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폐고혈압연구회 정욱진 회장(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
한국인 폐동맥고혈압 심층표현형 분석 위한 'PHOENIKS' 연구사업 진행 중

▲대한폐고혈압연구회 정욱진 회장(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폐동맥고혈압은 치명적인 질환으로 아직 완치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치료 표적물질을 발굴하면 완치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폐동맥고혈압 심층표현형(phenotyping) 연구를 통한 개인 맞춤형 정밀의료로 나아가야 합니다."

희귀난치성 질환인 폐동맥고혈압 치료에 정밀의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암 환자의 유전자 돌연변이를 분석하고 이에 맞는 표적치료제를 투약해 완치에 가깝게 질환을 관리하는 것처럼, 폐동맥고혈압도 치료 표적물질을 발굴해야 완치를 향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폐고혈압연구회(회장 정욱진)는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과 함께 2018년부터 한국인 폐동맥고혈압의 심층표현형 분석을 위한 장기코호트 연구 플랫폼 'PHOENIKS' 연구사업을 진행, 환자와 가족의 임상데이터와 생체시료를 수집·분석하고 있다.

본지는 연구회 정욱진 회장(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과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진행, 국내 폐동맥고혈압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폐동맥고혈압 분야에서 정밀의료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폐동맥고혈압 치료 환자 1500명

숨겨진 환자 포함하면 6000명 추정

심혈관질환에 속하는 폐고혈압 국내 환자는 약 4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희귀질환에 해당하는 폐동맥고혈압 환자는 약 2%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폐동맥고혈압으로 치료받는 환자는 1500여 명이지만, 숨겨진 환자까지 포함하면 최대 6000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폐동맥고혈압이 진료현장에서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질환에 대한 의료진의 낮은 인식 때문이다. 폐동맥고혈압은 조기 진단 및 치료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의료진이 질환을 의심하고 검사해 환자를 일찍 찾아내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2004~2018년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이용해 국내 폐동맥고혈압 현황을 분석한 팩트시트에 의하면, 폐동맥고혈압 등록사업을 진행한 2008년부터 환자 수가 크게 늘었다. 연구회가 창립된 2017년 이후 폐동맥고혈압 신규 환자 수도 증가했다. 이는 등록사업과 연구회 창립 등을 통해 많은 의료진이 폐동맥고혈압을 알게 됐고, 질환이 의심되면 검사를 시행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 회장 설명이다.

그는 "최대 6000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폐동맥고혈압에 대한 대국민 홍보를 진행하기보단, 약 10만 명의 의료진이 환자를 찾아낼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폐동맥고혈압이 의심되면 검사를 진행해야 제대로 된 치료를 시행해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강력한 치료무기 없는 대한민국

▲대한폐고혈압연구회 정욱진 회장(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

팩트시트에 의하면, 2018년 기준 폐동맥고혈압 치료제 2제 이상 요법을 진행하는 비율은 29%다. 이에 따른 5년 생존율은 71.5%, 평균 생존기간은 13.1년으로 조사됐다. 과거보다 생존율·생존기간이 개선됐으나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부족한 실정이다. 정 회장에 따르면, 일본의 폐동맥고혈압 생존율은 약 90%로 우리나라보다 20% 더 높다. 

외국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생존율이 낮은 이유는 효과가 우수한 치료제가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정 회장의 설명이다. 

외국에서 사용하고 있으나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치료제는 △GSK의 에포프로스테놀 △바이엘의 리오시구앗 △릴리의 타다라필 등이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시판된 폐동맥고혈압 치료제는 11가지가 있으나 가장 효과적이면서 필수인 치료무기 3가지가 국내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폐동맥고혈압 여성 환자는 임신이 금기이지만 일본에서는 에포프로스테놀로 치료받으며 임신하는 환자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에포프로스테놀이 도입되지 않아 아래 단계 치료제를 사용하고 있다"며 "결국 가장 좋은 치료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환자는 치료제를 사용하지 못해 사망하고 있다. 에포프로스테놀은 질환을 늦게 발견해 생존율이 낮은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피력했다.

그는 이어 "타다라필은 암브리센탄과 병용하면 가장 효과적이지만 국내에 도입되지 않아 병용요법을 진행할 수 없다"면서 "우리나라는 치료 초기부터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치료무기가 없다. 정부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나 중요한 질환에 대해서는 치료제 도입을 위한 패스트트랙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치료 표적물질 발굴해 생존기간 늘리는 것이 목표"

폐동맥고혈압은 궁극적 완치가 없는 질환이다. 그러나 치료 표적물질을 발굴해 개인 맞춤형 정밀의료를 제공하면 완치에 가깝게 폐동맥고혈압을 관리할 수 있다. 

그는 "환자마다 질환 발생 원인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현재 동일한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치료를 진행하더라도 환자별 치료반응이 다르다"며 "유전체, 전사체, 단백체, 대사체 등을 전부 분석해 환자마다 다른 심층표현형을 규명해야 완치로 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국내 12개 의료기관에서 폐동맥고혈압 환자 73명과 이들의 17가족을 모집해 유전자검사를 진행한 결과, BMPR2 유전자 돌연변이가 21.9%에서 확인됐다. 또 유전성 폐동맥고혈압 환자 7가족의 17명 중 10명(58.8%)이 BMPR2 유전자 돌연변이를 보유하고 있었다(PLoS One 2020;15(9):e0238698). 

이에 연구회는 질병청 국립보건연구원과 PHOENIKS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8~2020년 수행된 PHOENIKS 1차 사업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폐고혈압 분류 5가지 중 1군에 속하는 △특발성폐고혈압 및 유전성폐고혈압 △선천성 심장질환 관련 폐고혈압 △결합조직질환 관련 폐고혈압 등 폐동맥고혈압 환자 102명을 모집해 임상데이터 수집 및 생체시료 확보를 수행했다.

이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PHOENIKS 2차 사업을 진행한다. 2차사업은 WHO 분류 2군에 해당하는 좌심 관련 폐고혈압(LHD-PH)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는 "향후 목표는 WHO 분류 3~5군 환자를 모집해 대사체, 전사체 등에 대한 깊이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라며 "연구회의 목표는 폐고혈압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 표적물질을 발굴해 환자들이 오래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 회장은 연구회에 더해 동아시아폐고혈압학회(EASOPH) 사무총장으로서 학회 활동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EASOPH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4개국의 폐고혈압 환자의 치료 향상을 위해 2018년 창립됐다.

그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은 유전적으로 동일(homogeneous)하다는 점에서 4개국의 폐고혈압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EASOPH가 폐고혈압 등록사업을 추진하고 바이오뱅크를 구축해 향후 임상 가이드라인까지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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