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상 없으면 갑상선검진 마라"…국내도 갑론을박

2000년대 들어 과잉진단의 개념이 확산되면서 의료계 전반에서 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다. 환자를 '잘'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료과정에서 수반되는 의료비용이나 부작용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USPSTF, 갑상선기능장애 권고안 업데이트

"무증상 성인에서 갑상선 검진의 이득과 위해를 평가할만한 근거가 불충분하다(근거수준 I)"

최근 미국에서 증상이 없고 임신상태가 아닌 성인에게는  갑상선 선별검사를 권고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다시 한 번 내려졌다.

▲USPSTF의 갑상선 선별검사 권고안

미국예방서비스태스크포스(USPSTF)가 Annals of Internal Medicine 3월 23일자 온라인판을 통해 공개한 이번 성명서는 지난해 10월 동일한 저널에 발표됐던 리뷰권고안은 물론, 11년 전 출판됐던 권고안과도 맥을 같이 한다. 1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근거는 부족하단 의미다.

태스크포스 팀장을 맡은 Michael L. LeFevre 교수(미주리대학교 컬럼비아캠퍼스)는 "무증상 성인들에서 갑상선 선별검사가 중요한 임상적 혜택으로 이어진다는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며 "이는 스크리닝으로 인한 위해 가능성을 제시하는 간접적인 근거"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위양성 확률이 높다는 것과 치명적이지 않음에도 질환자로 규정되는 데 따른 환자 개인의 심리적 부담을 들었다.

아울러 1차 선별검사로 혈청 갑상선자극호르몬(TSH) 검사를 제시하면서 TSH 수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날 경우 확진을 위해 3~5개월 간격으로 TSH와 티록신(T4) 수치를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국내 '갑상선암검진권고안' 두고 대치상황 여전 

미국에서 나온 권고안이 결코 남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최근 국내 상황과 절묘하게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8월에 나온 갑상선암검진권고안(초안)

지난해 국립암센터와 국가암검진권고안 제정위원회는 "무증상 성인에서 초음파를 이용한 갑상선암 선별검사는 권고하거나 반대할 만한 의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므로 일상적으로 권고하지는 않는다(I)"는 내용의 권고안(초안)을 냈지만 관련 학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다.

갑상선암 유병률이 늘어난 데는 초음파검사 증가도 일부 책임이 있겠지만 다른 요인도 분명 존재하고, 근거부족이 '스크리닝을 하지 말라'로 이어지는 것은 억지논리라는 주장이다.

올해 3월 초 대한갑상선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마련됐던 국가검진권고안 리뷰 세션에서도 갑상선암 검진권고안 제정위원회와 임상의사들 간 좁혀지지 않는 입장차이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을 뿐.

초안이 발표된지 7개월이 지나도록 최종안이 나오지 못하는 데는 임상현장과의 간극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 아니겠냐는 분석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한갑상선학회 정재훈 이사장(삼성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은 "대부분의 갑상선암은 증상이 없고, 종양 크기가 4~5㎝ 이상으로 커져 주위 장기를 압박한 후에야 증상이 나타난다"며 "현행 권고안을 따르게 되면 초음파로 조기진단이 가능한 환자들조차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 박해린 총무이사(강남차병원 외과)도 "과잉검진이라지만 현재로서도 초음파 검진을 통해 발견되는 갑상선암 환자의 30%가 3기 이상에 해당한다"며 "증상이 나타난 다음에는 완치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합병증 발생 위험이 대폭 증가해 그로 인한 삶의 질 저하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과잉진단 논란 확산…대안 있나?

과잉진단의 개념은 2010년 미국 다트머트의대 길버트 웰치(Gilbert Welch) 교수의 논문(J Natl Cancer Inst 2010;102:605-13)을 계기로 주목을 받았고, 이후 BMJ나 JAMA 등 주요 학술지에서 '과잉의료(Too Much Medicine)', '적을수록 좋다(Less is more)' 등의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미국내과전문의인증기구재단(ABIM Foundation)의 '현명한 선택(Choosing Wisely)' 캠페인도 그 중 하나다. 

웰치 교수는 "과잉진단이란 증상발현 또는 사망과 같이 환자의 임상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비정상'을 진단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일종의 신종 감염병"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10~20년 새 신규 질환자수가 급격히 증가한 유방암, 전립선암, 신장암 등도 과잉진단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 전립선암특이항원(PSA)이나 유방촬영술(mammography)의 효용성 논란도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고려의대 안형식 교수

고려의대 안형식 교수(예방의학교실)는 "저골밀도를 골다공증으로, 경계성 고혈당을 당뇨병으로 진단하는 등 위험요인이 질병에 포함되거나 판정기준이 낮아짐에 따라 질병의 정의가 확장된 데서 과잉진단의 증가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부분의 질환이 연속선상에 위치하기 때문에 과진단 여부를 검증하기란 쉽지 않다는 설명도 더했다. 단, 모든 병에 대해 증상이 나타난 후에 검사 또는 치료를 받으라는 것은 아니라면서 "질환과 환자 개인의 특성을 따져 위험도를 정량화 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고려의대 신상원 교수(고대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는 "과잉진단은 지양해야겠지만 임상의 입장에서는 환자의 진단과 치료시기를 앞당기는 것도 중요하다"며 "과잉진단의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마련을 위해 정부 정책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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