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건보제 없는 美, 재정절감 필요성 ↓
단일제로 수익 극대화 가능...복합제 만들 동기부여 떨어져
신약간 조합은 선호·올드드럭은 최소...항암제 복합제 개발엔 적극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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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손형민 기자] 이상지질혈증,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 영역에서 국내사들의 복합제 개발 열풍이 불고 있다.

고혈압/이상지질혈증 복합제에서는 3제를 넘어 4제가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당뇨병에서도 3제 복합제가 허가됐다.

국내사들이 복합제 개발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단순하다. 복약순응도 개선을 위한 목적과 함께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져갈 수 있어서다.

특히 다국적 제약사 대비 오리지널 의약품 수가 부족한 국내사는 복합제를 만들어 개량신약으로 인정받으면 디테일 마케팅을 하기도 수월하다.

그러나 복합제 개발 열풍에 다국적 제약사의 이름은 찾기 어렵다. 만성질환 영역에서 2제 복합제 개발에 나서는 회사들은 많지만 3제, 4제 복합제 개발에 도전하는 제약사는 드물다.

왜 국내서만 특히 국내 제약사만 복합제 개발에 집중적으로 나서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① 만성질환 영역에서 복합제 개발 열풍...왜 국내서만?
② 다국적 제약사가 3제+ 복합제 개발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다수 사보험제 운영하는 미국선 복합제 활용도 ↓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분류되는 미국은 제약사들의 격전지다. 미국 제약사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등에서 활약하는 회사들도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기 위해 분주하다. 

이런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다국적 제약사들은 고혈압이나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등 만성질환 영역에서 3제 이상의 복합제 개발에 잘 나서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의 건강보험제도와 어느 정도 연관돼 있다고 보여진다. 미국은 단일 건강보험제도가 아니다. 사보험을 주축으로 고령, 장애인, 아동 등 건보 취약 계층에 지원을 해주는 형식이다.

미국서 공공보험으로 분류되는 것은 65세 이상 혹은 장애인을 위한 메디케어(Medicare), 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케이드(Medicaid), 18세 이하 아이들을 위한 아동건강보험(CHIP), 퇴역군인용 보험(VA), 미국원주민보건복지기관(IHS) 등이다.

이에 미국에 진출하는 다국적 제약사들은 '건보재정 절감'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단일제 여러 개를 판매한 수익이 복합제 1개를 판매한 수익보다 당연히 클 터.

건보재정 절감 외에도 복합제의 장점인 복약순응도, 다양한 만성질환 제품 포트폴리오가 미국에서는 이점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국내 제약사에 근무 중인 미국 약사 출신 A씨는 "미국에서는 환자들이 여러 개 알약을 복용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는 미국서 활약하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복약순응도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근거가 된다"며 "특히 환자들은 효과가 있었던 한 회사의 제품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용량 및 성분이라도 회사나 제품이 바뀌게 될 경우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며 "이런 점을 비춰봤을 때 미국에서는 오리지널 의약품에 대한 환자 선호도가 높아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가 큰 장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단일 제도다. 사보험을 주축으로 공보험에 선택적으로 가입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공보험을 주축으로 실비 등 사보험에 선택적으로 가입한다.

단일 국가보험이다 보니 정부 측에서도 재정절감을 위해 여러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이유가 꼭 복합제 개발을 장려한다고 볼 수 없지만, 보건당국에서도 복합제 열풍에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특히 국내서 만성질환 치료는 환자의 재정 부담이 크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 평생 복용해야 해 약값이 높아질 경우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환자들도 있다.

한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후발주자로 출시한 약제들이 기존 표준치료제들보다 효과가 더 좋아도 처방률이 크게 올라가지 않는 건 약가 영향도 있다"며 "만성질환뿐만 아니라 완치가 어려운 질환에서 치료제를 바꾸자고 의료진이 권유해도 약가가 높아지면 환자가 거절하는 사례도 많다"고 전했다.

이런 이유에서 국내선 복합제 개발을 통한 약가 인하가 어필이 되는 상황이다.

유럽은 어떨까. 유럽은 공보험이 우리나라보다 강하다. 독일의 건강보험료 공제 비율은 10%가량으로 우리나라 4% 대비 두배 이상이다.

이렇게 국가 주도적인 건보를 운영하는 나라를 고려해 재정절감을 위한 노력을 해야하지 않냐는 의견도 있지만,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다면 다국적 제약사가 다른 국가를 위해 복합제를 개발할 당위성은 부족하다.

복합제는 신약들로...만성질환 올드드럭 간 조합은 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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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국적 제약사들이 복합제 개발에 아예 나서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성질환에서 2제 복합제는 대부분 보유하고 있고 간혹 3제 복합제를 판매하는 회사들도 있다.

다만, 대다수 다국적 제약사의 복합제 개발은 신약과 신약간의 조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의 연구개발(R&D) 트렌드는 항암제, 면역억제제를 겨냥하고 있다.

지난 4월 유럽서 난치성 전립선암에 승인된 얀센 아키가(성분명 니라파립·아비라테론)는 제줄라(니라파립)와 자이티가(아비라테론)를 조합한 품목이다.

제줄라는 테사로가 개발한 난소암 신약, 자이티가는 얀센이 개발한 전립선암 신약이다. 또 BMS가 개발 중인 면역항암제 옵두알라그는 옵디보(니볼루맙)와 렐라틀리맙 복합제다. 두 제품 모두 BMS가 개발한 신약, 신약후보물질이다.

이처럼 다국적 제약사는 올드드럭보다 신약의 복합제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반면, 국내사가 만성질환 영역에서 개발 중인 복합제는 주로 올드드럭간의 조합이다.

일례로 고혈압·이상지질혈증에서는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 칼슘채널차단제(CCB), 스타틴, 에제티미브 등 출시 이력이 까마득한 약제들이다.

이처럼 다국적 제약사는 주로 신약과 신약간의 조합을 개발하고 있고 올드드럭 간 조합은 지양하고 있는 모양새로 비춰진다. 제네릭, 올드드럭을 조합하는 국내 모습과 사뭇 대조적이다.

국내 다국적 제약사에 근무하는 해외 의사 출신 B씨는 "만성질환 영역에서 올드드럭으로 분류되는 의약품들은 효과가 증명된 부분이라 해당 성분들로 복합제를 개발하면 상용화는 보장할 수 있지만, innovation을 추구하는 회사 기조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라며 "신약 파이프라인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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