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장혁재 교수
국내 약 50개 의료기관이 소수 환자 진료…해외는 전문센터 지정해 관리
"의료기관 한 곳에서 10명 진료한다면, 한 달에 1명도 보지 않는 경우 생겨"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장혁재 교수.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장혁재 교수.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폐동맥고혈압은 진단 후 평균 생존기간이 3년밖에 되지 않는 치명적인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조기진단과 조기 적극적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해 발표된 유럽심장학회·호흡기학회(ESC·ERS) 폐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는 폐동맥고혈압 조기진단을 통한 조기치료가 환자의 장기적 예후를 개선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내 학계도 폐동맥고혈압 조기진단 및 조기 적극적 치료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에 대한 근거를 만드는 등 국내 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장혁재 교수(심장내과)를 만나 폐동맥고혈압 조기진단의 중요성과 국내 치료 환경은 어떤 모습이여 하는지 취재했다. 

- 지난해 업데이트된 ESC·ERS 폐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 주목할 내용은?

폐동맥고혈압 조기진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ESC·ERS는 폐동맥고혈압 진단 시 우심도자술로 측정한 평균 폐동맥압 기준을 25mmHg 이상에서 20mmHg 초과로 낮추며 가이드라인을 전향적으로 개정했다. 경증 환자를 더 일찍 질환자로 분류해 치료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쌓인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폐동맥고혈압 환자를 일찍 치료하면 예후를 더 좋게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이드라인에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진단기준을 낮추는 것은 유럽뿐 아니라 미국도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또 이전에는 단일요법을 진행하다가 병용요법으로 변경하는 것이 기본이었다면, 지금은 병용요법을 기본으로 시행해 적극적으로 치료하도록 권고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다만 평균 폐동맥압이 25mmHg 이상이면 병용요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하지만, 21~24mmHg라면 단일요법 또는 병용요법 중 어떤 치료를 시행해야 할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또 평균 폐동맥압 21~24mmHg인 환자들을 발견하기 위한 스크리닝 정책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도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 폐동맥고혈압 조기진단이 중요한 이유는?

폐동맥고혈압의 원활한 치료를 위해 중요하다. 질환이 혈관계에 변화를 준 상황에서 치료제를 사용하면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울 수 있어 조기진단은 폐동맥고혈압의 큰 숙제다.

최근 발표된 옵서미트(성분명 마시텐탄) 시판후조사(rPMS)에서 폐동맥고혈압을 조기진단하면 치료 효과가 좋다는 결과를 얻으며 국내 환자를 대상으로 조기진단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이전 연구에서 폐동맥고혈압 조기진단 이후 일찍 치료했을 때 치료효과가 더 좋다는 결과들이 보고된 데 이어 rPMS에서도 같은 결과를 확인한 것이다.

다만 과거에는 순수 폐동맥고혈압 환자만 발견됐다면 최근에는 다른 질환과 함께 발병하는 환자가 늘고 있어 진단이 늦어지는 어려움이 있다. 

- 국내 진료지침에도 변화한 유럽 진단기준을 반영할 예정인가?

반영할 계획이다. 하지만 시점은 고민하고 있다. 2021년 국내 진료지침이 개정됐지만 아직 이전 진료지침에 담겨있는 수준만큼의 급여도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유럽과 같이 우리나라도 진단기준을 낮추면 환자 모집단 수가 커지게 된다. 새롭게 추가되는 평균 폐동맥압 21~24mmHg 환자에 대한 치료전략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 진단기준을 언제 국내에 적용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장혁재 교수.

- 국내 폐동맥고혈압 치료 환경은 어떤가?

우리나라에서 폐동맥고혈압 인지도는 높아졌지만 진료 시스템의 체계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폐동맥고혈압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여러 기관의 의료진이 질환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환자를 발굴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폐고혈압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진료하고 있는 전문 진료센터에서 환자를 봐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약 50개 의료기관이 굉장히 소수의 환자를 진료하는 실정이다. 

이와 달리 해외에서는 진료 여력이 있는 기관을 전문센터로 정하거나 보험 급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관을 한정하는 등 정책을 시행해 환자를 특정 기관으로 집중시키고 있다. 이 같은 정책적·재정적 노력을 통해 환자 예후를 향상시키고 있다. 

소수 폐동맥고혈압 환자를 여러 기관에서 진료해 조기치료 효과를 평가하는 체계적 연구를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옵서미트 rPMS는 50개 의료기관에 등록된 환자 약 500명을 모아 분석했다는 의미가 있다. 

- 폐동맥고혈압 전문센터를 운영해야 하는 이유는?

폐동맥고혈압은 희귀질환이라 전문센터에서 환자를 봐야 한다. 의료기관 한 곳에서 10명의 폐동맥고혈압 환자를 진료한다고 가정하면 한 달에 1명도 보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한 달에 1명의 환자도 보지 않는 상황에서 수많은 검은 바둑돌(일반 환자) 중 하나의 흰 바둑돌(폐동맥고혈압 환자)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폐동맥고혈압 진료의 질을 유지하기 어렵다.

희귀질환이라는 카테고리 내에서 전문센터 운영의 중요성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 희귀질환을 전문적으로 모아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기에 정부는 희귀질환 센터를 권역별로 지정하고 체계화하고 있는 단계다.

하지만 폐동맥고혈압은 지속적인 홍보를 통해 단순히 환자를 잘 발견하는 것을 넘어 다빈도 희귀 난치성 질환이 됐다. 이제는 환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문센터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통해 환자를 적극적으로 치료함으로써 가이드라인에서 개정된 전향적 수준까지 치료 수준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마지막으로 의료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과거에 중점을 뒀던 폐동맥고혈압 '조기 발견'의 중요성은 현재도 유효하다. 하지만 이제는 전향적으로 개정된 최선의 치료에 맞춰, 어떻게 최적 시점에 최선의 치료를 제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많은 노력으로 적극적 치료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뤄졌다. 앞으로는 폐동맥고혈압 환자들을 어떻게 적극적 치료로 이끌어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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