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ARB 암 발생 위험 논란→2011년 FDA "위험 높이지 않는다" 결론
ARB 연구 메타분석 결과, 고용량 장기간 복용할수록 암 발생 위험 높아
개별 환자 데이터 분석하지 않은 점 한계…"ARB 치료 중단 안돼"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항고혈압제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의 안전성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ARB 연구들을 메타분석한 결과, 고용량을 장기간 복용해 누적된 노출(cumulative exposure)이 많을수록 폐암을 포함한 모든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이번 결과로 일각에서는 규제기관이 ARB의 암 발생 위험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단, ARB는 심혈관 보호효과가 입증된 치료제라는 점에서 환자들이 발암 우려로 투약을 중단해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12년 전 시작된 ARB 암 유발 논란

ARB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논란의 시작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RB 관련 무작위 대조군 연구(RCT) 메타분석 결과, ARB 복용군은 새로운 암 발생 위험이 8%, 새로운 폐암 발생 위험이 25% 의미 있게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Lancet Oncol 2010;11(7):627~636).

결과 발표 후 학계 파장이 커지자 미국식품의약국(FDA)은 ARB가 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지 확인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고, 2011년 발암 위험을 높아지지 않는다고 최종 결론 내렸다.

그러나 2018년 ARB 계열 약물인 발사르탄에서 발암가능물질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돼 고혈압 환자에서 ARB 안전성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후 이대서울병원 조인정 교수(순환기내과) 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고혈압 환자에서 항고혈압제 치료에 따른 암 발생 위험도를 조사했고, ARB를 복용한 고혈압 환자의 전체 암 발생 위험 감소를 확인했다.

이 연구는 후향적 비무작위 코호트 연구로 진행됐다는 한계점을 고려해, 항고혈압제가 최소 고혈압 환자의 암 발생 위험을 높이진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ARB 고용량 3년 이상 노출, 암 위험 1.11배↑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ARB의 암 발생 위험을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게 한 인물은 2010년 메타분석을 진행했던 터키 이스탄불 아시바뎀대학 Ilke Sipahi 교수다.

이번 연구는 ARB와 암 발생 사이에 용량-반응 관계를 조사한 첫 연구라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연구에서는 ARB 관련 15개 RCT를 포함한 ARB Trialists Collaboration의 연구 수준 데이터를 토대로 메타회귀분석을 시행했다. 

두 가지 공동 1차 목표점은 ARB 누적 노출에 따른 모든 암 또는 폐암 발생 위험으로 정의했다. 

총 7만 4021명 환자가 ARB 치료군에 무작위 배정됐었다. 매일 ARB 고용량 또는 이에 상응하는 용량 복용 시 총 누적 노출량은 17만 2389인년(person-years)이었다. 대조군에 배정된 환자는 6만 1197명이었다.

분석 결과, ARB 누적 노출과 모든 암, 특히 폐암 발생 위험 사이에 유의한 연관성이 관찰됐다. 

매일 ARB 고용량에 3년 이상 노출된 연구에서 암 발생 위험은 1.11배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증가했다(RR 1.11; P=0.006; I2=31.4%).

이와 함께 매일 ARB 고용량에 2.5년 이상 노출된 연구에서 폐암 발생 위험은 1.21배 의미 있게 상승했다(RR 1.21; P=0.03; I2=0%)

반면 ARB 누적 노출이 적은 연구에서는 폐암뿐 아니라 모든 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지 않았다. 또 ARB 누적 노출에 따른 암 발생 위험은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ACEI) 치료 또는 대조군 유형과 무관하게 나타났다. 

Sipahi 교수는 "ARB가 누적된 노출이 많을수록 암, 특히 폐암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최대 용량을 3년간 복용했을 때 연관성이 유의하게 나타났다"며 "장기간 ARB 복용으로 인한 암 발생 위험 증가는 공중보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PLoS One 3월 2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PLoS One 2022;17(3):e0263461). 

Sipahi 교수 "FDA, ARB 누적 노출 고려하지 않아"

Sipahi 교수는 FDA 조사 당시 ARB 누적 노출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ARB와 암 발생 간 연관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ARB 고용량을 장기간 복용한 높은 누적 노출 데이터가 저용량 또는 단기간 복용에 따른 낮은 노출 데이터로 희석됐다는 것이다.

Sipahi 교수는 "1년 동안 매일 2~3개비 담배를 피우는 것과 40년간 매일 2갑을 피우는 것의 암 발생 위험은 다르다. 이는 약물에도 적용된다"며 "전 세계적으로 최소 2억 명이 4.7년 동안 매일 ARB 고용량을 복용한다고 가정하면, 잠재적으로 약 170만 사례의 초과암(excess cancers)이 ARB로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0년 Sipahi 교수 연구에 대한 사설을 썼던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Steve Nissen 박사는 이번 결과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Nissen 박사는 "이번 연구는 ARB가 암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추가 근거가 된다.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개별 환자 데이터 기반의 분석이 아니기 때문에 강력한 결론을 내릴 수 없으므로 검증이 필요하다. FDA 등 규제기관이 모든 개별 환자 데이터를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ARB 심혈관 보호효과 입증…치료 지속해야"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번 연구에 대해 공통으로 지적되는 한계점은 연구 수준 데이터 분석이기 때문에 개별 환자 데이터가 부족해 나이, 흡연 여부 등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ARB가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을 줄이면서 기대수명이 늘어 상대적으로 암 발생 가능성이 높은 환자가 생존했을 수도 있다. 즉, ARB를 복용한 환자가 오래 생존하면서 암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배제할 수 없다. 

스위스 베른대학 Franz Messerli 교수는 "치료제가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 위험을 낮출수록 기대수명이 늘어 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게 된다"며 "ARB는 ACEI와 헤드투헤드 비교에서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 심근경색, 뇌졸중 등에 대해 유사한 효과를 보였다. 이번 연구와 같이 ARB를 폄하하려는 시도를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연구를 통한 ARB의 위험 신호가 감지됐지만, 전문가들은 모든 고혈압 환자가 ARB를 계속 복용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Nissen 박사는 "원하지 않는 것은 ARB를 복용하는 환자들이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라며 "ARB는 고혈압 환자에게서 심혈관 혜택이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한림대 성심병원 조상호 교수(순환기내과)는 "ARB가 정말 암 위험을 높인다면 문제가 커지기 때문에 이 같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조사는 일부 연구만 메타분석한 것이므로 크게 신뢰하기 어렵다"며 "ARB는 심혈관 보호효과가 확실한 치료제로, 이번 결과만으로 환자는 치료를 중단하면 안 된다. 특히 심부전, 신부전 환자에게 ARB의 혜택이 크기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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