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Thanks to Dr
코로나 현장에서 치열했던 모든 의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말 없어도 우리는 알고 있다. 
내 앞에는 사랑이 사랑 앞에는 죽음이
아우성 죽이며 億진 나날
넘어갔음을. 
우리는 이길 것이다.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신동엽 시인의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거리에서, 사무실에서 그리고 지하철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면서 시인의 “이길 것이다”는 “이겼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2019년 낮도깨비처럼 코로나19(COVID-19)가 시작됐을 때 아무도 이 정체 모를 바이러스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각 분야 전문가는 자신들이 알고 있던 지식을 총동원해 머리를 맞대며 국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논의를 이어갔다.

특히 공공병원에 근무했던 의사들, 감염내과, 예방의학과 등이 코로나 팬데믹 최전선에 서서 그야말로 온몸을 불사르며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국민에게 격려받기도 했지만, 일부 비전문가에게 지탄받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그렇게 4년. 이제 병원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행복한 시대를 맞았다. 이런 시간은 그냥 온 게 아니다. 소소한 일상을 포기하고, 시간을 쪼개가며 희생한 사람들이 존재했던 덕분이다.  

본지는 창간 22주년을 맞아 코로나 현장에서 치열한 시간을 보낸 인천광역시의료원 조승연 원장, 길병원 엄중식 교수(감염내과), 한림대성심병원 이재갑 교수(감염내과), 가천의대 정재훈 교수(예방의학과)와 얘기를 나눴다. 이야기의 키워드는 감사, 경험 그리고 내일이었다. 

코로나19 때 내게 너무 고마운 사람들

인천광역시의료원 조승연 원장(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회장)
인천광역시의료원 조승연 원장(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회장)

인천광역시의료원 조승연 원장(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회장): 공공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코로나19 과정이 고되고 힘어려운 시기를 함께 건너온 병원 식구들한테 너무 감사하다.

누구를 ‘콕’ 짚어 고맙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 최선을 다했다. 함들었으 니까 결론은 좋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끝나고 공공병원에 남은 것은 환자들이 떠나고 “휭~”해진 병원이다. 마음도 “휭~”하다. 

 

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 
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 

길병원 엄중식 교수(감염내과): 코로나19 때 힘들다는 얘기도 제대로 못하고 자기 자리를 지켜준 병원 식구들한테 고맙고 미안하다.

오랫동안 고생하고 희생한 것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또 미안하다.

만일 또 감염병 팬데믹이 발생하면 그때 또 나서줄지, 그때는 어떤 말로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정재훈 교수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정재훈 교수

가천의대 정재훈 교수(예방의학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비교적 과학적 예측을 할 수 있었다.

이는 영국 보건안전청(HSE)이 과학적 정보와 데이터를 공개해 준 덕분이다. 이 부분이 감사하다. 

또 외국에서 공부하는 연구자들, 특히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는 정성목 박사와 미국 보스턴대학병원 조영지 교수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이 두 사람은 감염병 모델링과 코로나19 대응 방법 등에 많은 도움을 줬다. 

 

코로나19가 나에게 남긴 것은

조승연 원장: 웃긴 얘기지만 코로나19 때는 직원들 월급이라도 안 밀리고 제때제때 줄 수 있어 행복했다(웃음). 코로나19가 시작되자 인천광역시에서 거액을 지원했고, 개인적으로 코로나19를 잘 극복하면 의료원이 자리 잡을 것이란 희망을 품기도 했다.

그런데 한 낮의 꿈이었다. 코로나19 당시 의료원을 찾던 모든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고, 코로나19 환자를 전담했다. 코로나19가 끝나자 의료원을 찾는 환자는 줄어 병원 로비가 텅텅 빌 정도다. 환자가 없으니까 의사도 떠나고, 의사가 없으니 진료할 수 없어 환자 수는 더욱 감소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최전선에서 싸운 공공병원에 코로나19가 남긴 것은 한숨 소리뿐이다. 공공병원에 종사한 지 23년째인데, 공공병원이 잘 되는 "꼴"을 보고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물 건너간 것 같아 씁쓸하다.

 

한림대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
한림대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

이재갑 교수: 거리를 걸어가면 사람들이 알아봐 주고, 간혹 식당에 가면 사장님들이 애쓴다고 반찬을 더 주기도 한다(웃음). 

코로나19 이전에는 감염내과 의사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19를 겪으며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 논의하면서 나의 의견이 경제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고려하게 됐다.

특히 감염병을 이겨내기 위해 올바른 방법은 무엇인지, 이 과정에서 생명권과 인권은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 등 많이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 

엄중식 교수: 감염병 팬데믹 시기에는 정확한 정보 전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무엇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방송과 언론에서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그런데도 이번 코로나19 때 나를 비롯한 여러 감염내과 전문가가 최전선에 나선 이유는 2015년 메르스 때 경험 때문이었다.

당시 비전문가들이 방송과 언론에서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그래서 고려대 구로병원 김우주 교수님이 감염내과 의사들이 최대한 언론과의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고, 코로나19 때 많은 감염내과 의사가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시기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정재훈 교수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정재훈 교수

정재훈 교수: "그때 맞은 것이 지금 틀릴 수 있고, 그때 틀렸던 것이 지금 맞을 수 있다". 이것은 시간에 따른 변화다.

그런데 이것을 마치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예를 들어 사회적 거리두기를 초기에 하는 것은 맞는 선택이었다. 나중에는 푸는 것이 맞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리를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처음부터 하지 말자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시간에 따른 변화를 설득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또 방역은 어떻게 하든 사람들에겐 손해일 수밖에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아이들의 마스크 착용을 보면 당장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생계나 교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방역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어떻게 고려할 것인지 생각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

 

이재갑 교수: 바이러스에 좌와 우가 있을 수 없다. 감염이나 방역 문제는 과학자, 감염내과 의사, 역학자 등 전문가들이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의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문제는 방역 전문가들의 의견을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입장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역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전문가가 자유롭게 참여하기 부담스러워진다. 정치·경제 분야는 그렇다 쳐도 방역을 정권에 따라 흐르게 하면 안 된다. 

엄중식 교수: 감염병이 팬데믹 시 중요한 것은 속도다. 따라서 질병관리청이 코로나19를 관리하는 주도 부서가 되고,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 등 다른 부서가 뒷받침하면서 따라와 줘야 하는데 이번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는 그렇지 못했다. 감염병 발생 시 다른 부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게 속상했다.

 

감염병은 또 온다! 내일을 위해 우리는? 

 

우리는 2002년 사스와 2019년 코로나19 등 반복되는 감염병을 겪으면서 진단 및 방역 기술, 예방백신·치료제 개발, 보건 시스템 등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됐다. 하지만 정부는 코로나19를 잊고, 인력과 시스템 등을 과거로 되돌리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경험에서 배우지 못한 자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감염병 전문가들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또 올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코로나19가 끝났다고 팡파르를 울릴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동안 우리 정부가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감염병이 닥쳐왔을 때 우왕좌왕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인천광역시의료원 조승연 원장
인천광역시의료원 조승연 원장

조승연 원장: 감염병 팬데믹은 또 온다. 문제는 지금처럼 공공의료가 무너진 상태에서 팬데믹이 또 온다면 코로나19 때처럼 버틸 수 없을 것이란 점이다.

지금의 보건복지부는 효율을 높인답시고 공공의료와 보건의료를 모두 망치고 있다.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중소병원, 공공병원 등을 각자도생시키면 모두 죽는다. 정부가 시장에만 맡기지 말고 지금이라도 지방의료원에 인력과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 

 

한림대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
한림대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

이재갑 교수: "국난 극복이 취미인 민족"이란 얘기가 떠돌 정도로 우리나라는 위기 대응은 잘하지만 대비는 하지 않는 듯하다.

미국은 다음 팬데믹을 위해 70조원이 넘는 예산을 정해놓고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중장기 계획이 필요하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중장기 계획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도가 바뀌면 깎이고, 정권이 달라지면 또 깎인다. 

결국 중장기 계획이란 없고, 그해 예산만 있다. 메르스 때도 지적했던 부분이었는데, 2017년 감염 관련 예산은 모두 중단됐다. 그리고 코로나19가 100% 끝나지 않은 지금도 기재부는 예방에 대한 예산을 삭감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 모습이 이렇다. 

 

정재훈 교수: 현재 정부 주도 정책은 신뢰감을 많이 상실했다. 방역과 정치가 연결됐기도 하고, 과학적 판단은 일관됨에도 불구하고, 그때 어떤 정권이 있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음 팬데믹이 와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국민들이 따라줄 것인가, 전 국민 접종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해줄 것인가다. 정책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뜬금없다고 할 수 있지만,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팬데믹 대응은 어렵다고 본다. 

2020~2023년 건강보험재정이 좋은 환경이어서 대응이 가능했다. 그런데 만일 다음 팬데믹이 왔을 때 건보재정이 좋지 않다거나, 의료체계 역량이 부족하면 지금 정도의 대응은 어렵다. 중장기 보건의료체계 지속성을 회복하는 게 팬데믹 대응이라 할 수 있다.

 

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
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

엄중식 교수: 질병관리청은 감염병 관련 중장기 계획을 잘 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질병청은 인력과 예산 등의 주도권을 갖고 있지 않다.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는 팬데믹을 이미 기억 속에서 지운 듯하다. 예산이 박해졌다. 기억해야 할 점은 감염병 팬데믹은 또 온다는 점이다. 

감염병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곳은 의료기관이다. 따라서 코로나19로 인한 변화의 모멘텀을 어디로 가져가야 할지 정해야 하는데, 정부는 벌써 코로나19를 다 잊은 듯하다. 

또 다른 팬데믹을 준비하려면 음압실 설치 등 병원 부담이 너무 크다. 따라서 국무총리실 산하 위원회 또는 방역 TF 등을 만들어 다음 팬데믹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이번 팬데믹을 그나마 잘 넘긴 것은 사람(인력)을 갈아 넣었기 때문이다. 다음번에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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