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있으면서 서로에게 물든 베스티안재단 베스티안의료원 윤천재 원장(화상외과), 연세돋음의원 이종호 원장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와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인 지음(知音).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이르는 말이다. 

병원에도 백아와 종자기처럼 서로의 마음을 읽으며, 힘든 삶의 고비에서 등불로 길을 밝혀주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화상, 수부이식, 이식외과 등 힘들고 고된 진료과에서 이들의 존재는 더욱 특별하다.

본지는 창간 22주년을 맞아 환자에게 꼭 필요한 분야에서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로서 지음의 관계를 맺고 있는 의사들을 만났다. 

서울대병원 서경석 교수(간담췌외과)와 이남준 교수(간담췌외과), 예손병원 백구현 명예원장(수부센터)과 김진호 원장(수부센터), 베스티안재단 베스티안의료원 윤천재 원장(화상외과)과 연세돋음의원 이종호 원장(화상외과) 등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 편집자 주 -

의사들을 취재하다 보면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이 떠난 숲에 남아 그곳을 꿋꿋이 지키는 소나무 같은 사람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면서 화상을 입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크고 작은 화상 환자들이 발생한다. 

그런데도 이들을 치료하는 곳은 베스티안병원,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대구의 푸른병원 등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치료하는 병원이 많지 않다 보니 의료진은 고되고 힘든 날들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수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핑크빛 내일이 약속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화상 환자 옆을 지키는 의사들이 존재한다. 단지 의사라는 그 이유만으로 숲을 지키고 있다. 서울 성동구에 있는 베스티안재단 베스티안의료원 윤천재 원장(화상외과)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에 위치한 연세돋음의원 이종호 원장(응급의학과, 화상외과). 이들이 사람들이 떠난 숲을 지키는 소나무 같은 존재들이다. 

정(情)이 들어버렸다

 

베스티안서울병원 윤천재 원장
베스티안서울병원 윤천재 원장

윤 원장과 이 원장은 얼마 전까지 베스티안 서울병원에서 함께 근무했다.

그런데 이 원장이 경기도 성남시 위례에 화상전문클리닉인 연세돋움의원을 개원하면서 이별했다.

이 원장이 개원하면서 병원을 떠났지만 두 사람은 멀어질 수 있는 관계가 아닌 듯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두 사람 사이에는 신뢰와 믿음이 켜켜이 쌓여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87학번인 윤 원장이 군의관을 끝내고 세브란스병원에 왔을 때다. 당시 93학번인 이 원장이 레지던트 3년차 수련을 받고 있었던 것. 그 이후 윤 원장은 베스티안병원(당시 대치동)에서, 이 원장은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하면서 환자를 통해 소통하다 베스티안병원에서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약 20년을 같이 근무했다. 윤 원장은 “오래 같이 지내다 보니 그냥 정이 들어버렸다”고 두 사람의 사이를 퉁쳤지만, 그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내가 화상 진료를 선택한 이유는?

 

윤천재 원장(이하 윤): 나는 응급의학과 전공이지만 평소 중환자의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응급실에서 화상 환자를 많이 봤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화상 진료를 하게 됐다. ‘당시 어떻게 해야 화상 환자를 낫게 할 수 있을까, 더 좋은 치료법은 없을까’ 등 고민을 많이 했다.

20년 전에는 화상 치료 재료나 약물, 기술 등이 형편없었다. 그래서 직접 공부도 하고, 논문도 찾고 열심히 했다.  

이종호 원장(이하 이):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응급의학과를 전공했는데, 응급실에는 생각보다 많은 외상 환자들이 왔었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도 많았다.

그래서 당시 베스티안병원에 있는 윤 원장님께 전화해 물어보기도 하고, 환자를 베스티안병원으로 전원하기도 했다. 그때 진짜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화상 진료를 같이하게 됐다. 

후회하지 않아

 

베스티안서울병원 윤천재 원장 
베스티안서울병원 윤천재 원장 

: 사람들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본다. 물론 힘들다! 집에도 못 가고, 퇴근했다 환자가 안 좋으면 다시 병원으로 뛰어오는 건 일상이다. 하지만, 환자가 안 좋아지는 게 제일 힘들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화상 진료하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 업보인 것 같다(웃음).   

중증 화상 환자를 살리지 못하고 놓치는(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 환자들이 나에게 메시지를 주고 가는 것 같다. 내가 신경써야 했는데 못 한 것은 무엇인지, 잘못된 것은 어떤 것인지 등을 마치 나에게 얘기하고 돌아가시는 것 같다. 

: 윤 원장님이랑 같은 생각이다. 후회는 우리랑 거리가 멀다. 우리는 그냥 한다. 윤 원장님이 얘기했듯이 누군가 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한다.

연세돋움의원 이종호 원장 
연세돋움의원 이종호 원장 

베스티안병원 김경식 이사장이 “베스티안병원과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이 화상 환자를 진료하지 않으면 이들은 갈 곳이 없다. 우리에게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늘 강조하는데,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화상 치료를 하는 의사들끼리의 동료애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계속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이다. 베스티안병원 의사가 힘들면 한강성심병원 동료가 도와주고, 한강성심병원 동료가 어려우면 우리가 그들을 백업한다.

꼼꼼한 후배 이종호 원장

 

: 나는 거친 데 반해 이 원장은 아주 섬세하다. 내가 빼먹은 것을 이 원장이 말해주거나, 커버해 주는 일이 많다. 또 이 원장은 동료들도 잘 챙기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개원해 나로서는 정말 아쉽다(웃음). 

윤 원장님은 경험과 지식을 갖춘 열정 부자

 

: 원장님은 화상 환자 치료 경험과 지식이 누구보다 많은 분이다. 그것을 토대로 환자에게 어떤 처치를 해야 하는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계신 분이다. 또 현장의 지식뿐만 아니라 새로운 의학을 배우는 것에도 부지런하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화상 치료법이나 최신 기술, 치료 재료 등이 나오면 바로 환자에게 적용하기 위해 애를 쓴다. ‘화상의학(TOTAL BURN CARE)’도 윤 원장님이 얘기해서 우리 팀이 리뷰했고, 사체피부이식도 윤 원장님이 제안하고 시도해 일반화됐다.

정말 열정 부자다. 경영자로서도 배울 점이 많다. 후배들과의 약속을 꼭 지키고, 병원 내에서 일을 처리할 때 공정하게 처리하는 점도 믿고 따르게 하는 이유다.  

이럴 때 우리도 정말 힘들다

 

: 화상 환자가 치료받고 좋아지면 나도 좋다. 그것이 만족감으로 이어져 수십 년을 하고 있다. 사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내가 한다(미소). 간혹 환자가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 때, 내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굉장히 힘들다. 혹시 내가 뭔가를 잘못해 환자가 나빠졌나 하고 죄책감도 많이 느꼈다. 

환자 생명에 관해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내가 왜 환자의 생사여탈권을 가져야 하나’라고 심적으로 힘들 때가 많다. 특히 결과가 안 좋을 때 더 그렇다. 간혹 환자가 안 좋아지면 소송에도 휘말리는데 그럴 때는 정말 힘들다. 보호자와 오랫동안 법적으로 다투다 보면 환자를 치료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 

: 나도 환자 상태가 나빠질 때 제일 힘들다. 환자를 살릴 방법은 없는데, 보호자에게 똑바로 얘기할 수 없다. 그런데 환자 상태가 계속 악화할 때 자괴감을 느낀다. ‘내가 뭘 잘못한 것은 아닐까, 빠뜨린 것은 없나’ 등 자책하게 된다. 

정부에 하고 싶은 말

 

 베스티안 서울병원 윤천재 원장과 성남시 연세돋음의원 이종호 원장(사진 왼쪽)
베스티안 서울병원 윤천재 원장과 성남시 연세돋음의원 이종호 원장(사진 왼쪽)

: 화상 환자 진료에 대한 정부 지원은 많이 증가했다. 하지만 새로운 치료법이나 치료제 등에 대한 시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삭감의 칼을 들이댄다. 그래도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병원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시도한다. 중증 화상 환자에겐 현장의 상황을 인정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환자가 바라는 것과 정부 정책이 달라 현장에서 힘들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화상을 입은 피부가 모두 치료됐을 때 피부 색깔이 달라진다. 환자는 색소가 침착된 흉터를 보험급여로 치료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환자는 화상을 입은 상황에서 흉터 치료에 급여가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의사 입장에서 설명하기 참 어렵다. 사체피부이식은 모두 급여 적용을 받는다. 배양세포이식은 산재 환자 중 요건에 맞으면 급여가 인정되지만, 일반 환자는 비급여다. 정부의 급여 기준이 불명확할 때가 있다.

나의 소박한 희망은 이것

 

: 나는 은퇴할 때 많은 후배한테 박수받으면서 떠나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나의 경험을 모두 알려주고 은퇴하고 싶은데 후배들이 자꾸 줄어 걱정이 많다. 후배가 약 10년에 한 명씩 들어온다. 최근 8년 만에 화상 의사 한 명을 채용했다. 솔직히 대(代)가 끊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할 때가 많다. 

: 경기도 위례 신도시에서 화상전문클리닉인 연세돋음의원을 열었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화상을 제대로 치료하는 의원이 지역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해 개원했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외상 치료도 할 수 있다고 알려져 환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화상 부위가 작지만 꼭 수술해야 할 때는 마취를 할 수 있는 베스티안병원 등과 같은 전문병원으로 연결하는 중간 다리 역할도 할 예정이다. 베스티안병원도 외래에서 치료만 받아야 하는 환자를 우리 의원으로 보낼 수 있도록 이송 시스템을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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