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동안 마음을 이어온 예손병원 김진호 원장 & 백구현 명예원장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와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인 지음(知音).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이르는 말이다. 

병원에도 백아와 종자기처럼 서로의 마음을 읽으며, 힘든 삶의 고비에서 등불로 길을 밝혀주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화상, 수부이식, 이식외과 등 힘들고 고된 진료과에서 이들의 존재는 더욱 특별하다.

본지는 창간 22주년을 맞아 환자에게 꼭 필요한 분야에서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로서 지음의 관계를 맺고 있는 의사들을 만났다. 

서울대병원 서경석 교수(간담췌외과)와 이남준 교수(간담췌외과), 예손병원 백구현 명예원장(수부센터)과 김진호 원장(수부센터), 베스티안서울병원 윤천재 원장(화상외과)과 연세돋움의원 이종호 원장(화상외과) 등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지난해 서울대병원에서 정년 퇴임한 백구현 교수(정형외과). 백 교수는 서울대병원 근무 당시 SCI급 논문 234편, 국내 학술지 147편 등 총 381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또 수부외과 분야 세계 3대 잡지인 ‘Journal of Hand Surgery Asian-Pacific Volume’에서 7년 동안 편집장을 했을 정도로 이 분야 최고 전문가다. 

그런 백 교수가 퇴임 후 선택한 곳은 경기도 부천에 있는 예손병원이다. 예손병원은 보건복지부가 인정한 관절·수지접합 전문병원으로, 강소병원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물론 예손병원이 강소병원이라 백 교수가 그곳에 명예원장으로 터를 잡은 것은 아니다. 특별하게 아끼는 김진호 원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 명예원장은 1957년생, 김 원장은 1969년생이다. 띠동갑인 두 사람이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김 원장이 서울대병원 전공의 1년차였던 1995년이었다. 그 이후 김 원장이 전공의 4년차를 마치고 수부 전임의를 지원했던 1999년 다시 만났다.

김 원장은 병원 내에서 까칠한 성격으로 알려진 백 명예원장이 다정하게 품을 내어줬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김 원장은 전임의가 끝난 후 상계백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했고, 이후 2005년 1월 경기도 부천시에 예손정형외과를 개원한 후 지금의 예손병원을 만들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김진호 원장(이하 김): 서울대병원 정형외과에 정문상 교수님이 계실 때 전임의 트레이닝을 받았다. 정말 엄격하신 분이었다. 당시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은 환자의 부목 각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2달 동안 수술장 출입 금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그때의 경험 때문에 지금도 수술 후 각도를 신경 쓴다). 

그 일을 비롯해 몇몇 일이 겹치면서 나는 수부 전임의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해 백 선생님 방문을 열고 들어가 다짜고짜 “선생님 저 술 사주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술도 사주고, 트레이닝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 삶의 경험 등을 말해주면서 토닥거려줬다. 그런 소소한 것들이 내겐 큰 힘이 됐다. 그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 선생님을 믿고 따르고 있다. 

예손병원 백구현 명예원장
예손병원 백구현 명예원장

백구현 명예원장(이하 백): 12살이나 많은 교수에게 스스럼 없이 찾아와 술을 사달라고 하는 제자가 몇 명이나 될까! 나는 김 원장의 그런 행동을 성격이 소탈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김 원장은 나를 자주 찾아왔다. 언젠가는 다른 교수 출신 친구랑 수부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개원하겠다고 왔었다.

나는 “동업하면 안 된다, 도박하면 안 된다”고 늘 말씀하시던 내 은사님의 얘기를 들려줬다. 

물론 내 얘기를 듣지 않고 공동 개원을 했고, 그 이후 같이 개원한 친구와 의견이 맞지 않아 몇 번 더 나에게 왔었다.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내 생각을 얘기해줬다. 그때 김 원장이 내가 정년퇴임을 하면 자기 병원으로 오라고 얘기를 했고, 그 얘기가 현실로 이뤄진 게 지난해였다. 

 

수부는 우리 운명인가? 

: 사실 나는 척추를 전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당시 군대를 갔다 왔더니 TO가 수부 밖에 없었다(웃음). 자의 반 타의 반 수부를 선택했지만 적응하려고 노력하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당시 캠벨 정형외과학(Campbell’s Operative Orthopaedics)이 4000페이지 정도 됐는데, 이 중 수부 관련 분량이 2권일 정도로 공부할 게 많은 진료과였다. 

예손병원 김진호 원장 
예손병원 김진호 원장 

: 나도 처음부터 수부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흉부외과를 할까 고민 중이었다.

서울의대를 졸업한 후 선배가 운영하는 대구의 정형외과에서 잠시 아르바이트했었다. 수부 절단이나 외상 환자를 진료했는데, 환자는 많았지만 의사가 부족해 선배가 늘 밤을 새워 수술하는 등 분주했다. 

의사가 바쁘니까 환자들도 치료나 수술을 받으려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환자들이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도 화를 내지 않고, 치료해 줘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뺏겨 수부를 선택했다. 

대구에 내려가지 않았다면 수부를 전공하겠다는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그때 사람의 인연은 따로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나에게 백구현 선생님이란 존재는?
예손병원 김진호 원장과 백구현 명예원장(사진 오른쪽)
예손병원 김진호 원장과 백구현 명예원장(사진 오른쪽)

: 2001년 우리 집 둘째가 태어났을 때 백 선생님이 직접 오신 적이 있다. 그때 장인어른이 백 선생님 외모를 극찬하신 일이 있다(웃음). 

백 선생님은 제약회사나 의료기기 회사 등과의 관계 설정, 수부에 대한 지식, 수부 전임의들의 네트워크 구성 요령 등을 알려줬다. 개원할 때나 갈등이 생겼을 때 등 살아가면서 큰 결정을 해야 할 때 길잡이 역할을 해줬다. 불쑥 “술 한잔 사주세요~”라고 해도 언제나 응해주는 정말 고마운 존재다. 

백 선생님이 초심을 잃지 않는 점을 배우고 싶다. 백 선생님은 술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수술 전날은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 원칙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고 한다. 또 사람들이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선천성 수족부 기형을 연구해 이 분야 세계적 석학으로 성장한 그 에너지도 닮고 싶다. 

: 술을 좋아하지만 수술이 잡힌 전날 절대 음주하지 않는 건 “수술은 환자의 몸속에 서명을 남기는 것이다”란 생각이 있어서다. 환자의 몸에 서명을 잘못 남기면 안 되지 않겠나! 최고의 몸 상태에서 수술하기 위해 술이나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김 원장의 장점을 좀 얘기하자면, 전임의 때도 지금도 사람들을 소탈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또 어렵고 힘든 사람을 잘 도와준다. 나도 어려웠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흘려들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귀담아듣고 도와주곤 했다. 

선배 의사로서 봤을 때 김 원장은 자기 절제와 통제가 뛰어난 원칙주의자이기도 하다. 경영자로서는 저돌적이고 강한 추진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호불호가 강한 것은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다(미소). 

: 나는 적성이란 말을 싫어한다. 인생은 그냥 적응하면서 사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나름대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미국의 바이든도, 러시아의 푸틴도 매일 후회할 것이다(웃음).      

: 외상은 주로 밤에 발생한다. 그래서 우리 병원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의사가 24시간 당직을 선다. 공휴일을 포함해 매일 22시까지 정형외과 응급환자를 받는다. 물론 22시 이후라도 절단 응급환자가 오면 수부외과 세부 전문의가 시간과 상관없이 즉시 수술한다. 

그런데 밤늦게 찾은 수부 절단 응급환자를 몇 시간 동안 수술했는데, 이후 손가락의 길이가 약간 짧아졌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정말 좌절한다. 하지만 수술을 끝낸 환자가 고맙다고 건네는 인사 한마디는 힘듦을 잊게 만든다. 

 

예손병원에서 다시 만난 인연

예손병원 백구현 명예원장과 김진호 원장(사진 오른쪽)
예손병원 백구현 명예원장과 김진호 원장(사진 오른쪽)

: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큰일을 결정할 때 백 선생님은 가장 많이 영향을 주신 분이다. 처음 예손병원을 하겠다고 찾아갔을 때부터 시작해 서울대병원 정년을 맞이하면 우리 병원에 와 달라고 부탁했다.

백 선생님과의 약속도 있었지만, 수십 년 동안 대학병원 수부 질환 진료 영역에서 쌓아온 경험과 의술을 더 많은 사람이 누렸으면 했다. 또 병원을 경영하다 보면 게을러질 때가 있다. 그런데 백 선생님이 오신 후에 아침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다. 

: 나는 병원 내에서 갈등 조정자 역할을 한다. 환자에 대한 의견이 각기 다를 때, 그리고 결론을 내야 할 때, 경험이 더 많은 내가 조율한다. 

 

예손병원이 꿈꾸는 내일은?

: 개원 이후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은 응급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 병원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이 원칙을 계속 지키겠다. 또 진료과가 필요하다고 개설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실력 있는 의료진이 확보되면 그때 진료과를 개설하겠다. 

비록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환자에게 필요하다면 그 길을 갈 것이다. 최근 도입한 다인용 고압산소챔버 ‘IBEX Omega S8’ 설치도 같은 맥락이다.

수부 손상 환자에게 2~3기압의 압력이 가해진 챔버 안에서 100% 고농도 산소를 투여하면 다량의 산소가 혈액 속에 녹아 몸 곳곳에 전달되며 손상된 조직을 치료하거나 재생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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