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Choosing Wisely 캠페인 도입 및 확산 방안 마련 연구용역 공고
전문가들, '필요성과 중요성'에는 공감…'가능성과 지속성'에는 회의적
의학계 설득부터 인식 변화까지 장시간 소요…임상의학 체질개선 선결 주장도

[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미국내과의사회(ABIM) 재단을 중심으로 불필요한 의료 행위 및 치료를 줄여 과잉진단을 방지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Choosing Wisely(현명한 선택)' 캠페인을 국내에 정착시키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미국은 환자들이 선택하는 의료 행위 및 치료가 △증거 기반이고 △이전에 시행된 다른 의료 행위와 겹치지 않고 △해롭지 않고 △필수적이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내세워 다양한 임상 과에서 현명한 선택 리스트를 개발했다.

이미지출처: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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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맹장이 의심되면 어린이들은 CT를 찍지 마라', '여성 난소의 물혹 정도의 흔한 증상 때문에 추적검사 용도로 CT 및 MRI를 권하지 마라', '항생제 오용을 지양해라' 등이다.

즉, 의사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환자를 만났을 때 특별한 진단·처치·진료 등을 '행하라'는 식의 권유가 아닌 '행하지 마라'는 식의 논조이다.

현재 미국 외에도 캐나다,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에 확산한 이 캠페인은 과거 국내에서도 일부 의료계 관계자들을 통해 한두 차례 언급됐으나 관심 부족 등의 이유로 이슈화되지 못한 바 있다.
 

건보공단, 현명한 선택 관련 연구용역 공고
주도할 의도 없고 논의의 장 마련에 의의

이런 상황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공급자 주도 가입자의 합리적 의료이용 지원 방안'이란 제목의 연구용역 제안요청서를 공고했다.

요청서에 따르면 이번 연구의 목적은 공급자 측면에서 유도되는 비합리적 의료제공 실태 및 과잉진단 원인을 분석해 대응 방안을 마련, 합리적인 의료제공 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한국형 '현명한 선택' 캠페인 도입을 위해 첫발을 떼자는 것이다.

미국내과의사회(ABIM) 재단 Choosing Wisely 홈페이지 로고

건보공단은 이번 연구로 진료과목별, 질병군별로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목록에 대한 우선순위가 도출되고 문헌 고찰과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우선 참여가 가능한 학회 중심으로 리스트가 개발되길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 의사들 스스로가 적정진료에 앞장서자는 취지의 자율적 캠페인인 현명한 선택을 이번 연구용역을 계기로 보건당국이 주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와 관련 건보공단은 연구자들이 불필요한 진단·처치·치료 목록(해외사례 포함)을 정리하는 작업에 도움을 주려는 것뿐이지 자체적인 로드맵을 구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실히 밝혔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이번 연구에 있어서 건보공단의 의도를 반영할 생각은 전혀 없다"라며 "연구자가 결정되면 함께 토론하는 장을 만들고 의학계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만들려고 하는데 이때도 개입하지 않을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형 현명한 선택에 대한 논의를 건보공단이 시작한다는 정도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라며 "의료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 정리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필요성과 중요성은 '인정', 가능성과 지속성은 '글쎄'

전문가들은 한국형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고 그 중요성은 앞으로 더 두드러질 것임에는 일정 부분 동의했다.

하지만 제대로 정착하려면 긴 시간이 소요되고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산적해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도 공존하는 상황이다.

이는 2015년부터 근거기반 영상 검사에 대한 지침 마련에 적극적인 대한영상의학회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다. 

영상의학회 정승은 수련이사(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는 "의료자원을 적절하게 이용하고 국민 보건향상에 도움을 주자는 목적에서 출발한 현명한 선택 캠페인에 많은 의학계 관계자가 참여해 발전시킬 필요성은 있다"며 "하지만 아직 많은 학회가 이해를 못 하거나 진료지침과 헷갈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외국의 리스트 중 일부는 국내 현실과 맞지 않는 면이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에 접목하는 시도를 지속해야 한다는 게 정 이사의 주장이다.

그는 "현명한 선택 캠페인과 근거기반 의학 등에 대한 이해는 서양을 넘어 동아시아 국가 특히, 일본과 대만에서 최근 관심을 보이는 소규모 그룹이 있는데 젊은 의사들이 많이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외국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에 접목하는 시도와 학회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진출처: 포토파크닷컴
사진출처: 포토파크닷컴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안덕선 소장도 '좋은 주제임은 틀림없다'며 현명한 선택 캠페인의 의의에 공감했다.

하지만 외국과 국내는 의료 환경의 구조와 문화가 달라 다른 의료계 현안을 포함한 장기적인 종합계획 없이는 자리 잡기 힘들다고 평했다.

안덕선 소장은 "캐나다 같은 경우에는 진찰료 산정이 환자와 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진료를 하라는 게 기본 구조"라며 "우리나라의 의료 문화는 사람(의사)이 하는 행동에 대한 보상보다는 기계의 행동에 대한 보상이 더 높아 이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현명한 선택은 힘들다"고 진단했다.

즉, 임상의학이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검사의학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안 소장은 "현명한 선택이 가능해지려면 외국과는 다른 구조와 문화를 변경해야 한다"라며 "의학계를 설득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공공의료, 원격의료, 진찰료, 임상의학 체질 개선 등 의료계의 전체적인 사안을 다루는 장기적 종합계획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형 현명한 선택의 확산 및 정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연구를 공고한 건보공단 등에서도 인식하고 있는 바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공급자 각도에서 연구가 진행되겠지만 구체적인 항목과 내용이 올해 안에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우리나라 현실을 반영해서 정리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정승은 이사도 "복잡한 주제이기 때문에 의료계 내에서 합의하면서 장기전으로 가야 할 듯하다"며 "기반이 많지 않아 유지가 쉽지 않겠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연구하는 관계자들도 많은 만큼 학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 국민 보건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림원 연구용역에 관심…"건보공단 관제로는 가면 안 된다" 조언

한편, 건보공단의 이번 연구용역에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림원은 지난 2017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과 공동으로 학회 및 협회, 시민단체, 언론계, 유관기관 등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한 '적정진료를 위한 Choosing Wisely(현명한 선택) 리스트 개발·검토 원탁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이후 한림원은 현명한 선택과 관련해 산하 기구인 정책개발위원회를 통한 자체적인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근거중심의학 연구를 지속했다.

한림원 박병주 부회장(서울의대 예방의학)은 "적정진료를 기반으로 한 현명한 선택이 자발적으로 시행되길 무작정 기다릴 순 없다"며 "의학계 전체를 동시에 끌고 갈 수는 없지만, 열심히 하는 과부터 시작해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 건보공단 관제로 해당 캠페인이 진행되거나 운영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조언한 한림원이다.

박 부회장은 "현명한 선택은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건보공단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분위기만 조성해야지 앞으로 나서면 안 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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