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A의 신약 허가 기조 ‘니치버스터’
항암제 개발, 전문화 그리고 세분화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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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양영구 기자] 미국과 유럽의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좌우한다. 

때문에 세계 제약바이오 산업을 이해하려면 이들이 개발하고, 미국식품의약국(FDA)이 허가 또는 허가 심사를 준비 중인 약물들을 눈여겨봐야 한다.

시장에 나오는 글로벌 제약사의 약물들은 주력해야 할 분야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앞으로의 방향성을 알려주기도 한다.

본지는 창간 21주년을 맞아 지난해 FDA로부터 허가를 획득한 약물, 그리고 올해 FDA로부터 허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신약을 통해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트렌드를 분석했다.

① FDA 신약 허가기조 '니치버스터'...전문화·세분화
② FDA 승인 앞둔 약물도 '니치'..."트랜드 바뀐다"

글로벌 제약업계는 미충족 의료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신약 개발이 활발하다. 이는 그동안 이어진 기조이기도 하다.

주목할 하나의 트렌드는 ‘니치버스터’다. 니치버스터는 비주류를 의미하는 니치(Niche)와 블록버스터(Block Buster)를 결합한 용어다. 경쟁은 덜하지만 시장성이 큰 신약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된다.

실제 글로벌 제약업계는 니치버스터에 초점을 맞춰 연구개발(R&D) 효율성을 높이고 생산성 하락을 극복하고 있다. 항암제, 희귀의약품 등 니치버스터 시장이 유망한 분야라는 근거는 그간 FDA로부터 허가된 신약에서 찾을 수 있다.

FDA 산하 약물평가연구센터(CDER)는 최근 10년(2011~2021) 동안 총 461개의 신약을 승인했다. 이 가운데 항암제는 총 136개가 승인을 받았다. 대부분 소분자(87개)와 단일클론항체(36개)가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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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별로 보면 폐암 치료제가 19건으로 가장 많았고, 유방암 14건, 전립선암 10건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폐암 치료제 영역에서는 ALK 억제제, EGFR 억제제, MET 억제제, RET키나제 억제제, 알킬화제 등 다양한 기전의 유전자 변이 타깃 신약이 탄생했다.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허가 비중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실제 2014~2021년 FDA 승인을 받은 380개 신약 중 희귀의약품은 절반에 가까운 168개(44.2%)에 달한다. 

2014년 허가 신약 중 희귀의약품 비중은 42%인 반면 2018년에는 58%까지 상승했다. 2019년에는 64.6%에 달했고 지난해에는 52%로 절반 이상이었다.

제약사들이 기존 만성질환 치료제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니치버스터 신약 개발을 통해 틈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제약업계에서는 신약 하나를 개발할 때 통상적으로 8억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투자비용과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술과 시장, 전략상 여러 불확실성이 존재해 투자 대비 성과를 볼 수 있는 R&D 생산성은 하락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업계가 생산성 저하를 극복하기 위해 니치버스터 신약 출시를 노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FDA 허가 트렌드는 희귀질환 치료제의 약진과 항암제의 전문화로 대변할 수 있다. 특히 희귀질환 치료제의 약진에 이목이 모인다. FDA 허가 의약품 가운데 희귀질환 치료제 점유율은 항암제를 넘어선지 오래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2016년부터 매년 허가 건수를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2017년 9개, 2018년 12개, 2019년 21개의 희귀질환 치료제가 나왔고, 2020년에는 무려 31개가 희귀질환 치료제였다.

지난해 FDA로부터 허가를 받은 신약은 50품목이다. 이 중 희귀의약품은 26품목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 세계 최초의 신약은 3개나 개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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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유전자 대사장애로 신경학적 손상을 유발하는 A형 몰리브덴보조인자결핍 치료제 널리브리(포스데톱테린)와 진성적혈구증가증 치료제 베스레미(로페그인터페론 알파-2b), 연골무형성증 치료제 복스조고(보소리타이드) 등이다.

널리브리는 A형 몰리브덴보조인자결핍 치료제로 최초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 이 병은 희귀 유전 대사장애로 중추신경계에 독성 아황산염 대사 산물이 축적돼 난치성 발작과 섭식장애, 근육 약화 등 심각하고 빠른 신경학적 손상을 일으켜 환자 대부분이 유아기에 사망한다.

베스레미는 진성적혈구증가증의 질병 진행을 유발하는 골수 내 변이 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3세대 모노-페길화 인터페론 제제로, 환자가 치료 이력과 관계없이 복용할 수 있는 최초의 치료제다.

바이오마린의 복스조고는 최초의 연골무형성증 치료제다. 복스조고가 FDA로부터 승인 받으면서 연골무형성증으로 인한 저신장 아동에서 근본 원인을 표적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이 생겼다.

복스조고는 성장 조절 유전자의 활성을 감소시키고 뼈 성장을 자극하는 나트륨 이뇨 펩티스 수용체-B 수용체에 결합해 작용하는 기전이다. 앞으로도 글로벌 제약업계의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은 꾸준할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학적 미충족 수요를 충족해줄 수 있는 ‘니치버스터’에 대한 시장 수요 때문이다. 

이밸류에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10개 희귀질환 치료제의 가치는 2026년 30억~130억달러, 예상 총 매출은 현재 가치로 420억달러 이상으로 전망된다. 이미 글로벌 제약업계, 그 중에서도 빅파마는 희귀질환 치료제에 눈을 돌린지 오래다. 실제 매출 상위 10대 희귀의약품 중 9개는 빅파마가 보유하고 있다.

존슨앤드존슨은 의약품 매출의 39%, 아스트라제네카는 36%가 희귀질환 치료제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외에 로슈, 노바티스, 애브비, BMS, 사노피, 다케다 등은 희귀질환 치료제 매출 비중이 20%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R&D 측면에서도 희귀질환 치료제 파이프라인 가치 비중은 2022년 16%에서 2024년 29%로 증가, 58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FDA 약물평가연구센터(CDER)는 “여러 진전에도 희귀질환 대다수는 이용 가능한 치료법이 아직도 없다”며 “우리는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의 미충족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우선순위에 두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전문화 · 세분화되는 항암제

수십년 전부터 항암제 분야 관련 연구는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주목할 항암제 개발 경향은 정밀 종양학이 발전하면서 더 세밀하게 환자를 표적하는 항암제 승인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밀 종양학의 발전으로 의학적 미충족 수요가 높은 환자를 위한 치료제가 다수 허가받으면서 더 많은 환자가 개인화된 치료법을 갖게 된 것이다. 실제 FDA 승인 항암제 60% 이상은 연구개발 과정에서 최소 1개 이상의 바이오마커를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했다.

바이오마커를 기반으로 개발된 의약품의 승인률은 그렇지 않은 의약품 대비 약 2배 높았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임상시험 14만 1086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바이오마커는 항암제 신약 승인과 높은 연관성이 있었다.

바이오마커 기반 임상 디자인을 설계한 후보물질이 그렇지 않은 후보물질에 비해 최종 임상 승인율이 약 6.7배 높았던 것이다. 이는 생명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바이오마커가 단순한 생체 신호에서 더 나아가 DNA, RNA 등 유전물질, 단백질, 세균, 바이러스 등으로 영역이 확장됐기 때문이다.

이에 글로벌 빅파마들은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 신약 개발 과정에서 바이오마커를 후보물질의 치료 효과 예측 자료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역학적, 치료학적, 병리생태학적, 과학적 근거에 따라 후보물질의 임상적 치료 효과 유무를 예측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탄생한 대표적 항암제가 HER2를 바이오마커로 삼은 허셉틴(트라스트주맙), EGFR 억제제 얼비투스(세툭시맙) 등이다.

최근 FDA 허가 경향성은 항암 신약, 특히 최초 치료제로 좁혀진다. 개인화에 최초까지 더한 것이다.

PD-1 면역관문억제제 젬펄리(도스탈리맙)는 FDA로부터 복구불일치결함(dMMR) 자궁내막암 첫 치료제로 허가됐다. 젬펄리는 진행성 또는 재발성 자궁내막암 환자 약 25~30%가 갖고 있는 dMMR 종양을 표적하기 위해 개발됐다.

자궁내막암은 일반적으로 약 75% 환자가 초기에 진단돼 수술적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백금기반 화학요법으로 표준치료를 받은 진행성 및 재발성 환자는 치료 옵션이 제한적이었다.

리브리반트(아미반타맙)는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엑손20 삽입 변이가 있는 비소세포폐암에 첫 표적 치료제로 승인됐다.

EGFR 엑손20 삽입 변이는 세포 성장을 빠르게 해 암 전이를 촉진하는 단백질 변이 그룹이다. EGFR 유전자 변이 가운데 세 번째로 흔한 유형이다.

루마크라스(소토라십)는 최초의 KRAS G12C 유전자 변이를 타깃한 폐암 신약으로 FDA로부터 승인을 얻어냈다. 

KRAS는 세포 성장과 분열을 조절하는 유전자 그룹의 돌연변이 유형이다. 비소세포폐암에서 약 25%를 차지하며, 이 가운데 KRAS G12C 유전자 변이는 약 13%에 해당한다. 

한 글로벌 제약사 관계자는 “최근 FDA의 신약 허가는 항암 신약과 최초 치료제에 관대한 반면, 이미 다른 치료적 대안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보수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며 “이런 추세에 맞춰 업계는 화학합성신약, 바이오신약 분야의 활발한 연구를 진행 중이며, 더 나아가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신약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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