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간이식 수술을 배우러 온 제자를 붙잡은 스승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서경석 교수 & 이남준 교수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인 지음(知音).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이르는 말이다. 
병원에도 백아와 종자기처럼 서로의 마음을 읽으며, 힘든 삶의 고비에서 등불로 길을 밝혀주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화상, 수부이식, 이식외과 등 힘들고 고된 진료과에서 이들의 존재는 더욱 특별하다.

본지는 창간 22주년을 맞아 환자에게 꼭 필요한 분야에서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로서 지음의 관계를 맺고 있는 의사들을 만났다. 

서울대병원 서경석 교수(간담췌외과)와 이남준 교수(간담췌외과), 예손병원 백구현 명예원장(수부센터)과 김진호 원장(수부센터), 베스티안서울병원 윤천재 원장(화상외과)과 연세돋움의원 이종호 원장(화상외과)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1. 서울대병원 서경석 교수, 이남준 교수 

2. 예손병원 백구현 명예원장,  김진호 원장 

3. 베스티안서울병원 윤천재 원장, 연세돋음의원 이종호 원장 

서울대병원 서경석 교수(사진 오른쪽)는 우리나라 간이식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최초 분할 간이식 성공은 물론 보조 간이식 성공, 심장사 간이식 등이 모두 서 교수 손끝에서 이뤄졌다.

특히 2021년 4월 세계 최초로 수혜자의 배를 열지 않고 로봇과 복강경만으로 간이식에 성공해 세계적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또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한국간담췌외과학회 이사장, 세계생체간이식연구회 회장 등 학문적으로도 모두에게 인정받은 간이식 전문가다.

그런 서 교수의 뒤를 잇고 있는 사람이 이남준 교수(사진 왼쪽)다. 이 교수는 생후 60일 된 영아의 생체간이식 성공, 국내 최초 심장사 간이식 성공 등 굵직굵직한 성적표를 남기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1960년생인 서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한 후 줄곧 서울대병원에서 진료와 연구를 해왔다. 1971년생인 이 교수는 이화의대를 졸업하고 이대병원에서 전임의 1년을 보냈다.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은 이 교수가 간이식을 배우기 위해 서 교수를 찾아오면서 시작됐다. 

우리는 이렇게 만났다

이남준 교수(이하 이) : 이대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쳐 2001년 외과전문의를 취득했다. 간이식을 배우고 싶었는데, 당시 이대병원에는 간이식을 배울 수 있는 수련 프로그램이 없었다. 1990년대 말 서울대병원과 서울 아산병원 등 몇 개 병원을 제외하고는 간이식을 하는 병원이 없었을 때였다. 

당시 서 교수님 친구분이 저에게 “서울대병원 서경석 교수에게 가서 간이식을 배우고 다시 이대병원에 복귀하는 거 어때”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전임의 1년차일 때 서울대병원에 오게 됐다. 3개월 정도 배우고 다시 이대병원으로 가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있게 됐다(웃음).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서경석 교수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서경석 교수

서경석 교수(이하 서)  : 지금이야 간이식을 하는 이광웅 교수도 있고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당시에는 우리 병원도 인력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 교수가 간이식을 배우러 왔다. 3개월 동안 수련받고 돌아간다고 했지만, 결국 2년 동안 간이식을 함께 했다. 

2년 정도 됐을 때 이대병원으로 복귀하려고 하길래  내가 “꽉” 잡았다. 이 교수는 외과의사로서 수술도 잘하고, 뛰어나고, 성실하고…. 마음에 쏙 들었다. 게다가 수술할 때 나와 손발이 아주 잘 맞아 이대병원으로 돌아가게 할 수 없었다. 당시 의대에 교수 TO도 있어 내가 강력하게 잡았다.

: 당시 사부님인 서 교수님과 같이 수술하고 공부하는 게 즐거웠다. 특히 이대병원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지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환자의 간 CT를 찍은 후 해부학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다른 사람들과 논의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에겐 너무 매력적인 외과, 선택할 수밖에 

: 아버지가 내과의사라 나도 내과를 선택하려고 했다. 그런데 인턴 수련을 받으면서 외과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응급수술을 한 환자가 완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달라지는 모습을 봤을 때, 통증에 시달리던 환자가 수술 후 회복해 퇴원하면서 고맙다고 말할 때 의사로서 기쁨을 느꼈다. 

결정적인 것은 내 손으로 직접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밤 새워 응급수술을 하면서도 활기찼던 기억이 있다. 특히 간이식은 사망할 수 있는 사람을 완전히 달라지게 하니까 더 좋았던 것 같다. 사실 외과의사들은 그런 면을 조금씩 다 갖고 있다.

: 나도 처음에는 심장내과를 선택하려고 했다. 그런데 병원에 가보니 “진짜 의사는 외과의사구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서 교수님처럼 외과의 매력을 뿌리칠 수 없었다. 내과 환자들은 아픈 상태를 유지하거나 조금씩 개선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외과 환자들은 수술 후 드라마틱하게 상태가 좋아진다. 이 모습을 보면서 외과의사로 살기로 결심했다. 

: 외과의사는 힘들게 수술하고, 밤새고, 그런 상태로 또 낮에 진료를 봐야 하니 힘들다. 그런데 환자들이 좋아지는 걸 보는 것이 좋고, 그런 걸 즐기는 스타일이다. 

: 서 교수님은 외과가 전성기일 때 외과를 선택하셨고, 나는 외과 인기가 조금 떨어졌을 때 선택했다. 그래서 고민도 많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소심하고, 내가 외과에 적절할까 하는 걱정도 많이 했다. 어려운 일이지만 좋아하는 일이니까 하는 측면도 있다. 복잡하다(미소). 

“나의 애제자 이남준 교수는 이런 사람이다”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서경석, 이남준 교수(사진 오른쪽)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서경석, 이남준 교수(사진 오른쪽)

: 내가 아끼는 제자인 이 교수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우선 외과의사의 첫번째 자질인 수술 실력이 뛰어나다. 수술을 잘하기 위해 진료에 집중한다. 또 채식주의자라고 하는데 체력도 튼튼하다. 게다가 나는 한 번도 이 교수가 불만을 얘기하거나 누구 탓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나의 사부 서경석 교수” 

: 외과의사 중 수술을 잘하는 사람은 학문적으로 약간 부족하고, 아카데믹하면 수술 실력이 조금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서 교수님은 수술 실력도 뛰어나고 이론적 근거도 아주 탄탄하다. 여기에는 우리 병원 간이식팀의 분위기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하고,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답을 찾아간다. 서울대병원 간이식팀은 이미 세계 최고라 이 과정 자체가 학습이 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서 교수님에게 배우고 싶은 점은 다급한 상황에서 부리는 “여유”다. 엄청나게 급한 상태에서도 본질을 파악할 때까지 잠깐 기다린다. 그리고 결정하면 그 이후에는 빠르게 진행한다. 

또 서 교수님 주변에는 동료나 후배 등이 몰려드는데, 이는 누구나 얘기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마음과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 덕분인 것 같다. 이 또한 배우고 싶은 점이다. 

서 교수가 이 교수에게 인생을 즐기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

: 이 교수에게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인생을 즐기고, 아니면 가정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뭐 이런 종류의 말을 하면 좋은데 나는 그럴 수 없다(웃음). 우리나라 의사들이 전 세계 생체 간이식을 선도하고 있다.

그래서 이 교수는 이 분야 최고 권위자답게 세계 학술대회에서 강의도 하고, 논문도 발표하고, 학회 이사장도 하는 등 해야 할 역할이 많다. 특히 서울대병원에서 간이식 리더로서 역할도 해야 하고, 세계 소아간이식 분야에서도 할 일이 많다. 

외과의사인 우리는 아직도 꿈꾼다

: 나는 아직 외과의사이고, 외과의사로서 시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수술법을 꿈꾸고 있다. 10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을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수술법이나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이남준 교수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이남준 교수

: 나는 간이식을 하는 의사지만, 간이식을 안 하고 사는 세상을 꿈꾼다. 현재 인공 간 등을 개발하고 있지만 너무 먼 나라 얘기다. 간이 너무 나빠지기 전에 간에 무엇이 부족한가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이를 보충해 주는 약물을 먹을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 면역억제제를 사용하지 않고 환자가 좋아질 수 있는 그런 세상도 꿈꾼다. 

전공의들이 외면하는 외과, 해결책은? 

: 외과를 지원하는 전공의들이 줄어 걱정이다. 특히 외과를 지원한 전공의들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해 고민이 많다. 힘들지만 보람된 일을 하려는 의사들은 꼭 있다. 정부가 이들을 지켜낼 수 있는 지원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모두 외과를 꺼리지만 외과의사 DNA가 있는 5%는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처럼 극적으로 환자 생명을 구하고, 몸에 그리고 손에 피가 튀면서 환자의 심장을 뛰게 하는 상황이 아니라도 외과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다. 이들만이라도 외과의사로서 제대로 살 수 있도록 정부가 희생만 강요하지 말고 보상을 확실히 해줘야 이 문제는 풀린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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