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방암학회 한애리 진료권고위원장
유방암 진료지침 2년 만에 개정…엔허투, 권고안에 반영

한국유방암학회 한애리 진료권고위원장
한국유방암학회 한애리 진료권고위원장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유방암 전문가들이 근거 기반 권고안 도출이 어려운 희귀 유방암 치료전략을 제시하고자 뜻을 모았다. 

한국유방암학회는 유방암 진료지침을 2년 만에 업데이트하며 희귀 유방암 환자를 위한 별도의 치료 권고안을 마련했다. 

이번 진료지침은 27~29일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유방암학술대회(GBCC) 2023' 일정에 맞춰 공개됐다.

한국유방암학회 한애리 진료권고위원장(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유방외과 교수)을 만나 진료지침 개정 과정과 주목해야 할 내용 등을 들었다.

- 기존 진료지침과 비교해 달라진 점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치료전략 도출이 어려운 유방암 환자를 위한 권고안을 마련한 것이다. 환자 수가 적은 남성 유방암 또는 가족성 유방암 환자의 관리전략이나 유방암 환자의 골다공증 치료전략 등을 파악하기 위한 대규모 무작위 임상연구를 진행하기란 어렵다. 희귀 유방암 환자도 맞춤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이에 대한 답을 주고자 권고안을 제시한 것이 이번 진료지침의 가장 큰 변화다. 

희귀 유방암 치료전략에 대한 근거는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부족하다. 환자 수가 적어 근거 수준(Level of Evidence)이 가장 높은 전향적 무작위 연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유전성 유방암에 대한 사회적 낙인 때문에 연구 진행이 어렵다. 

이에 서양에서는 희귀 유방암 환자를 위한 특별 권고안을 만들고 있다. 본 학회도 희귀 유방암 치료 권고안을 마련하고자 종양내과, 외과, 방사선종양학과, 병리학과 등 유방암 관련 8개 진료과가 모여 논의했고, 이번 GBCC 일정에 맞춰 진료지침을 발간하게 됐다.

- 권고안을 뒷받침하는 연구가 부족하다면, 어떤 근거로 제시했나?

무작위 임상연구가 어렵더라도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단일 의료기관 데이터 등으로 치료에 따른 예후를 확인해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또 근거가 없다면 전문가 의견을 들어 권고안을 제시할 수 있다. 

이번 진료지침 개정 과정에서도 희귀 유방암 환자 치료 경험을 공유하고자 컨센서스 미팅을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권고안을 만들었다. 컨센서스 미팅 내용은 특별 보고(special report) 논문 형태로 학술지에 투고해 발표하고 있다. 

- 진료지침에 등장한 새로운 유방암 치료제는?

ADC 항암제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가 권고안에 반영됐다. 하지만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분해제(SERD) 계열은 아직 근거가 불충분한 약제라 생각되면 진료지침에 반영하지 않았다. 

국내 임상에서 사용할 수 없는 약제일지라도 치료 효과가 좋다는 근거가 있다면 진료지침에 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신약이 등장하더라도 근거 수준이 충분하면 진료지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진료지침 개발 시 약제를 유방암 환자에게 사용 가능한지 여부는 다른 문제다. 

- 진료지침 개정 과정에서 합의가 어려웠던 점은?

임상연구에서 전체 생존(OS)과 무진행 생존(PFS)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뤄졌다. 임상연구에서 PFS는 개선하는데 OS 개선에 실패한 약제들이 있다.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지가 학계 딜레마다. 이 경우 진료지침에 무진행 생존을 개선하지만 전체 생존에 대해서는 불분명한(equivocal) 데이터가 있다고 명시했다.

CDK4/6 억제제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최근 미국종합암네트워크 가이드라인(NCCN)에 CDK4/6 억제제 키스칼리(리보시클립)가 유방암 치료에서 최상위 등급인 '카테고리1'으로 권고됐다. 그런데 국내에는 2016년 입랜스(팔보시클립)가 먼저 허가받았고 이후 후발주자인 키스칼리, 버제니오(아베마시클립)가 등장했다. 

임상의 입장에서는 입랜스를 투약한 환자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없는 상황이다. 2015년 입랜스가 미국에서 처음 출시된 이후 입랜스를 사용했고 6~7년 생존한 환자를 본 외국 의료진들도 진료지침 변화에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진료지침은 근거를 따라가야 한다. 키스칼리는 전체 생존 혜택이 일관되게 나타난 만큼 환자 치료 시 이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외 권고안이 바뀌거나 근거가 달라질 때 개정이 쉽지 않다는 걸 배웠다. 앞으로 충분한 근거 없이 권고안을 제시하는 것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가 많아 보이지만 환자 개개인에게 사용 가능한 약제는 많지 않아, 1차 치료제를 어떻게 권고할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CDK4/6 억제제를 후속치료를 위해 남겨둬야 한다는 의견과 처음부터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초기 유방암과 달리 전이성 유방암은 후속치료를 위해 CDK4/6 억제제를 1차로 사용하지 않으면, 후속치료를 진행하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항암화학요법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임상의는 첫 단추를 잘 꿰야 후속치료가 잘 이뤄진다고 생각하지만, 그 누구도 정확한 답을 줄 수 없다. 다만, 논의 과정에서 처음부터 치료를 잘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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