리둘레를 줄이는 등의 중재전략을 통해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Diabetes Care 2013;36:2388-2394).

 

그러나 LDL-C, HDL-C, 중성지방(TG), 혈압, 공복혈장혈당(FPG), 인슐린저항성 등 대사이상을 의미하는 소견들이 매우 다양하고, MHO의 정의가 표준화돼 있지 않다는 점은 장애요인으로 꼽힌다(Rev Endocr Metab Disord 2013;14:219-27). 어떤 기준을 적용했느냐에 따라 발생빈도가 급격히 달라진다는 것도 문제다(Eur J Clin Nutr 2010;64:1043-1051).

한국 중년 남성들을 대상으로 MHO 유병률을 조사했던 대한가정의학회 논문(Korean J Fam Med 2013;34:19-26)에서도 연령별로 MHO와 비만 위험군 사이의 대사프로파일 차이가 다양했고, NCEP, HOMA 등 기준에 따라 유병률이 많게는 50%가량 차이를 보였다. 이에 "MHO를 결정하는 데 표준화된 프로토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비만 그룹을 계층화함으로써 생활습관 중재나 약물요법, 배리아트릭수술을 통해 가장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는 유형을 파악하고, 적극적인 개입 시점을 파악하는 데도 유용하다는 논리다.

울산의대 정창희 교수(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는 "MHO의 표준화된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고, 현재까지의 기준은 이들 그룹의 생리기전을 설명하기에 불충분하다"며 보다 섬세한 진단기준의 필요성을 어필했다.


“적극 치료 필요 없어” vs “정상 체중보단 위험” 갑론을박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MHO 그룹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비만 치료가 필요할지 여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뉜다. MHO가 사망률이나 심혈관질환, 당뇨병과 같은 질병 이환율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많은 연구들이 진행됐지만, 대부분 엇갈리는 결과들을 보고해 왔던 것.

이탈리아 Calori G. 교수팀(산라파엘 과학연구소)은 MHO 그룹을 15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인슐린저항성이 발생한 비만 그룹에 비해 전체사망률, 암사망률, 심혈관사망률이 증가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Diabetes Care 2011;34:210-215). 이듬해 공개된 7년 추적연구에서도 MHO 그룹은 심혈관사망률과 전체사망률을 증가시키지 않았다(J Clin Endocrinol Metab 2012;97:2482-2488).

뉴저지의치과대학(UMDNJ) Adarsh Gupta 교수팀은 "BMI 30kg/㎡ 이상인 성인 454명의 허리둘레, 혈압, 중성지방(TG), HDL-C, 공복혈당 등을 조사한 결과 무려 135명이 어떤 항목도 표준 범위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 건강한 비만으로 나타났다"며 "비만 치료를 할 때 '건강한 비만'과 '병적 비만'과 같은 기준을 좀 더 신중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대사증후군과 관계없이 체중이 높으면 건강할 수 없다는 상반된 데이터도 상당하다.

비만 환자 638명(MHO, 정의에 따라 9~41%)을 17.7년간 추적한 연구에서는 대사이상 여부에 따른 사망률 차이가 유의하지 않았고(Diabetes Care 2013;36:2294-2300), 이후 메타분석에서도 MHO는 대사이상이 없고 정상체중인 그룹보다 사망률, 심혈관사건(Ann Intern Med 2013;159:758-69) 또는 제2형 당뇨병(Obesity Reviews 2014;15:504-515)과 같은 이상반응 발생률이 높게 나타났다.

▲ 대한비만학회 오상우 교수

근래에는 체중이나 BMI 같은 단순 수치에 의존하기보다 비만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고려의대 최경묵 교수(고대구로병원 내분비내과)는 "백인은 MHO 비율이 높지만 아시아인은 반대로 비만하지 않은데 대사증후군을 동반한 환자, 즉 마른 비만이 더 많고, 예후도 더 나쁘다"면서 "결국 비만도 개인맞춤형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BMI보다 체지방, 근육량 등의 체성분이 중요한 개념"이라고 말했다.

대한비만학회 오상우 연수위원회 이사(동국대일산병원 가정의학과)는 "비만을 체중만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전 세계적인 추세로, 허리둘레 측정이 강조되고 있다"며 "비만 자체보다는 대사증후군을 교정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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