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거치며 의사 과학자 중요성 높아져
정부, 카이스트·포스텍 의대 신설 ‘긍정 검토’
의료계, 이공계 붕괴 현상 우려…기존 의대 활용 제안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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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박서영 기자] 코로나19(COVID-19)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치료제를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했다. 진단키트를 제외하면 뾰족한 바이오헬스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부가 의사 과학자를 양성하겠다며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와 포스텍(포항공대)의 의과대학 신설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정작 의료계에서는 이공계 인재들이 모두 의대로 진학하는 일명 ‘의대 블랙홀’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은 카이스트에서 열린 대전 과학기술·디지털 혁신기업인과의 대화에 참석해 “카이스트에서 추진 중인 의사과학자 육성 대학원 설립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같은 달 28일에는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회의에서 바이오헬스를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키우겠다며, 의사 과학자를 양성할 수 있는 방안을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이에 카이스트와 포스텍이 추진하던 의대 신설에 탄력이 붙게 됐다.

앞서 카이스트는 현재 운영 중인 의과학대학원을 2026년 과학기술의전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고, 포스텍 역시 2028년까지 연구중심 의대를 설립해 매년 50명의 의사 과학자를 배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과 교육부 이주호 장관은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각각 포스텍을 찾아 연구중심 의대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서는 의사과학자 양성이 아니라 단순히 의대 정원을 확대하려는 방안이 아니냐는 의문도 나온다.

 

의료계 “의대 쏠림 현상 더 심해질 것”
카이스트·포스텍 “졸업생 임상으로 못 가도록 시스템 마련”

의료계가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의대 쏠림 및 이공계열 붕괴 현상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기존 의대를 활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 2월 종로학원에서 발표한 4대 과학기술원(카이스트, 유니스트, 디지스트, 지스트) 중도 탈락자 현황은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발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과학기술원 중도 탈락자만 1006명으로 업계에서는 이들이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지난해 개최된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의대 신설을 두고 의료계와 카이스트·포스텍 간 신경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의학한림원 왕규창 원장은 “의사 과학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 이미 의대 교육 과정에 포함돼 있다”며 “스스로 수요를 창출하는 의사 배출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아 (의대 신설이) 설립되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에 카이스트 이광형 총장은 “(연구중심 의대는) 전공의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에 의사과학자로 양성된 인력은 전문의가 될 수도, 임상으로 갈 가능성도 없다”며 “혹여 갈 가능성이 있다면 법적인 장치로 예방하겠다”고 말했다.

또 카이스트와 포스텍에서 설립되는 의대의 목표는 의사과학자로 양성된 인력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한편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는 “졸속 논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전협은 지난 27일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참 한가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의대 신설보다 의과대학 및 수련병원 통폐합 논의가 더 시급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공계열 과학자 처우 개선 등 근본 문제를 외면한 채 의전을 신설할 경우, 오히려 의대 쏠림 현상 및 이공계열 붕괴 현상을 가속화할 수 있다”며 “사회적 비용을 미래의 한국 사회가 감당 가능한 것인지도 현실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의사 과학자 새로 양성?
이미 양성된 과학자들 지원부터 이뤄져야"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신찬수 이사장

의료계는 의대 쏠림을 우려해 연구 목적 의대 설립을 반대하지만, 정부는 오히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설립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애당초 접근 방식이 정반대인 셈이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신찬수 이사장은 “기존의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도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를 냈는데, 굳이 확대해서 어떤 득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신설되는 의대에서 매년 50명의 의사 과학자를 배출해도 이들이 전부 연구자의 길을 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며 “그렇다면 그들이 임상으로 진출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교육자원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신 이사장 역시 의료계 전반적 입장처럼 의대 신설이 아니라 기존의 의대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지금까지 국내 의사 과학자들은 무한 경쟁을 거쳐 스스로 연구를 수주하는 일명 ‘적자생존’ 시스템이었으나, 최근 2~3년간 복지부에서 학부생·전공의 등을 대상으로 의사 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을 지원하면서 활력을 띠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어 “아직 2~3년밖에 되지 않아 구체적 결과 데이터는 없지만, 관심도 및 참여율은 눈에 띄게 높아진 상황”이라며 “의대 신설보다는 차라리 프로그램 확대를 추진하는 게 더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정책이 의사 과학자 양성에만 포커스가 맞춰져있다며, 이미 양성된 의사 과학자들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신 이사장은 “대학병원 교수들이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이유는 외래진료 때문이다. 하루 100명씩 환자를 보다보면 지쳐서 연구를 놓게 되는 것”이라며 “환자를 보지 않고도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물론 대학병원 측은 수익 문제로 적극 지원이 어려우니 정부가 나서서 임금을 보전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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