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제 '벤트라시맙' 임상 결과, 혈소판 기능 빠르게 회복·효과 지속
출혈 발생·응급수술 필요 브릴린타 복용 환자에게 유용 전망
정영훈 교수 "국내 처방 적어…벤트라시맙·브릴린타 투약 많지 않을 것"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아스트라제네카의 항혈소판제 브릴린타(성분명 티카그렐러)가 출혈 위험에 대비한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미국 바이오기업 페이즈바이오(PhaseBio)가 개발한 브릴린타 역전제 벤트라시맙의 임상연구 결과가 공개되고 있다.

결과를 종합하면, 벤트라시맙은 브릴린타 복용 환자의 혈소판 기능을 빠르게 회복시켰고 이 같은 효과는 지속됐다.

이에 따라 벤트라시맙은 브릴린타 투약 후 출혈이 발생했거나 응급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에게 유용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벤트라시맙이 허가받아 임상에 도입될지라도 크게 활용되기엔 어려울뿐더러, 안전장치를 확보했다는 강점에도 불구하고 브릴린타 처방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벤트라시맙, 최초 P2Y12 억제제 역전제

경구용 P2Y12 억제제인 브릴린타는 체내에서 대사될 필요 없이 바로 작용할 수 있어 항혈소판 효과가 강력하고 빠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다른 항혈소판제와 마찬가지로 주요 출혈 또는 긴급하거나 침습적 응급시술 관련 출혈 발생에 대한 우려가 있다. 

브릴린타가 P2Y12 억제제 중 최초로 역전제가 개발될 수 있는 이유는 기전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브릴린타는 혈소판이 방출한 ADP(Adenosine Diphosphate)와 혈소판 표면의 P2Y12 수용체가 결합하는 것을 막아 혈전 형성을 억제한다. 

이 과정에서 브릴린타는 P2Y12 수용체에 가역적으로 결합해 응집을 저해한다. 이와 달리 에피언트(프라수그렐)과 플라빅스(클로피도그렐)는 P2Y12 수용체를 비가역적으로 차단해 효과를 보인다.

벤트라시맙은 재조합 인간 단일클론항체 항원 단편 결합(antigen-binding fragment)으로, 출혈이 조절되지 않거나 수술이 필요한 브릴린타 복용 환자의 항혈소판 활성을 역전시키도록 설계됐다. 벤트라시맙이 잔존한 유리 티카그렐러에 높은 친화도·특이도로 결합하면서 ADP는 P2Y12 수용체에 결합해 혈소판을 활성화시키고 벤트라시맙/브릴린타 복합체는 혈류에서 제거된다. 

REVERSE-IT 중간분석, 90% 이상 지혈 효과 나타나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2019년 발표된 벤트라시맙 임상1상은 젊고 건강한 참가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최종 결과에 따르면, 벤트라시맙 투약 5분 이내에 브릴린타 역전 효과가 나타났고 20시간 이상 지속됐다. 

혈소판 수혈이 티카그렐러의 항혈소판 효과를 역전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벤트라시맙의 긍정적 임상1상 결과는 치명적 출혈이 발생한 브릴린타 복용 환자에게 새 희망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벤트라시맙은 2019년 FDA로부터 혁신치료제로 지정됐다.

이어 개발사는 2022년 중반을 목표로 FDA 신속 승인을 위한 생물의약품 허가신청서(BLA)를 제출하기 위해 임상2B상과 REVERSE-IT 임상3상에 도입했다.

가장 먼저 성과를 보고한 것은 REVERSE-IT 임상3상으로, 지난해 11월 중간분석 결과가 발표됐다. 

연구는 조절되지 않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주요 출혈 발생 또는 긴급한 수술이나 칩슴적 시술이 필요한 브릴린타 복용 환자 대상의 단일군 연구로 진행됐다. 목표했던 최소 200명 환자 등록에 미치지 못한 약 150명이 모집됐다. 

대조군은 설정하지 않았는데 많은 연구자가 중증 환자를 무작위 배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FDA와 유럽의약품청(EMA) 판단이 반영됐다.

중간분석 결과, 벤트라시맙 투약 시 혈소판 기능이 빠르게 회복됐으며 90% 이상의 지혈 효과가 나타났다. REVERSE-IT 임상3상은 현재 진행 중이다. 

임상2B상 최종 결과는 지난달 열린 미국심장학회 연례학술대회(ACC 2022)에서 보고됐다. 임상3상과 달리 무작위 이중맹검으로 디자인됐고 50~80세 건강한 성인 205명이 등록됐다.

전체 환자군은 48시간 동안 티카그렐러+아스피린 전처리 이후 벤트라시맙군 또는 위약군에 3:1 비율로 무작위 배정됐다. 

그 결과, 모든 검사에서 벤트라시맙군은 5분 이내에 혈소판 억제 효과를 보였고 효과는 주입 기간 지속됐다. 4시간 이내 최소 P2Y12 반응단위(PRU) 억제율도 위약군 대비 벤트라시맙군에서 유의한 이점이 나타났다(P<0.0001). 

아울러 갑작스런 항혈소판제 중단에 따른 반동 효과(rebound effect)를 확인하기 위해 혈소판 활성 마커인 P-셀렉틴(P-selectin)과 평균 혈소판 용적을 조사한 결과, 혈소판 활성 반동에 대한 근거는 없었다.

연구를 진행한 미국 브리검여성병원 Deepak Bhatt 교수는 "이번 결과는 벤트라시맙이 브릴린타 역전제로 상당히 유망하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주요 출혈을 경험했거나 응급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에게 벤트라시맙이 유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브릴린타·벤트라시맙' 닮은꼴 '프라닥사·프락스바인드'

벤트라시맙 개발은 브릴린타 복용 중인 환자에게 주요 출혈이 발생했거나 긴급한 수술이 필요할 때 대응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벤트라시맙이 실제 임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역전제가 개발되면서 출혈 우려가 있는 의료진은 에피언트, 플라빅스 등보다 브릴린타를 우선 선택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하지만 다른 항혈소판제가 브릴린타보다 출혈 위험이 낮고 충분한 허혈 사건 위험 감소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국내에서는 브릴린타 처방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즉 브릴린타를 투약하는 환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벤트라시맙이 허가 후 임상에 도입될지라도 크게 활용되기 어렵고 브릴린타 처방 증가를 이끌 견인차 역할을 하기에도 부족해 보인다. 

중앙대광명병원 정영훈 교수(순환기내과)는 "브릴린타는 출혈 이슈가 있을 뿐만 아니라 브릴린타와 같은 강력한 항혈소판제를 투약하지 않아도 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면서 국내에서 많이 처방되지 않고 있다"며 "우리나라에 브릴린타를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환자가 많지 않아 주요 출혈이 발생했거나 응급수술이 필요해 벤트라시맙을 투약해야 하는 사례는 드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개발사 입장에서는 벤트라시맙 개발로 브릴린타 출혈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브릴린타가 강력한 항혈소판제이고 출혈 문제가 아쉬우므로 대안을 제시하면 처방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프라닥사(다비가트란) 역전제 프락스바인드(이다루시주맙)가 임상에 도입됐을지라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두 가지 모두 많이 사용되지 않고 있다. 브릴린타와 벤트라시맙도 비슷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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