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고령, 저체중군보다 비만군이 사망 위험 낮아

비만은 제2형 당뇨병, 고혈압, 관상동맥질환, 암 등 각종 대사이상질환의 원인일 뿐 아니라 골관절염, 허리통증, 천식, 수면무호흡증과 같은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1997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흡연과 더불어 21세기에 세계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공중보건학적 문제로 규정했고, 최근에는 국내외적으로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이 증가됨에 따라 비만세 도입이 이슈화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비만이 스트레스로부터 몸을 보호한다는 상식에 반하는 학설이 있으니 이른바 '비만 패러독스(obesity paradox)'. 이는 비만한 사람이 저체중 또는 정상 체중인 사람보다 오래 사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지난 5월에는 국내 공중파 방송의 한 교양프로그램을 통해 일반 대중에 소개되면서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이며 임상현장에서는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전문가 견해를 중심으로 정리해 봤다.

비만 역설 지지 연구 속속

비만 패러독스가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립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던 Reubin Andres 박사는 키로 보정한 체중값과 사망률의 관계를 그래프로 표현하면 U자형 곡선을 보이는데 곡선의 최하점, 즉 사망률이 가장 낮게 측정되는 체중이 연령별 차이를 보인다고 보고했다(Ann Intern Med 1985;103:1030-1033). 50세까지는 정상 체중 그룹에서 사망률이 가장 낮지만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해 과체중 그룹과 역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Andres 박사의 주장은 수많은 공중보건 전문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이후 심장질환, 고혈압, 신장질환 환자 등 다양한 질병군과 국가별 코호트를 대상으로 그를 지지하는 수많은 데이터가 쏟아져 나왔다.

2010년 일본에서는 40~79세의 성인 43000여 명을 12년간 추적한 코호트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J Epidemiol 2010;20:398-407). 40~64세에 해당하는 중년 남성에서는 정설대로 비만군의 사망 위험(HR 1.71; 95% CI, 1.17-2.50)이 저체중군(HR 1.26; 95% CI, 0.92-1.73)보다 높았지만, 65세 이상 고령 남성에서는 이와 반대로 저체중군(HR 1.49; 95% CI, 1.26-1.76)의 사망 위험도가 비만군(HR 1.25; 95% CI, 0.87-1.80)보다 증가했다. 또한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코호트 110만명을 대상으로 사망률과 체질량지수(BMI)의 관계를 평가한 연구에서는 BMI 22.6~27.5/㎡인 그룹의 사망률이 가장 낮았다(NEJM 2011;364:719-729).

나이들수록 건강체중 변화
- 노년층 표준체중 기준 바꿔야
- 고도비만·저체중은 사망률

뉴욕타임즈(2012 9 17일자)는 발병 당시 정상 체중이었던 당뇨병 환자의 사망 위험이 과체중 또는 비만이었던 사람에 비해 2배 이상 높다는 미국 노스웨스턴의대 Mercedes R. Carnethon 교수의 연구 결과(JAMA 2012;308:581-590)를 언급하며 "이미 심부전, 심장질환, 심장발작, 신질환 및 고혈압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에게서 비만 패러독스가 관찰됐고, 최근 당뇨병까지 목록에 추가됐다. 더 마른 것은 더 아픈 것을 의미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비만 패러독스 논란이 다시금 촉발된 것은 지난해 1 Katherine M. Flegal 박사팀(미국립보건통계센터)의 연구 결과가 공개되면서부터다. 연구팀에 따르면 체중과 사망률의 관계를 평가한 97개 연구(29만명)에 대해 메타분석을 시행한 결과 정상 체중군 대비 과체중군(25/≤BMI<30/) 1단계 비만군(30/≤BMI<35/)에서 사망 위험(HR)이 각각 6%(HR 0.94; 95% CI, 0.91-0.96) 5%(HR 0.95; 95% CI, 0.88-1.01)씩 감소했다(JAMA 2013;309:71-82).

이러한 결과는 Nature '비만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 됐고(Nature 2013;497:428-30), 주요 뉴스기관에서도 다뤄질 만큼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노년기 비만 접근 달라야

일각에서는 비만 패러독스가 주로 노인층에서 확인됐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노년기 비만에 대해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말 호주 디킨대학의 Jane E. Winter 교수팀은 65세 이상 노인 약 20만명을 대상으로 체질량지수(BMI)에 따른 사망률을 평가했는데, BMI 20.0~20.9/㎡인 그룹에서 사망 위험(HR) 19%, 21.0~21.9/㎡인 그룹에서 12% 증가한 데 반해 BMI>33.0/㎡인 그룹에서는 8% 증가에 그쳤다(Am J Clin Nutr 2014;99:875-890).        

2012년 개정된 대한비만학회의 비만치료 지침에서도 "나이가 들면 비만과 사망률의 관련성이 줄어들어, 50세 이후에는 고도비만에서만 연관성을 보이고, 65세가 넘어가면 관련성이 거의 사라진다"고 언급했다.

대한뇌졸중학회가 뇌졸중환자등록사업(KSR)에 포함된 34000여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BMI≤18.5/㎡인 그룹에서 사망 위험률이 36% 증가했고 이후 BMI가 증가할수록 감소되는 경향을 보였다(Neurology 2012;79:856-863).

연구에 참여한 서울의대 이승훈 교수(서울대병원 신경과)는 그에 대한 원인으로 "WHO의 비만 기준이 잘못 설정됐다"면서 "특히 장년, 노년층의 표준체중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체중은 변하기 때문에 현재의 기준으로는 젊을 때에 비해 조금 비만한 상태가 건강체중이고, 그 이하일 경우 영양실조에 해당하므로 뇌졸중과 같은 질병군에서 합병증 발생 및 사망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

이 교수는 "비만도가 상당히 높은 군에서는 사망률이 다시 증가하는 것으로 미뤄볼 때 저체중과 고체중은 모두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질병의 유무와 나이, 성별을 고려한 건강체중이 다시 설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Interview]

 '비만역설아닌 'BMI 역설...확대 해석은 금물비만은 분명히 치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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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의대 강재헌 교수(서울백병원 비만·체형관리센터)

 

인제의대 강재헌 교수(서울백병원 비만·체형관리센터)는 최근 비만 패러독스 논란을 두고 "엄밀히 말하면 비만이 아니라 BMI 패러독스가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를 지지하는 연구들에서는 모두 비만의 진단기준으로 허리둘레나 체지방량을 측정하지 않고 체질량지수(BMI) 값만 사용했기 때문에 척도 자체의 태생적 한계로 인한 착시현상에 불과하다는 것. BMI는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누는 것만으로 간단히 계산할 수 있어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대규모 데이터를 구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근육량과 체지방량을 구분하지 못해 비만도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보기 힘들다. 실제 덴마크에서 중년 남녀를 대상으로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PLoS One 2010;5:e13097), 사망률이 BMI와는 역상관관계를 보인 반면(HR 0.91; 95% CI 0.86-0.97) 허리둘레가 5㎝ 증가할 때마다 9%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HR 1.09; 95% CI 1.02-1.16).

일반인에서는 오차가 덜하겠지만 사망 직전이나 질환자에서는 다른 위험요인들이 강하게 작용하므로 정확도가 더욱 떨어진다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나이가 많거나 특정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에서는 비만이 영양상태나 케어 수준, 질병의 중증도 등을 나타내는 척도가 될 수도 있다"면서 "비만 치료 여부는 체중이나 BMI 값 자체보다는 복부비만도와 대사증후군 등 동반질환을 함께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인종이나 국가, 연령별 기준에 차이를 둬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현재로서는 권고사항에 변화를 줄 만큼 근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전향적 데이터가 더 축적돼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강 교수는 "표중체중을 다소 초과하더라도 건강상 문제가 없다면 무리하게 체중감량을 해야 한다는 데 의사로서 동의하진 않지만, 비만 패러독스라는 이슈 자체가 마치 비만 전체에 대해 과도한 의학적 권고가 나가고 있다는 식으로 확대해석되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비만한 상태를 방치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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